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검찰이 4일 경영권 부정승계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전·현직 삼성 임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삼성 변호인단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지 이틀 만에 검찰이 구속영장 신청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에 대해 재계와 법조계는 하루 종일 들썩였다. 

검찰의 조치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2018년 검찰이 정한 ‘권리주장의 원칙’에 맞서는 결정은 삼성을 향한 검찰의 ‘명확한 방향성’으로 해석됐다. 사안을 둘러싼 삼성, 검찰 그리고 법원은 법리적 문제와 정치적 해석 요인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마주하게 됐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이재용 부회장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은 前 검찰총장인 문무일 총장 취임과 함께 검찰이 정한 ‘자체 개혁안’의 일환이다. 

지난 2017년 8월 8일 문 전 총장은 “과거 일부 시국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었다”라면서 “이러한 선례의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검찰개혁위원회 신설과 동시에 검찰개혁추진단을 설치함으로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12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대검찰청예규 제915호, 2017. 12. 15 제정)이 제정됐다. 본 지침의 성격은 1장 제 1조(목적)에서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설치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라고 한다)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됐다.   

▲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사진 가운데). 출처= 삼성전자

삼성 “우리 목소리도 들어달라”

2일 삼성의 변호인단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을 추궁하는 검찰 수사의 타당성을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이를 위해 삼성 측은 위원회를 소집 요청서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삼성의 변호인단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1년 8개월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약 50차례의 압수수색, 110명 이상에 대한 약 430회의 소환 조사 등으로 강도 높게 진행됐고 관련된 조사가 있을 때마다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들은 코로나19,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적 여건 악화의 위기로 그룹의 중대사가 걸려있는 시기임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라고 밝혔다. 삼성 측은 지난 1년 8개월 동안 진행된 강도 높은 조사에도 검찰은 수사의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법이 정한 범위에서 수사의 적정성을 다시 판단 받고자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삼성의 심의위 소집신청을 접수한 후, 이를 대검찰청에 보고해 심의위 구성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검찰의 파격적인 행보에 상황은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의 요청이 지난 후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임원들을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검찰, “법적으로 문제없다” 확신에 찬 초강수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위법에 대한 확신을 보여줬다. 정황상으로 해석하면 검찰은 자신들이 정한 ‘권리주장의 원칙’에 정면으로 맞선 것과 같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자기부정’을 해가면서 삼성을 잡으려 하고 있다”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검찰의 결정은 철저한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본 사안에서 ‘사건관계인’에 속하는 삼성의 요청으로 심의위윈회가 소집돼 적절성을 검토할 수 있는 사항은 총 5가지다. 첫 번째는 수사 계속 여부, 두 번째는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세 번째는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네 번째는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기타 검찰총장이 위원회에 부의(附議)하는 사항 등이다.

운영지침에는 본 요소들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것이 나와 있을 뿐 구속영장 청구 등 검찰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행위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명시돼있지 않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 19조(심의 효력)다. 이 조항에서는 “주임검사는 현안위원회의 심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심의위원회의 의견이 수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더라도 검찰이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는 의미다. 

법적 구속력 측면에서는 심의위의 소집 혹은 의견보다 구속영장 청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검찰은 이러한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이에 법원은 오는 8일 오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심의를 할 것을 예고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검찰은 삼성의 혐의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복잡한 계산 그리고 여론 

이번 사안은 삼성과 검찰이 맞서는 ‘여론전 힘겨루기’로 정의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사안에는 삼성, 검찰, 법원 그리고 현 정부의 입장까지 얽혀 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만약 법원이 기각한다면 ‘재벌 봐주기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 정부가 특히 대기업들을 대해 ‘원칙 적용’을 강조하고 있는 기조와도 어긋난다.

그러나 구속영장을 받아들여 이재용 부회장이 또 다시 구속되면 코로나 시국과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가 경제가 피폐해진 가운데 대기업들의 주도로 경기회복 계획들이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있었다. 상황이 복잡하기는 삼성도 마찬가지다. 현재 삼성은 미-중 분쟁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두 나라 사이에 껴서 반도체의 공급 문제로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이 부회장이 또 구속되는 등으로 경영 공백이 생기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대중 여론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는 대기업들을 정부가 ‘애써서 못살게 굴고 있다’는 관점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안과 엮여있는 그 어떤 주체도 이 상황을 편하게 관망할 수 없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 등으로 외교적 시비를 걸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소재 공급처를 확보하는가 하면 미-중 무역분쟁으로 반도체 공급부문에서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감지되자 전 세계 어떤 글로벌 경영인들보다 먼저 중국으로 건너가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조율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최근 공정위가 한화, LS등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여론에 반영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는 다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라면서 “각 주체는 서로의 입장을 고려함과 동시에 국민적 여론, 정치적 입장, 경제적 파장까지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