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의 인류사>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부키 펴냄.

아주 오래 전 지구상에는 대형 유인원들의 공통 조상이 살고 있었다. 1500만년 전 이 동물로부터 오랑우탄 계통이 분리되었다. 고릴라 계통이 뒤를 이었다. 약 700만년 전에는 침팬지 계통과 인간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인간 계통에는 25종 이상이 있었다. 이들을 통틀어 ‘인류’라고 부른다. 현재는 25종 이상 가운데 우리(현생인류) 만이 살아 남았다. 

초기 인류는 침팬지류와 분리된 이후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들은 약했다. 강한 신체도, 날카로운 이빨도, 몸을 보호해 줄 털도 없는 벌거숭이였다. 인류의 조상은 이런 불편하고 생존에 불리한 특징들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힘 센 영장류에 밀려 숲에서도 쫓겨나 맹수들과 뜨거운 태양에 노출되는 아프리카 초원 등지에서 살아야 했다.

학명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인류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멸종을 거쳤다. 그러나 혁신을 거듭했다. 불을 사용하고, 언어로 소통하며 협업했다. 갈수록 유용하고 복잡한 도구(기계)를 만들었다. 지식과 문화를 전승하면서 마침내 모든 생물들을 뛰어넘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저자는 “인류가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결론짓는다. ‘유약함’이야말로 인류 혁신의 동인(動因)이었다는 역설적 주장이다. 책에는 열악한 환경과 절대 열세의 신체 조건을 성공의 열쇠로 바꾼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인류의 진화를 다룬 책이지만 동시에 의미있는 경영학서로도 읽힌다.

▲인류의 송곳니는 크기가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무기를 버린 셈이었다. 경쟁 상대였던 대형 유인원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로 다른 수컷들과 싸움을 벌였다. 다른 무리들과는 먹이를 놓고 혈투를 벌였다.

반면 인류는 일부일처 문화를 정착시켜 여자를 두고 싸울 일을 만들지 않았다. 일부일처하 남자들은 낳은 자식이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양육에 대한 책임이 강했다. 이런 방향의 진화는 인류의 번식에 더 유리했다.

▲뜨거운 아프리카의 초원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에게 체모는 중요했다. 털은 추위 뿐아니라 햇볕으로부터도 몸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약 120만 년 전부터 인류의 체모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서서 걷게 된(직립 이족 보행) 인류는 단거리 달리기에 취약했지만 장거리 달리기나 장거리 걷기에는 강했다. 멀리까지 이동한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먹을 것을 더 많이 구할 수 있었고, 경쟁자보다 먼저 먹이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 거리를 이동하면 체온이 상승한다. 체온을 떨어뜨리려면 땀을 흘리고 증발시켜야 한다. 하지만 몸에 털이 무성하면 땀이 쉽게 증발하지 않아 체온을 낮출 수 없다. 결국 인류는 더 멀리에 있는 음식을 더 빨리 차지하기 위해 체모를 포기한 것이었다.

▲신체적으로 불리해서 살아남았다. ‘호모 사피엔스 구인(舊人)’으로 분류되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新人)’보다 골격이 컸다. 뇌의 크기도 더 컸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힘은 약했지만 행동 범위가 넓었고, 사냥 기술도 더 뛰어났다. 네안데르탈인과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달아날 수 있었다. 대신 투창기를 사용해 멀리서 공격한다거나, 사냥감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생활 영역을 줄여 나갔다. 결국 분산과 고립을 반복하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