“쿵쿵따리 쿵쿵따 짜~리 잔짠…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서글픈 노래 가슴치며 불러보자.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

송대관이 부른 트로트 가요 ‘유행가’의 한 소절이다. 택시는 유행가이다. 한 평남짓한 작은 공간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엿보는 밀실이다.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출신의 택시기사 김기선(66) 씨. 그는 요즘 신세 한탄을 하는 40~50대 여성승객들을 자주 태운다. “대개 직장이 위태로운 남편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터 시부모, 친정 얘기로 이야깃거리를 넓혀가지요.” 2009년 4월, 택시에서 마주 친 대한민국의 풍경화는 온통 잿빛이다.

세월의 풍상이 얼굴에 묻어나는 그녀들은 생면부지의 택시기사에게 넋두리를 풀어낸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영풍상호저축은행의 최고경영자로 근무하던 그가 택시업계에 투신한 것이 바로 8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택시 일을 열심히만 하면 자식들 공부 가르치고, 생활비를 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치인들을 화제에 올리며 ‘청산유수’ 같은 입담을 자랑하는 고객들도 많았다. 최고경영자를 하던 사람이 뭐가 아쉬워 택시를 모냐는 질문은 단골메뉴다. 요즘 승객들은 대한민국 정치를 잊었다.

택시는 현실을 엿보는 ‘창(窓)’이다.
“며칠 전에는 초로의 중소기업 경영자가 탔어요. 그는 어음을 할인해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한다며 은행으로 좀 빨리 가줄 것을 부탁했어요.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고 했어요.”

전날(22일) 택시에 탑승한 30대 후반의 한 남자승객은 직장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런 순간은 그로서도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대한항공 기장으로 근무하는 장남 또래의 손님이다.
강남을 주요무대로 뛰는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호(號)는 여전히 추락 중이다.

“저야 두 아들이 다 결혼해 잘살고 있지만, 나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기사들은 참 힘들 거예요. 택시를 몰아서는 자녀들 학원비 대기도 녹록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는 요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경기회복론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기회복론이라는 게 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며 반문을 한다.

경기는 늘 순환하기 마련이지만 회복신호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선린상고 출신의 김 씨는 은행원 인기가 한창 좋았던 1963년 서울은행에 입사했다. 중앙투자금융, 동아증권, 영풍상호저축은행을 두루 거친 금융전문가가 바로 ‘그이다.
지난 23일, 오전 11시40분, 강남 포스코빌딩 주변은 점심시간 무렵이어서인지 삼삼오오 택시를 잡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장거리 손님 급감…하루 벌이 13만원 불과
젊은 여성고객들은 인도를 벗어나 도로 쪽으로 나와 수신호를 보낸다. 불과 1~2분새 남녀 10여명이 김 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기 위해 이런저런 신호를 보냈다. 선릉 방면으로 택시를 운전하던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손님이 더 늘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기본요금 정도가 나오는 단거리 손님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하루에 태우는 손님은 평균 25~35명 정도.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주변의 지하철역으로 가거나,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이들이 주종을 이룬다. 김 씨가 택시 승객 수와 경기가 역의 관계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서울에서 분당이나 일산 등으로 이동하는 장거리 손님이 많아 이용객은 적어도 수입은 쏠쏠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쉰다는 김 씨는 전날 13만원가량을 버는 데 그쳤다.
“보통 하루에 15만원 정도 수입을 올려야 기름값을 비롯한 운영비를 제하고도 생활을 해나갈 수 있어요.” 그는 출출할 때 자주 들르는 포장마차 촌에만 가봐도 경기 한파를 느낄 수 있다고 귀뜸한다.

소주 한잔을 놓고 정치인들을 성토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출출한 배를 채우러 들른 이들로 포장마차는 입추의 여지가 없기 마련이다.

자정을 전후한 시간대의 풍경이다. 하지만 자주 가는 단골 포장마차의 여주인은 ‘피크타임’이 사라진 지도 꽤 지났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락동 시장에 빈 택시 여전히 많아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빈 택시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경기침체의 다른 징표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굳이 이곳까지 빈 택시들이 등장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위기 때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근길에 손님들이 줄을 잇다 10시 정도가 되면 뚝 끊어져요. 그리고 11시30분 이후 다시 늘었다 오후 11시 이후 장거리 손님들이 늘어나지요. 손님이 없는 저녁시간대에 운동을 다녀와 11시경 다시 장거리 손님을 모시러 나섭니다.” 그가 생각해낸 불황기 생존비법의 하나이다.

한때 새벽 2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강남은 밤 12시정도만 되면 벌써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경기회복을 논하기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택시 운전 일을 90세까지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바람이다. “기사 식당에 들려 별 볼일 없는 찬이지만 푸짐하게 먹고, 때로 제육볶음까지 곁들이다 보면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