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김덕호 기자] #. 올해로 경력 22년차인 직장인 김한섭(가명·50)씨는 최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구입했다.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는 버릇을 가진지 올해로 8년이 흘렀다. 초반에는 삼일에 하루꼴로 숙면을 취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잠자는 것이 습관화됐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이마저도 쉽지 않아졌다. 출퇴근 시간이 구분되지 않아 일과 중 집중력이 흐려지고, 퇴근시간 넘어까지 일을 손에 쥐고 있는 날도 늘었다. 줄어든 활동시간으로 밤에 잠이 더 오지 않는다. 마지못해 수면유도제를 구입했지만, 혹여 모를 부작용 우려에 복용을 고민 중이다.

코로나19가 잠자던 ‘꿀잠’ 수면시장을 깨웠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국내 수면시장에서는 ‘숙면’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집콕’ 트렌드로 장기간 실내 생활에 지친 소비자들 사이에서 ‘질 좋은 수면’ 욕구가 강해지는 추세다. 며칠 새 때이른 폭염까지 몰려와 한국인들은 밤마다 뒤척이고 있다.

▲ 한국인의 평균 수면의 질. 사진=웰니스 트렌드 리포트

재택근무·폭염에 ‘잠 못 드는’ 현대인, ‘꿀잠’에 눈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은 숙면을 돕는 건강 기능 식품 및 기능성 침구에 지갑을 열고 있다. 지난해 10월 등장한 KGC인삼공사의 정관장 ‘알파프로젝트 수면건강’은 올해 코로나 확산 이후 판매량이 계속 늘어 지난 5월 매출이 전월 대비 49% 증가했다. 월평균 판매량은 약 7000개. 회사 측은 7월 이후 열대야가 시작되면서 매출이 더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천호엔케어가 부족한 수면시간과 낮은 수면의 질로 고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출시한 수면 건강기능식품 ‘액티브솔루션 수면건강’도 초도 물량이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소비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제품임에도 최근 들어선 판매증가를 보이는 중이다.

롯데홈쇼핑 역시 올해 여름침구 판매액이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고, 취급 브랜드도 50% 확대됐다. 롯데홈쇼핑은 올해 역대급 무더위가 예상됨에 따라 편안한 숙면을 돕는 기능성 침구를 연이어 론칭하고 품목도 다양화할 방침이다.

▲ 한국인의 평균 수면식간. 자료=월니스 트렌드 리포트

소비자들이 ‘꿀잠’에 눈뜬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숙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1990년대 초부터 수면산업에 관심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 이 시장이 성장한데 반해 국내에서는 2011년 국제수면 박람회를 처음 개최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2015년부터 규모가 팽창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4800억원에서 2015년 2조원으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3조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경제)’란 신조어도 생겼다. 수면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 수면 불만족 이유. 사진=웰니스 트렌드 리포트

8년새 수면시장 규모 약 6배 ‘껑충’, 당신의 밤은 안녕하십니까?

배경은 ‘수면장애’에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한해 동안 국내에서 수면장애로 진료 받은 환자는 약 57만 명으로 전 국민 1.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는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음에도 낮 동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수면리듬이 흐트러져 잠자거나 깨어있을 때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수면장애 환자 수를 집계한 결과 연평균 8.1%씩 증가했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환자 수가 증가해 70대 3.3%가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았다. 성과 연령대를 함께 고려하면 60대 전체와 20~30대 남성 환자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또, 모바일 리서치 기관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20~5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웰니스 트렌드 리포트 2019’에 따르면 건강 관리와 관련 가장 신경 쓰는 부분으로 ‘수면 습관’을 답한 비율이 29.9%(복수 응답)였고, 건강상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로 수면 장애를 꼽은 비율이 27.5%(복수 응답)나 차지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다만, 이전에는 단순히 부족한 수면 시간이 문제였으나 최근엔 양상이 다르다. 단순한 수면 시간보다 ‘얼마나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수면 시간이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만큼 ‘잘 자는’ 것이 건강한 인생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늘면서 ‘꿀잠’을 위한 관련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서는 수면산업 범위를 숙면유도 기능성 침구류, 숙면기능 IT 제품 및 숙면 테라피, 수면클리닉 및 수면보조 의료기기, 숙면유도 및 수면 개선 생활용품 등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등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시장 니즈가 커지면서 관련 산업과 범주도 커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 연령별 수면쟁애 진료환자수 증감률.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해마다 ‘수면장애’ 환자수↑, 韓 수면시간 최하위… 정부 지원책 ‘必’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현실에도 국내 평균 수면시간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로 인한 의료비도 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수면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충분치 않다. 법적 근거가 미비해서다.

전문가들은 수면산업을 고부가가치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과 전략, 수면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생태계 조성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면산업의 정의와 범주가 모호해 이를 명확히 명시하는 조례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은환 경기연구원 연구원은 ‘경기도 수면산업 육성을 위한 실태조사 및 정책방안’ 보고서를 통해 “수면산업이 침구, 가구, 의료 등 다양한 산업과 맞물려 있다”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우선순위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ICT 및 IoT 솔루션을 탑재한 스마트 의료용 침대를 개발하려면, 수면산업과 의료산업의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적 지원도 요구된다. 경기연구원은 “수면산업의 다양화를 기대하게 하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금전적 능력이 부족해 수면산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업들에게 역량을 발휘하도록 안정적인 금융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