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임금에 그 신하가 있었다.

숙종과 이관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관명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숙종 13년인 1687년에 급제하여 공조정랑, 이조 병조 예조 참판, 대제학을 지냈고, 영조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목숨 걸고 직언하기를 서슴지 않았기에 삭탈관직에 극형을 받아 유배생활까지 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유명한 그의 일화가 전해져 온다.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왔을 때였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민폐가 없는지 묻자 이관명이 대답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무슨 일인지 대궐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숙종이 책상을 내리치면서 화를 벌컥 내자, 궐내 분위기가 싸 해진 것은 당연했다. 감히 왕이 하던 것에 토를 단 것이었다. 하지만 이관명은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었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 죽기를 각오한 진언이었다. 숙종은 여러 신하 앞에서 창피를 당했고, 화가 치민 것은 당연지사였다. 곧바로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 명했다. 신하들은 당연히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직언하는 용자는 많았지만 문제는 받아들여 지느냐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면서 교지를 써내려 갔다. 신하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숙종이 다시 명했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승지는 이게 뭔가 어리둥절했고, 신하들도 웅성거렸다. 그런데 또다시 숙종이 승지에게 명을 내렸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에게 말했다. "경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이로써 한 순간에 이관명은 3계급 특진을 한 것이다.

이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왕에게 있는 그대로 소신껏 얘기를 했음에도 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때문이다. 이관명 혼자서 목숨 걸고 했어도 안 되고, 그걸 받아들이는 숙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도 직장생활 하면서 특진을 두 번 정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이관명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 몇 년간 휴가 같은 게 뭔지도 모르고 일 중독 바이러스 취급을 받으며 일을 한 덕분이었다. 그나마 회사가 위태로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위기에 온몸을 던져 막아내는 걸 누군가가 지켜봐 준 덕분이었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 말하는 용기는 당연히 훌륭하다. 하지만 역사에서 이런 용기를 내서 개죽음 당한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제대로 되는 조직이라면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 같은 임금도 있어야 한다. 대소 신료들에게 ‘제각기 나의 잘못과 정령의 그릇된 것과, 아래로 백성들의 좋고 나쁨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생각에 부응 되게 하라.’고 했던 성군이 있었다. 다들 생각하는 그 분이다. 세종대왕. 그래서 그때는 조선이 괜찮았다.

희한하게도 사람은 딱 대하는 만큼 자라게 된다. 그래서 뒷골목 건달 조직이 제아무리 의리로 똘똘 뭉쳐 있어도, 인정 받지 못한다. 물론 ‘신세계’ 같은 느와르 영화에서 하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말이다. 건달이 건달을 대할 때는 딱 건달로 대하기 때문에 그 조직에서는 건달 이상이 나올 수가 없다.

최근 페이스북 친구로 있는 어느 변호사가 올린 글을 보게 됐다. 그는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활동에 아주 부지런하다. 몇 년 전 일인데, 사업주를 불러다 놓고 재판장이 물었단다. “왜 12월엔 계약서대로 월급 안 줬나요?” 그랬더니 그 사업주는 ‘12월에는 노는 날이 많아서 시간당 계산한 임금을 지급했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판사가 다시 물었다. “그럼 1월에는 평소보다 2배나 혹사시켰네요. 근데 왜 시간당 계산한 임금의 절반 밖에 안 줬어요?” “1월엔 고용계약서 상에 정한 연봉을 1/12 해서 줬어요. 계약서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판사가 또 물었다. “그럼 12월에도 계약서대로 연봉의 1/12을 줘야지요. 왜 그 반밖에 안 줬어요?” 그러자 사업주는 ‘12월엔 많이 놀아서, 시간당 계산 했다니까요?’라는 답을 했다. 이쯤 되면 판사도 짜증이 제대로 날 듯은 한데, 보지는 못했으니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판사가 ‘왜 당신 맘대로 하나요?’라고 물으니, 사업주는 ‘내가 사장인데 그럼 내 맘대로 못해요?’라고 맞섰다. 결국 판사는 화가 나서 “계약서를 왜 쓰는 겁니까? 계약대로 연봉의 1/12를 매달 지불 하던가, 아니면 계약서를 바꿔서 매달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던가 해야지요.”라는 결론을 냈다.

