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팝가수 마돈나와 우리나라의 국민MC 유재석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분 다 다른 영역에 종사하고 있지만,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위치에 있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더 세부적인 측면에 있다. 그 들이 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가 더 적합한 질문일 수 있다. 답은 바로 ‘기민성’에 있다.

마돈나는 데뷔한지 40여년이 된 지금,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아티스트로 전세계적으로 추앙 받고 있다. 1980년대 댄스음악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마돈나는 다양한 장르의 가수겸 모델, 영화배우, 사회운동가로 새로운 메시지와 화두를 대중들에게 계속 던지면서 지속적으로 변신해 왔다. 1990년대 초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명으로 지냈던 유재석은 2000년대 들어서 토크가 중심인 프로그램들에 맞추어 다양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러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안정적인 진행을 기반으로 한 국민MC로 등극했고 최근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부캐’ 신드롬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지난 20여년 동안 기민하게 변화를 추구하며 진화하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 꺾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경영전략 분야의 대가인 UC버클리대 데이비드 티스 교수는 이 시대의 특징은 변동적이고(Volatility), 불확실하고(Uncertainty), 복잡하며(Complexity), 모호한(Ambiguity)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우리가 처한 코로나19 사태가 전형적인 VUCA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애자일(Agile)전략은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서 기존의 경영전략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기에 상명하달 형태의 수직적인 조직구조보다는 VUCA의 경영환경에서 기민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애자일 기업이 가져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동태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을 기반으로 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동태적 역량은 VUCA의 시대에 맞는 기업경쟁력의 핵심을 뜻한다. 즉 환경변화에 맞춰 기업의 내외부 자원을 통합하고 육성하여 재편할 수 있는 역량이다. 동태적 역량을 갖춘 기업은 실행 중심의 민첩한 기업이고 실패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빨리 실행하고 실패도 해보고, 개선 포인트를 찾아 다시 시도하는, 경쟁사보다 늘 한발 앞서는 기업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유튜브’라는 기업은 본래 온라인 비디오 데이트 사이트로 시작했다. 화상 데이트 기업으로는 실패했지만 동태적 역량을 활용하여 유저들이 원하는 동영상을 아무거나 올릴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디즈니의 역작,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는 처음에는 마녀와 같은 악역으로 설정되었으나 OST인 ‘렛잇고’의 제작 과정에서 엘사의 긍정적인 면이 대두되었고 이후 안나의 친언니로 수정되었다. 디즈니의 동태적인 역량이 오늘 날 모두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애자일 기업이 가져야 할 두 번째 조건은 ‘소비’를 기반으로 한 생산이 있어야 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빅’에서는 12살짜리 소년이 마법에 걸려 30살 어른의 몸으로 장난감 회사의 임원 회의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회의에서 한 임원이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장난감의 우수성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와중에 몸만 어른인 톰 행크스는 바로 질문을 던진다. “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게 무슨 재미가 있죠?” 많은 기업들이 생산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자화자찬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된다.

최근에 아마존에 10억달러에 인수 된 ‘필팩(Pillpack)’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은 온라인 약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데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자들의 소비 패턴을 간파했다.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처방약을 받는 번거로움을 해당 플랫폼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 구축에는 고객들의 니즈, 소비 패턴, 행동 방식을 파악하여 바로 비즈니스 모델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자일 기업은 고객과 ‘소비’라는 접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애자일 기업의 마지막 조건은 유연성(flexibility)을 갖추되 집중력(commitment)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애자일 기업을 자칫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무조건적인 빠름과 유연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위에서 언급한 마돈나와 유재석의 예로 돌아가자면, 지속적인 변신을 추구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핵심가치에서는 지속적인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마돈나의 경우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데뷔 초기 때부터 도발적인 성적 매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유재석의 경우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반듯한 연예인 이미지에 집중해 왔던 것이다.

애자일 기업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은 수십년간 다양한 제품군을 통한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했고 애자일 기업으로 외부환경에 민첩하게 대처했지만 그들의 핵심가치인 ‘고가 고성능(high price, high performance)’ 전략은 놓지 않았다. 이러한 애플의 ‘집중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적인 예로, 컨테이너 해운 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 공급 초과와 운임 하락으로 제 살 깎아 먹기 식 생존경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점유율이나 재무 실적 측면에서도 무수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높은 수익을 내며 독주해 오고 있다. 일단 머스크라인은 글로벌 리스크 환경에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머스크라인의 혁신 프로그램은 조직과 인력뿐 아니라 현장 업무시스템 하나하나를 바꿨는데, 운용 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인 벙커C유를 절감하기 위해 감속 운항과 함께 연료 효율이 높은 선박을 바로 도입했다. 아울러 컨테이너선의 크기와 관계없이 ETA(도착예정시간)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선박 입출항 때 동일한 속도와 패턴으로 엔진을 가동하고 운항 때는 일정 속도를 유지하게 하는 운항 매뉴얼을 표준화해 연료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해 온 머스크라인만의 핵심가치가 있었다. 이는 ‘지속적인 자기 관리(Constant Care)’인데 바다에서 근무하는 선원처럼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당면한 문제를 직접 부딪치고 이겨내는 정신이었다. 머스크라인은 유연한 기업이지만 핵심가치에 늘 집중하는 기업이었다.

미국 와튼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에 따르면 애자일은 어떤 수학 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모든 기업이 다 똑같을 수 없다. 어쩌면 각각의 외형적인 모습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애자일 기업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조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마치 변화무쌍한 마돈나와 유재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