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ST는 꽤 여러 가지로 쓰인다.

성베드로 교회[성당]서 처럼 성자, 성인(聖人)을 뜻하는 saint도 줄여서 St.라고 쓰고, 주소에서 쓰는 street의 약자이기도 하다. 1st나 최상급에도 st를 붙인다.

그런데 다소 엉뚱한 ST가 있다. 바로 Style의 약자로 쓴 ST인데 옷이나 패션아이템에서 종종 사용된다. 가령 샤* ST 즉, 샤* 스타일이라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 샤* 브랜드 제품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좋게말해 아류작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위 짝퉁, 가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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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돌출입수술을 주로 하게 된 것은 성형외과 개원가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선배 한 분 덕이다. 필자는 그 선배의 병원에 한일 월드컵의 해인 2002년에 합류했다. 그 선배가 필자에게 러브콜을 한 이유는 다름아닌 돌출입수술 때문이다. 돌출입수술 환자 수가 늘어나 선배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었던 것이다. 성형외과 하면 눈, 코, 가슴, 윤곽수술(광대뼈, 사각턱, 턱끝), 지방흡입, 리프팅이 전부였던 성형외과 개원가에서, 집중적인 수술 아이템으로서는 최초로 돌출입수술(ASO)을 선택한 그 선배는 개원가의 돌출입수술을 독점했고, 독점할 수밖에 없었다. 돌출입수술을 주로 하는 개인병원으로서 유일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돌출입수술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대담한 시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합류했던 그 선배 병원의 2000년 3월 12일자 온라인상담 게시판 자료에 의하면, 질문의 제목은 <잇몸윤곽수술에 대해서>이다. 당시에 ASO수술을 잇몸윤곽수술이라고 칭한 것도 그 선배다. 의사답변이 달린 시간은 오후 10시 8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선배는 돌출입수술을 몇 건 끝내고 늦은 밤까지 온라인 답변을 하였을 것이다.

2002년 필자가 그 선배 병원에 합류하고, 많은 것을 선배로부터 배웠다. 운명이었을 것이다. 돌출입수술은 필자에게 잘 맞아 떨어졌다. 수술이 즐겁고 행복했으며 보람 있었다. 선배의 수술솜씨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였다. 돌출입수술과 윤곽수술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필자는 돌출입수술의 상악 절개를 변화시켰다. 윗입술 가운데의 입술소대까지 끊는 긴 한 개의 횡절개 대신, 송곳니 위에 조그만 절개창을 좌우에 따로따로 만드는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10년 위인 선배는 조그만 절개창을 보고 놀라워하며 바로 필자의 수술법으로 선회했다. 2003년에는 대한성형외과 학회에 돌출입수술에 대한 발표도 하고 2006년에는 돌출입에 대한 단행본 서적을 공동 저술하였다.  

5년 만에 선배로부터 독립했다. 돌출입수술에 대한 경험이 더 늘면서 돌출입 컨텐츠는 더 풍부해졌다. 홈피 디자인보다 환자입장에서 궁금해할만한 내용과 내실을 다졌다. 돌출입수술 전후의 드라마틱한 사진들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그럴수록 온라인 상의 컨텐츠 도용도 증가했다. 돌출입수술에 대한 학술정보, 필자가 직접 그린 수술모식도, 필자가 직접 집도한 돌출입수술 전후사진 케이스가 타병원 홈페이지에 똑같이 도용되어 있다는 제보를 환자로부터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모 병원 홈페이지에서는 필자가 직접 펜으로 그린 후 필자 싸인을 숨겨놓은 수술모식도와 수술설명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발각되었고, 의사면허와 구강외과(구강악안면외과 ;치과의 한 분야)전문의 자격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모 병원 홈페이지에서 필자가 집도한 환자의 돌출입수술 전후 사진을 입 부분만 편집하여 도용한 것을 제보받았다. 팩트였다. 물론 캡쳐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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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에 가면 족발집과 냉면집들이 있다.

누가 원조일까? 간판에 쓰인 원조를 믿기가 어렵다. 모두 원조라고 써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후발주자가 더 잘나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 업계에서도 후발주자가 익일 아침 일찍 배송을 해주는 시스템으로 시장점유율의 판도를 바꿨다. 사실 소비자가 더 편하면 ‘장땡’이지, 소비자가 구태여 원조를 찾아서 쇼핑하지는 않는다. 온라인쇼핑으로 사는 물건은 대개 공산품으로서 같은 모델명이라면 품질이 동일하고, 더 싸고 더 빨리 배송을 오면 그만이다

한편, 족발집, 냉면집의 음식 맛은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설령 원조라고 써있는 맛집에서 먹은 음식이 실망스럽다고 해도, 그냥 내 입맛에 안 맞으려니, 혹은 원조가 아닌 소위 짝퉁(ST)을 잘못 찾아 들어간게 잘못이려니 생각하고 다시 안 가면 그만이다. 가격은 비슷비슷하다. 혀는 맛을 알지만 사실 위는 모른다. 배부르니 됐다 치고 다음에 더 맛있는 집을 찾아가면 된다.

음식 맛처럼, 성형외과도 집도의마다 그 결과가 다르다. 화가의 화풍과 작품이 제각각 다른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성형외과적인 결과가 나쁘다면 맛없는 냉면처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문제다. 평생을 그 얼굴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가의 그림마다 가격이 다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성형외과 의사는 결과로서 말해야 하는 직업이다. 말로써 결과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원조라는 ‘말’보다는 ‘맛’이 중요하겠지만, 뭔가 다른 아우라(aura)가 존재할 수 있다.

