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올해 1월 극적인 휴전에 돌입한 가운데 글로벌 경제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슈퍼파워국이 서로를 향해 보복 무역관세를 단행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수록 글로벌 경제는 위축되고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협상이 초안 수준이지만 극적으로 타결되며 글로벌 경제계는 다시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벌어진 후 포스트 코로나 트렌드가 주류로 부상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두 슈퍼파워의 입맛에 맞게 갈라졌고, 충돌의 진공지역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나라들도 이제는 신냉전의 폭풍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미중 신(新)냉전(New Cold War).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고 군사적인 대립도 아니다. 오로지 경제를 무기로 삼는 팽창과 견제의 고차 방정식이자 욕망과 갈등의 불꽃이 남긴 정치의 유산, 그리고 디커플링(decoupling)의 결정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블랙홀이 몸집을 불리는 지금, 우리는 그 너머에 펼쳐진 가보지 못한 길을 뛰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 출처=이코노믹리뷰DB

미중 슈퍼파워의 격돌은 불완전하다. 일각에서는 ‘트황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황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절대 권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명운을 결고 싸운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충돌의 이면에는 여전히 불안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노림수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은 물론 다원주의, 자유주의진영의 리더인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 이유로 전쟁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인다.

무역합의,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올해 1월 극적으로 휴전에 돌입했다. 전조는 지난해 12월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미중 무역전쟁 합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이를 인정했다. 심지어 대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도 보수성향의 언론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합의는 이뤄졌고 가방에 집어넣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두 슈퍼파워의 전방위적 대립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일로 평가됐다. 실제로 두 슈퍼파워는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을 던지며 싸움을 시작했으나 이후로는 첨단기술 견제, 화폐 패러다임, 심지어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외교적 분쟁까지 불사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는 한편 화웨이에 압박을 가하고 홍콩 및 신장 위구르 문제에 목소리를 내자 중국이 이에 반발하며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벌어졌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기세를 올렸고 이런 가운데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 국채를 사들이거나 희토류를 전략 물자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 갈등의 골을 일시적이나마 메우고 화해를 위한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합의는 큰 시사점을 가졌다.

문제는 코로나19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격렬한 말싸움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지난 3월 대만수권법을 통과시켰고, 1단계 무역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를 일시적으로 스톱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나는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외교가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나아가 중국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보건기구 WHO에 대한 지원 중단까지 시사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경제 보복설까지 흘러나왔다.

실제로 CNN은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주권 면제 등의 현안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중국과 무역 관계를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중국과의 경제전쟁 재발 가능성을 열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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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에서 워싱턴 소재 중국 대사관의 주소에 중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의사 고 리원량의 이름을 붙이자는 말이 나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중국 대사관 주소를 현재의 ‘3505 인터내셔널 플레이스’에서 ‘리원량 플라자’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현재 중국은 고 리원량을 의인으로 추앙하고 있으나, 초반 그의 주장을 당국이 묵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크다. 이를 미국이 고유지명으로 삼자는 주장을 한 것은 사실상 중국을 자극하는 처사로 읽힌다.

중국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욱 노골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4월 17일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에서 중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치부하는 한편 화웨이를 겨냥하며 “많은 국가가 통신 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화웨이가 그들(장비 판매국)에게 장비와 하드웨어를 팔러 올 때 그들(장비 판매국)은 많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웨이 백도어설을 지피며 동맹국들의 ‘탈화웨이’를 주문한 셈이다.

액션플랜은 전격적으로 가동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3일(현지시간)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 기업의 통신장비를 미국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1년 연장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미 상무부가 화웨이 및 68개의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후 해당 조치를 연장하며 여전한 화웨이 압박 기조를 보인 셈이다.

심지어 제3국 기업이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다. 미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 개정이 그 주인공이다. 화웨이에 흘러가는 반도체 공급을 완전히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은 화웨이에 대한 결정타다.

TSMC는 지난 5월 공식성명을 통해 2021년부터 2029년까지 총 120억달러를 투자, 5나노 공정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 전격 발표했다. 공장은 내년 착공되며 2024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파생되는 일자리만 1600개며, 간접적인 수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며 아시아에 의존하던 반도체 라인이 무너지는 현상을 경험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자급률을 놓이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미중 무역전쟁 당시에도 화웨이의 편에 섰던 TSMC가 미국의 편으로 합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TSMC가 화웨이와의 신규 거래를 중단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TSMC가 미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장면 자체가 불안요소다.

