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군산공장 폐쇄, 연구·생산법인 분리 등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경영 본능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그가 한국지엠이 2011년 3월 출범한 후 현재까지 등판한 사장 6명 가운데 비교적 긴 임기를 지내는 이유다. 실제로 카젬 사장은 지난 2017년 9월 1일 부임한 뒤 이달 10일 현재 2년 10개월째 임기를 이어오고 있다.

지엠대우에 따르면 지엠대우 출범과 함께 회사 수장을 맡은 닉 라일리 전 사장(3년 10개월)과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사장(3년 10개월), 마이클 그리말디 전 지엠대우 사장(3년 1개월)에 이어 카젬 사장이 가장 오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출처= 지엠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한국지엠 CEO에 대한 인사가 모기업인 지엠의 전략적 판단이나 사장 본인의 결정 등에 좌우되는 점을 고려할 때, 카젬 사장의 긴 임기는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카젬 사장이 그간 한국지엠에 닥쳐온 위기를 거치는 동안 실력을 본사로부터 인정받아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해석한다. 카젬 사장의 전임자인 제임스 김 전 한국지엠 사장이 부진한 영업실적을 이어온 가운데 취임 1년 8개월 만에 이례적으로 교체된 것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에 따르면 CEO의 임기는 정해진 기간이 없다. 다만 그간 CEO들은 최소 2년 이상 근무해왔다.

국내 부임 후 각종 위기를 극복해온 카젬 사장은 올해 들어선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마주했다. 임기 4년차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 카젬 사장의 손에 한국지엠의 운명이 달린 상황이다.

카젬 사장은 한국 시장을 이해하는데 공들임으로써 경영 수완을 시장에 어필했다. 그는 3년전 한국에서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2017년 8월 22일 비공식 행보로 노동조합 구성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지엠이 생산 타당성을 유지·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인 노사 관계를 고려한 판단이다.

난관도 컸다. 카젬 사장은 이후 2018년 다마스, 라보, 크루즈 등이 생산되던 군산공장이 가동률 부진을 이유로 본사 방침에 따라 폐쇄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한국지엠 대주주들인 지엠과 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 규모의 경영정상화 지원 방안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군산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희망퇴직하거나 다른 지역의 공장으로 전환배치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폐쇄 후 현안도 처리해냈다.

카젬 사장은 또 경영정상화 방안의 또 다른 일환인 ‘2018~2023년 신차 15종 출시’ 계획도 차근차근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 모델에서 느끼는 고급 감성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가입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카젬 사장은 이번 결단을 통해 한국지엠의 수입 모델에 고급 감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지엠이 그간 다양한 수입 모델들을 들여올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도, 국산차 업체라는 국내 소비자 인식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저평가 받아온 점을 극복하려는 취지다. 한국지엠의 KAIDA 가입 결정은 한국에서 완성차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자동차 기업 가운데선 처음 나온 사례다. 카젬 사장의 독창적인 경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카젬 사장은 이 같은 경영 기조를 바탕으로 작년 영업손실을 전년(6149억원) 대비 46.3% 줄인 3305억원으로 기록하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최근 발발한 코로나19 사태는 카젬 사장에게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상황을 제공한 모양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 공장이 문 닫고, 국내 생산 과정에도 차질이 빚어짐에 따라 한국지엠의 브랜드 가치 회복 관건인 영업실적을 끌어올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카젬 사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임원 임금을 5~10% 삭감하는 한편 인천 부평공장 인근 부지 매각 추진, 전국 물류센터 5곳 통폐합 등 선 굵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다른 완성차 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유한 자산을 처리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 말곤 수익성 개선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그의 힘있는 행보에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카젬 사장이 코로나19 사태를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엠은 지난 3월 한국지엠에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직접 자문했다. 부평, 창원 등지에서 가동되고 있는 공장의 구성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은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지엠은 한국지엠의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브랜드의 자랑거리로 앞세우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지엠의 제럴드 존슨 글로벌 제조 부문 부사장(vice president)은 지난 13일(미국 시간) 디트로이트 챔버 오브 커머스에서 주관한 온라인 세미나(webinar)에 참석해 “그간 중국, 한국, 북미 등지에 있는 지엠 생산시설에서 단 하나의 코로나19 확진 사례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