필자는 운 좋게도, 돌출입수술에 거의 올인하는 병원으로서는 성형외과 개원가 중 자타 공인 원조 격인 선배로부터 부름을 받아 돌출입수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돌출입 전문, 얼굴뼈 전문을 표방하는 비슷한 컨셉의 병원들이 차례차례 생기기 시작한 것을 직접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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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원조 냉면집과 비슷한 컨셉으로 어느 후발 주자가 새 냉면집을 열었다고 가정하자.

새 냉면집 주인이 상도덕과 양심이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떻게 할까? 그는 아마, 원조 집 손님을 뺏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첫째, 냉면집 홈페이지를 비슷하게 꾸민 후, 자기가 더 원조라고 주장할 것이다. 바로 근처에 문 여는 것도 반사이익이 있을 것이다.

둘째, 그 집에 온 손님에게, 원조 집은 재료도 나쁘고, 음식 맛이 엉망이고 요리실력도 없는데 바가지 씌운다고 비방할 것이다.

셋째, 냉면 값을 확실하게 더 싸게 하거나, 아예 반 값 정도로 덤핑할 것이다

넷째, 원조 집 요리법은 맛만 없는 게 아니라, 구식 요리법이고 치명적인 대장균이나 농약도 들어갈 수 있어 식중독이 오거나 그걸로 사망할 수도 있는 나쁜 요리법이라고 겁을 줄 것이다

다섯째, 만든 음식을 있어 보이는 그릇에 담아 사진 찍은 뒤 포토샵으로 실제보다 먹음직스럽고 뽀사시하게 만들어 홈피에 올릴 것이다.

여섯째, 자신 없는 부분은 감추었을 것이다. 정지사진은 포토샵이 되지만 동영상은 안되므로,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요리 과정이나 결과물의 동영상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일곱째, 고객 방문수나 실적을 부풀릴 것이다. 예를들어 고객 방문 게시판의 게시글 수를 질문글 1번, 답글 2번으로 일련번호를 매기면 두 배로 부풀려진다. 방문자 후기나 별점을 조작해서 올리거나, 가짜후기를 올려주는 대행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여덟 번째, 차별화를 위해 그럴듯한 음식이름을 만든다. 레이져 절단 냉면, 내시경 비법 소스, 특허 받은 제면기로 만든 국수, 30초 살얼음면…

아홉 번째, 댓글 공작에도 거리낌 없을 것이다. 가령, 포털 검색 사이트의 지식인 등에 아이디를 차용하거나 구매해서 ‘냉면’에 대한 질문글을 스스로 올리고 스스로 답하는 자문자답 조작 마케팅을 하거나, 그런 일을 해주는 대행업체와 거래할 것이다. 

열 번째, 맛집 동호인 까페나 맛집 앱에 브로커나 알바생을 고용하거나 마케팅업체를 써서, 업체 홍보를 하거나 댓글로 자신의 음식점을 추천하게 만들 것이다.

열 한번째, 요리실력과 무관한 비본질적인 것을 과시했을 것이다. 홈페이지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거나, 큰 단체석 규모, 요리사와 직원 숫자, 불필요하게 짧은 요리 시간 등을 자랑했을 것이다. 또한, 협찬비 내고 획득한 모 소비자 대상 수상, TV 프로그램 출연 혹은 경영 압박 때문에 한 해외 출장요리 등이 마치 실력을 입증하는 것처럼 포장할 것이다.

냉면집에 빗대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주 극히 일부 의료업계 내에서도 이런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냉면집 대신 병원, 요리법 대신 수술법, 음식사진 대신 수술 전후사진이나 영상, 음식이름 대신 수술명칭, 맛집 앱 대신 성형까페나 맘까페나 성형앱, 맛집 후기 대신 성형 후기,게시판 대신 온라인상담으로 단어만 바꾸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다. 특히 음식점, 쇼핑몰등 타업종과 달리 의료법은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에 800개의 허위 아이디를 사들여 포털 사이트에서 자문자답 댓글조작 광고를 한 광고업체와 병원직원 26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고 한다. 씁쓸한 일이다. (SBS뉴스, 2019.02.25 ‘맘까페후기, 알고보니 허위광고’).

필자는 위에 열거한 일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 S대 의대와 S대 병원에서 학생, 전공의로서 배울때, 나의 은사님들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다.

신이 아닌 이상 완전무결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필자 역시 돌아 보면 역시 흠결도 있고, 불의에 질끈 눈 감거나 정의롭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성형외과 개원가에서 돌출입수술에 몸 담은 이후로, 나 하나 잘 살자고 금도를 넘지는 않았다고 자평하고 싶다. 내가 원조집 주방장 출신이니 나만 옳고 나만 최고란 게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요리법으로 최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정당당했으면 한다.

비록 위에 열 한가지나 열거한 것처럼 독하거나 악하거나 비신사적이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환자를 유치하는 능력은 없지만, 환자들이 필자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고 싶다

물론 필자를 믿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겠고 필자와 인연이 닿지 않는 환자도 있다. 어찌 보면 그것도 운명이다. 에르*스 백 아니라도, A급 에르*스ST백이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분들에게도 최소한 필자에게 재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는 정도의 축복이 있기를 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그날 이후> 라는 시에서 ‘병원에 다녀온 후 몸이 더 작아졌고’ 라고 썼다. 참 먹먹한 표현이다. 병을 얻은 사람의 마음이야 더 할 나위 없겠지만, 멀쩡히 건강한 사람이 얼굴뼈나 돌출입을 손보겠다는 결심도 마음과 몸을 웅크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

환자는 약자이고 따뜻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외모로 고민이 깊은 당신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