중국도 맞불을 놨다. 3월 대만수권법 당시에도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에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거론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반격했다.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도 가동했다. 코로나19 방역 외교에 속도를 내는 한편 4월 25일 헝가리와 함께 발칸반도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18억5500만달러의 차관협정을 맺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연합도 강화했다. 5월 8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기념일을 맞아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했고,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어떤 세력이 전염병을 이유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을 반대하며 확고하게 중국 편에 함께 서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 국채 대거 매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도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들이 연이어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자 중국도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실제로 5월 2일 중국 신화통신이 운영하는 뉴 차이나 채널에 ‘옛날에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Once upon a virus)’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병마용 레고 인형과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레고가 등장한다.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 레고가 “우리는 항상 옳다”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끝난다. 미국이 중국에 코로나19 책임론을 기계적으로 제기하는 장면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셈이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우한 바이러스 연구원장을 방송에 출연시켜 코로나199 중국 책임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홍콩 국가보안법, 그리고 충돌의 일상화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중국은 5월 21일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열었다.

이미 중국 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경전은 상당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중 갈등이 심해진 상태에서 미국의 견제구가 쏟아졌다. 실제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5월 21일 브리핑을 통해 중국을 “악랄한 독재국가”라 맹비난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 시진핑 주석을 두고 우호적이지 않은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존 케네디 공화당 상원의원이 발의한 ‘외국기업 책임법(Holding Foreign Companies Accountable Act)’은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상장폐지법안으로 불리며 큰 관심을 받았다.

미 백악관이 ‘대중 전략 보고서’를 전격 공개해 중국을 사실상 가상의 적국으로 묘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16페이지 상당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근본적인 경제 개혁 및 정치적 개방에 대한 기대는 실패로 끝났다”고 선언하며 “중국과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에 나서야 한다”고 적시했다.

대만을 사이에 둔 신경전도 극한에 이르렀다. 대중 강경파임을 숨기지 않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집권 2주기를 맞아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비대칭 전력’ 개발 계획을 밝힌 후 미국이 대만에 약 2214억원 상당의 중형 어뢰를 판매할 것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최근 차이잉원 총통의 정적이자 국민당 대선주자였던 친중국파인 한궈위 가오슝 시장은 탄핵을 받아 정계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양회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사상 처음으로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지만 170조원에 달하는 자본을 확보하는 한편 9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시장이 크게 반응할 정도의 깜짝발표는 없었지만,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의 ‘정면대결’을 시사하는 답안이라 특히 시선이 집중됐다.

중국은 양회 전부터 이미 미국의 ‘거친 반응’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TSMC가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선다 발표했을 당시에도 중국 외무부의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여러 영역에서 미중의 협력 본질은 상생협력이라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싸우면 디커플링과 관계 단절이 된다. 출구가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양회를 통해 미국의 압박에 정면도전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셈이다.

갈등의 접점은 홍콩이다.

중국 전인대는 지난 5월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3기 3차 전체회의를 열어 홍콩보안법 안을 전격 의결했다. 21일 초안이 올라온 후 전격적인 과정을 밟아 처리됐다. 전인대 대표단 2885명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은 2878표, 반대는 단 1명이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기본 의미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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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역사와 의미를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홍콩은 1997년 중국령이 된 이후로도 매우 특수한 위치를 점했으며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활동했다. 폐쇄적인 중국과 서방을 연결하는 창구면서 국제도시의 면모를 자랑했다. 항인치항(港人治港)의 기조를 충실히 따른 가운데 4월 기준 홍콩 증시에는 무려 2477개의 기업이 상장되어 있으며 이들의 시가총액을 모두 더하면 3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홍콩에는 현재 약 8만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13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이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의 대홍콩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은 총 660억달러를 넘었으며 홍콩에 대한 수출과 수입은 각각 500억달러, 168억달러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통해 ‘체제의 안전성’을 지켜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를 확보했으며, 최근 홍콩이 가진 경제적 지위가 불안하다는 점을 활용해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홍콩 GDP는 중국 전체의 4%에 불과하며, 최근 중국은 홍콩의 대안으로 하이난을 자유무역항으로 건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4월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 구상을 처음으로 밝힌 바 있다.

다만 홍콩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미국의 반발은 피할 길이 없다. 실제로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되자 미국은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1차 무역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확하게 갈린 반이성적인 진영

미중 무역합의를 기점으로 진정세에 접어들었던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시 격렬해지고 있다.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에 눌려 한 때 화웨이와 5G 동맹을 했던 유럽도 코로나19 정국에서는 다시 미국의 편에 섰다. 차이나머니의 달콤함에 교황까지 유럽의 결속을 우려할 정도였으나, 최근 독일과 영국은 화웨이 통신장비 배제를 선언했다.

중국은 다소 기세가 꺾였으나 여전히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대한 공격적인 원조를 바탕으로 진영 불리기에 나설 전망이다. 또 러시아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 등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정확하게 갈리진 진영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다. 특히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의 경우 국가의 이득에 따라 특정 진영에 합류하려고 해도 어려운 점이 많다. 각각의 진영이 주장하고 지향하는 목표는 선명하지만 진영의 구성부터 전제가 일반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디커플링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