결국 그 재판은 사업주에게 배상금 전액에 판결까지의 소송비용까지 다 포함한 금액을 처분함으로 종결이 됐다. 연봉이 유리 할 때는 연봉으로, 시간당 비용이 유리할 땐 시간당 비용으로 지불하려는 사업주가 이 사람 밖에 없을까, 의외로 주위에 많다. 사실 임금만 놓고 볼 때도 이럴 땐 저렇게 저럴 땐 이렇게 하는 곳이 많은데, 이런 경우 피고용자들은 어떻게 하게 될까? 당연히 열심히 해도 항상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만 초래하게 되는 것을 알기에 조직의 생산력은 애초에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나마 이 경우처럼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업주가 대하는 그만큼의 눈높이에 맞춰서 적당히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코이가 아니라 어항이었다

우리 주위에 흔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리급 상무, 과장급 부사장 같은 사람들인데, 나는 대리급 부회장까지 본 적이 있다. 대충 샐러리맨들이 부르는 별칭들인데, 그렇게 많이 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불리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고위 임원에 올랐으면서도 그때까지 대리 딱지를 못 땠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 사람 빼고 회사 사람들 모두가 안다는 것이다.

큰 그림은 아랫사람들이 그리고 위로 갈수록 지엽적인 사안으로 좁아지면서 최고 경영진에서는 정말 말도 되지 않는 투정이나 부리는 조직들이 꽤 있다. 그렇게 좁아터진 시야로는 대범한 사업의 결정을 잘 못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엔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가서야 부랴부랴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해치우게 된다. 결과는 신통하지 못하다. 신입사원과 대리가 비전을 잘 못 그렸기 때문이라고 타박만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 위로는 사실 내용을 보기 좋게 표로 다듬고 선 하나 더 긋고 점 하나 더 찍는 정도 밖에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 이렇게 하겠냐고 반문이 들겠지만, 의외로 공감되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연전에 어떤 회사에서 신입이 일을 주도하여 제대로 성사시켜 크게 성장한 사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되었고 누구나 그를 그리고 그 회사를 부러워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왜 우리한테는 이런 인재가 없지?’라고 생각했고, 샐러리맨 입장에서는 ‘이렇게 믿고 일을 맡겨두는 조직이 있단 말인가?’하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역사 500년을 통틀어서 왕에게 직언한 신하가 이관명 하나 밖에 없었을까? 무수히 많은 충직한 신하들이 왕에게 수없이 많은 직언을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관명 같은 신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숙종 같은 리더도 있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나이 먹고 경륜 있는 임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을 맡아 하지 못하고, 그 보다 더 위로부터 일일이 세세한 간섭을 받는다면 대리만 못하다. 반면에 설령 신입이나 대리라 하더라도 맡겨주고 일을 차고 나가면 리더가 충분히 될 수 있다.

관상어로 기르는 비단잉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져서 ‘코이의 법칙’이라는 것도 생겼다. 원래는 미국이 원산지인데 일본으로 수입해 기르면서 ‘카피오’라는 이름이 ‘코이’라고 일본식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 물고기를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어항 크기에 맞춰서 다 자랐을 때도 5~8센티미터 정도가 된다. 그런데 좀 더 큰 연못에서는 15~25센티미터까지 자라고 큰 강에서는 90~120센티미터로 자란다고 한다.

코이의 얘기를 들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나도 숱하게 신년사나 인사말을 써오면서 몇 번은 코이 얘기를 써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멋있고 그럴싸한 말을 갖다 붙이기 위해서였는데,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제는 코이가 아니라 어항의 사이즈였는데, 많은 조직들에서 어항 얘기는 숨겨놓고 더 크게 자랄 수 있는데도 자라지 못하는 코이만 나무랬던 격이라 부끄러움 금할 길이 없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법칙을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조직들에서는 이를 꺼꾸로 적용하고 있다. ‘너는 원래 120센티까지 자랄 수 있는 종자이니 어항을 탓하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리더들이 점을 잘못 찍었네, 선을 잘못 그었네 탓하며 침을 튀기고 있다. 종지에서 고래가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