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신경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화웨이 압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5G 표준에서 밀려날 것을 우려한 미 상무부의 조치로 압박의 강도가 다소 유연해졌으나, 큰 틀에서 강공모드는 유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는 17일 미국의 압박이 이어질수록 미국 반도체 시장만 타격을 받을 것이라 강조해 눈길을 끈다.

근거는 시장조사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가 최근 '화웨이 제재: 통신, 글로벌 반도체 및 미국경제에 미칠 악영향'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국 반도체 업계가 화웨이 제재로 인해 약 70억달러의 사업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브로드컴의 연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8.7%(20억달러)며, 인텔은 최소 15억달러의 데이터센터 칩을 매년 화웨이에 판매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화웨이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미국 반도체 시장의 화웨이 의존도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화웨이의 존재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반도체를 구매하며 이는 전체의 약 5%(4000억원)에 이른다. 화웨이의 구매 감소는 곧 미국을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 확대로 세계 반도체 수요가 약 40% 쪼그라들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전 세계 5G 표준을 정립하는 3GPP의 핵심 회원인 화웨이가 장비를 제공할 수 없으면 5G 인프라를 구축해야 되는 통신사들이 계획에 차질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표준 측면의 문제도 있다. 미국 기술조사업체 그레이비서비스와 데이터조사업체 앰플리파이드가 최근 5G 관련 표준기술특허(SEP)에 관해 공동 진행한 결과 화웨이가 302건(19%)으로 가장 많은 SEP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SEP란 특정 사업에 채택된 표준기술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 특허이다. 결국, 미국이 글로벌 5G 공급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고 해도 화웨이에 특허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미 상무부가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배경이기도 하다.

화웨이에 따르면 최근 록히드 마틴, 아마존, 애플, 3M, 포드자동차 등의 기업을 대표하는 무역 단체는 미국의 광범위한 규정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트럼프 정부에 제기했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미국 경제만 타격을 받는다는 우려가 깔렸다. 여기에 화웨이 제재에 대한 실효성도 문제다. 미국의 대형 로펌 중 한 곳인 코빙턴앤벌링의 사만다 클라크 변호사는 "화웨이 시스템은 중국과 유럽, 아프리카 일대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일부 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 정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미 정부의 조달망에 얼마나 관여돼 있는지 알 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