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병태 쌍용자동차 사장이 지난 4월 20일 쌍용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대리점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인도계 완성차 업체 마힌드라앤마힌드라그룹(M&M)이 결국 쌍용자동차의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나섰다. 파완 고엔카 M&M 사장이 지난 13일(미국시간) 외신을 통해 쌍용차에 추가 투자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점을 실토함에 따라 쌍용차의 향방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고엔카 사장이 “한국 시장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만큼, 당장 쌍용차 '손절'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쌍용차에 대한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취지로 해당 발언을 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쌍용차의 상황이 점점 엄중해지며 예병태 쌍용차 사장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자동차 업계에 39년째 몸담아온 예병태 쌍용차 사장에게도 이번 위기를 헤쳐 나갈 묘안을 찾는 일은 난제라는 평가다. 

예 사장은 기업의 존폐 여부까지 저울질당하고 있는 업황 속에서 쌍용차 임직원 4900여명의 ‘밥줄’을 지키고 고객 수십만~수백만명을 위한 서비스를 이어갈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예병태 사장, 39년 경력에도 쌍용차 위기에 혀 내둘러

예병태 사장은 지난 2018년 9월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쌍용차에 처음 몸담은 뒤 작년 3월부터 최종식 전 사장에 이어 기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예 사장은 쌍용차 실적을 반등시키기 위한 구원투수 역할을 맡은 지 겨우 1년 지난 시점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재앙에 직면했다.

예 사장은 쌍용차에 입사하기 전 현대차 출신 마케팅·사업기획 전문가로서 업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1987년 현대차 직원으로 입사한 뒤 현대차·기아차 마케팅 및 상품전략총괄본부 상무, 기아차 아중동지역본부장 및 유럽총괄 법인 대표(전무),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부사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13년 현대차 상용수출사업부장직에 오르기 전 유럽총괄 법인 대표를 맡는 동안 현지 판매실적을 끌어올린 성과로 인정받았다. 예 사장이 상용사업을 맡기 위해 한국으로 복귀할 당시 유럽총괄 법인 대표직을 물려받은 인물은 최근 기아차 사내이사에 선임된 송호성 사장이다.

예 사장은 현대차그룹 자동차 계열사의 경영진으로서 국내·외 완성차 사업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만 쌍용차를 회생시키는 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기 2년차에 불과하지만, 냉엄한 자동차 산업 업황 속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예 사장이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대주주가 추가 투자를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쌍용차가 실적을 반등시키기 위해 신차를 개발·출시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쌍용차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지난 1분기말 연결 기준 498억원으로 5년 전인 2015년 1분기 말 1860억원에 비해 73.2% 급감했다.

쌍용차가 매출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빠져나가는 비용을 줄이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녹록지 않다. 쌍용차는 지난 4월과 이달 두 차례에 걸쳐 부산물류센터, 서울 구로 서비스센터 등 두 유형 자산을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각각 260억원, 1800억원으로 총 2060억원 정도에 달한다. 쌍용차의 급한 불인 단기차입금 채무를 상환하는 데 일부 기여할 만한 수준이다. 단기차입금은 1년 이내 변제 만기일이 도래하는 채무 규모를 의미한다. 3월 말 기준 쌍용차의 단기차입금 합계는 3899억원에 달한다.

쌍용차는 서비스센터를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세일즈앤리스백 형식으로 고객 A/S 등 기능을 유지할 계획이다. 센터 매각대금으로 현금을 당장 손에 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센터에 대한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쌍용차-예 사장, 구조조정 꿈도 못 꿔

쌍용차 지출을 더욱 줄이기 위해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방안은 회사 뿐 아니라 예 사장에게도 금기시되는 사안이다. 양측 모두 과거 노사갈등으로 빚어진 ‘흑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쌍용차를 현재 사태에 이르게 한 요인으로 2009년 발생한 구조조정 사태를 꼽는다. 쌍용차는 2009년 실적 부진으로 인한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했고, 경영 정상화 방안의 일환으로 직원 2646명을 정리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인원 7130명의 31.7%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이후 쌍용차 노사와 정부, 노동계 등 각계인사들이 함께 일부 인원을 복직시키는 등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했고 올해까지 실천해나가고 있다. 업황이 더욱 악화하는 가운데 평택공장 가동률이 작년 84%에서 올해 1분기 61%까지 떨어졌지만, 복직하기로 약속한 사항을 번복할 순 없는 처지다.

예 사장도 현대차 임원 시절 노사 갈등에 관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예 사장은 2015년 6월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으로서 임기를 만 2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공식적인 퇴임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상용차사업 실적 부진과 함께, 상용차를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근무 조건에 대한 견해차로 노사 폭력 사태가 발생한데 따른 책임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 사장이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에서 퇴임하기 직전, 조합원인 전주공장 근로자들이 생산량 증대를 요구하는 사측 요구에 반발해 일부 직원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쌍용차, 남은 살 길은 ‘혈세 지원’…업계 “일단 살고 볼 수 밖에”

쌍용차의 기업가치는 주저 앉았지만 M&M 대신 보유할 투자자를 찾기엔 매력이 없다. 쌍용차의 시가총액은 15일 장 마감 기준 2959억원으로 현대차 20조7258억원의 1.4%에 불과하다. 시총은 주식 1주당 가격에 유통 주수를 곱하는 산식으로 단순 산출한 기업 가치 지표지만 기업 가치를 직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최근 수년 간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는 중국 지리자동차가 스웨덴 볼보를 인수하고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푸조·시트로엥(PSA)과 합병하는 등 굵직한 합종연횡이 일어났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후 동종 업체와 결합하는 대신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미래 먹거리에 관한 역량을 갖춘 기술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해왔다. 현대차그룹이 그랩, 앱티브 등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비해 쌍용차는 내년 초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를 출시하는 것 외엔 미래차 관련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노사가 임금 동결 합의 등 화합 관계를 유지하는 점은 생산 타당성을 높이는 강점이 될 수 있지만 이 같은 무형의 경쟁력으론 시장에 어필하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

예 사장이 당장 쌍용차의 생존을 위해 기댈 수 있는 부분은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기간사업안정기금 밖에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달 말 40조원 규모의 자동차·항공 등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한 뒤 빠르면 이번 주에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원 신청을 접수할 예정이다.

쌍용차는 “쌍용차는 현재 경영쇄신 방안, 단기유동성 문제 해결, 이해관계자 협력 방안 모색 등 활동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쌍용차가 현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과 사회적 관심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일부 업계 종사자나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미 쇠락한 쌍용차에 더 이상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쌍용차가 코로나19 위기 이후를 도모할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품사 포함 1만명 가량의 근로자들이 쌍용차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앞으로 어떻게 번질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많은 일자리가 달린 쌍용차에게 외부 수혈함으로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도모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밖에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고 분석했다.

▲ 예병태 쌍용자동차 사장(왼쪽에서 여섯번째)이 지난 4월 20일 쌍용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대리점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대리점주들과 협력을 다짐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