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메리 바라 지엠 CEO, 클로틸드 델보 르노그룹 CEO 겸 CFO,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앤마힌드라 사장. 출처= 각 사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외 국산차 3사의 경영 주도권을 지닌 해외 대주주 최고경영자(CEO)들의 입에 국내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산차 업체별 생존 전략이 절실한 가운데, 대주주 CEO의 결단이 업체 향방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산차 업체들은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좁은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주주 CEO들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각 대주주 CEO들이 최근 보인 행보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해야할 국산차 업체들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분석되고 있다.

메리 바라 지엠 회장 “한국지엠은 유능하나 까다로운 파트너”

한국지엠 모기업 지엠(제너럴 모터스)의 메리 바라 CEO(60)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업장의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지엠에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점이 바라 CEO의 관점을 방증한다.

지엠 소재지인 미국이 급속히 퍼지는 코로나19로 모든 사업장을 임시 폐쇄하는 등 몸살 앓는 가운데 부평·창원 등지에 위치한 한국지엠 생산시설들은 지속 가동됐기 때문이다. 바라 CEO는 앞서 2018년 5월 군산공장 폐쇄 조치를 완료하는 등 한국 시장 정서 상 냉정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지만, 성과를 내는 한국 사업장에 대해선 신뢰감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바라 CEO는 한국지엠의 생산성 뿐 아니라 신차 개발 역량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대목으로 작년 1월 지엠 테크니컬센터 코리아(GMTKC)가 인천에 설립된 점이 꼽힌다. 작년 북미 판매량 1위를 차지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랙스도 한국지엠에서 개발·출시된 모델이다. 바라 CEO는 이밖에, GMTCK에 지난 1월 출시한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함께 오는 2023년 내놓을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을 개발하도록 하는 등 핵심 역할을 맡기고 있다.

다만 한국지엠 노사 갈등은 한국 투자에 대한 바라 CEO 결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다. 바라 CEO는 앞서 2016년 8월과 2018년 10월 각 시점에 방한 의지를 밝혔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바라 CEO는 당시 각각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오찬회 연사, 한국지엠 노조 면담 등 목적으로 방한하려했다. 한국지엠은 바라 CEO의 방한일정 취소 사유로 “다른 일정과 중복됐다”는 점을 들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선, 한국지엠 노사 관계가 악화일로를 보인 가운데 본사 CEO의 방문이 별무소득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란 추측이 나왔다.

클로틸드 델보 르노 임시 CEO “르노삼성차는 애증의 대상”

르노삼성자동차 모그룹인 르노그룹의 클로틸드 델보 임시 CEO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작년 10월 최고경영자 업무를 맡은 후 한국 시장에 관해 직접적으로 공식 발언한 적은 없다. 다만 바라 지엠 CEO와 마찬가지로, 그룹 수익성을 기준으로 냉정한 결단을 내리는 행보로 업계 시선을 끌고 있다.

델보 CEO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르노그룹은 향후 3년 간 (본사 소재지인) 프랑스를 비롯해 전세계 사업장의 인력 1만5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델보 CEO의 감원 계획은 20억유로(2조7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르노그룹의 주력 시장인 유럽 등지에서 무너진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실정에 처했기 때문이다. 르노 그룹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1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대비 19.2%나 감소한 101억유로(13조7448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룹의 재무 건전성을 책임지는 델보 CEO로선 뼈아픈 결과다.

델보 CEO가 비용절감 방안을 실행할 사업장에 한국이 현재로선 포함되지 않은 점은 르노삼성차에 호재다. 르노그룹은 프랑스 생산시설 6개 가운데 4개를 폐쇄하거나 구조조정하고, 모로코·루마니아·러시아 등 국가에서 진행하려던 사업 확장 계획을 보류했다.

다만 델보 CEO가 르노삼성차의 실적 회복 관건 가운데 하나인 수출차량 물량을 한국에 배정할지 불투명한 점은 르노삼성차를 긴장시키는 요소다. 델보 CEO는 작년 10월 수장직을 임시로 맡기 시작한 당시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 후속 수출 모델인 닛산 캐시카이의 물량을 배정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최종 통보하는데 참여했다. 르노삼성차 노사 갈등이 지속되는 점을 고려해 내린 결정으로 분석된다.

델보 CEO는 XM3의 개발과 일부 물량 생산을 르노삼성차에게 맡겼지만 남은 수출 물량에 대한 배정 계획을 확정할 시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르노그룹은 오는 10월부터 수출할 XM3 물량 5만대를 르노삼성차에 배정했고, 남은 3만대의 생산지는 최종 결정하지 않고 있다.

델보는 CEO직을 당초 정식 CEO에 임명된 루카 드 메오(52) 전 세아트 회장에 넘겨준다. 메오 전 회장은 당초 지난 1월 열린 르노그룹 이사회에서 CEO로 임명됐지만 법령상 비경쟁조항에 따라 6월 말까지 보직을 맡지 못한다. 메오 전 회장은 그룹 이사회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델보 CEO의 경영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앤마힌드라 사장 “쌍용차는 낡은 엔진”

쌍용자동차 대주주 마힌드라앤마힌드라(이하 마힌드라)의 파완 고엔카 대표이사 사장은 한국 사업을 더 이상 홀로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본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에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앞서 현지 사업에 대한 시너지를 도모하려고 했던 쌍용차로부터 더 이상 효용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점은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마힌드라가 시장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쌍용차를 온전히 품고 있을 명분이 없어진 셈이다.

고엔카 사장은 지난 12일(인도 시간) 로이터등 외신기자들을 만나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며 “신규 투자자를 찾을 경우 마힌드라는 대주주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힌드라는 2011년 쌍용차 지분을 매입해 대주주에 오른 뒤 쌍용차의 SUV 사업 역량을 적극 활용했다. 이후 쌍용차 소형 SUV 티볼리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한 소형 SUV XUV300을 출시하는 등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티볼리가 2015년 한국 시장에 출시한 뒤 성과를 거둔 점은 마힌드라에게도 호재였다.

다만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 효과는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갈수록 미미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시장분석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와 자동차시장 분석업체 마크라인즈(Marklines)에 따르면 인도의 2020년 회계연도(2019년 4월1일~2020년 3월 31일) 기간 현지 승용차 시장에서 마힌드라의 시장 점유율은 6.5%로 집계됐다. 마루티(51.3%), 현대자동차(17.6%)에 이어 3위 수준이다.

마힌드라가 쌍용차 대주주에 오른 2012년 회계연도 당시 업체별 시장점유율은 마루타 스즈키 38.4%, 현대차 14.8%, 마힌드라 9.4% 등으로 집계됐다. 다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데 난항을 겪었다.

고엔카 사장은 앞서 지난 4월 예병태 쌍용차 사장과의 통화에서 “한국 시장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마힌드라는 다만 (신규 투자자 확보를 통해) 2대주주에 머물더라도 주요 주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일 밝힌 입장 내용과 종합할 경우 쌍용차 경영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대신 ‘하드 캐리’ 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불확실성 짙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고엔카 사장 발언은 쌍용차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쌍용차 주가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9일 2470원으로 올해 들어 고점을 찍고, 고엔카 사장 발언이 공개된 지 5일 지난 18일 2285원으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