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출처=한진그룹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코로나19와 경영권 분쟁 2라운드라는 난기류 봉착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그간 오너일가에게 제기된 우려를 잠재울만한 경영 수완을 보여주고 있다. 

자금 조달에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결정… 경영권 분쟁 고려

4일 업계에 따르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 등 3자 주주연합과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지분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3자연합은 전날 공시를 통해 KCGI 산하 엠마홀딩스와 반도건설 계열사 대호개발·한영개발 등이 한진칼 지분 2.49%포인트를 추가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자연합의 한진칼 지분율은 42.74%에서 45.23%로 늘어나게 됐다. 그 결과 조 회장측(41.14%)과의 격차를 4%포인트 이상으로 벌림과 동시에 과반수인 50%를 목전에 두게 됐다. 

지금 임시 이사회가 열려 양측의 표 대결이 벌어질 경우 3자연합이 승리한다는 뜻이다.

조원태 회장측도 자금 조달을 위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결정하면서 대응에 나섰다. 한진칼은 2일 이사회를 열고 3000억원 규모의 BW 발행을 결정했다. 주력계열사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경영권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노림수도 숨어있다는 평가다. 

신규로 발행되는 BW는 일반공모 방식으로, 2022년 7월부터 주식전환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공모일로부터 한 달 후부터 신주인수권을 매매할 수는 있지만 주식으로 전환하려면 2년 후부터 가능하다. 이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여지는 줄이면서 필요한 자금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시장에서는 조 회장이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3자연합을 견제하면서 현금을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우호세력에게 새로 발행할 주식을 인수하도록 해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고 하지 않겠냐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는 3자연합의 반대로 저지됐다. 3자연합은 2차례 증명을 통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훼손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효과 등을 이유로 들어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의 이번 결정이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3자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비판을 피할 수 있음과 동시에 자금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3자연합이 당장 의결권 행사를 담보할 수 없는 BW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 위기 상황에서 유연한 대응을 보여준 조 회장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업계에서 조 회장의 '노련한 행보'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해 4월 고(故)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경영권을 승계했다. 당시 40대 중반의 젊은 총수를 바라보는 안팎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분쟁 1차전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등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지난번 1차 경영권 분쟁 당시 국민연금과 세계적 자문사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의 사내이사 연임 찬성표를 받음과 동시에 대한항공 노조를 비롯한 한진그룹 임직원 등으로부터 내부결속을 이끌어 냈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출처=한진그룹

코로나19에도 실적 방어… 솔선수범해 급여반납까지

조 회장은 경영능력도 입증 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앞서 지난해 4분기에도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거뒀다. 보이콧 재팬 여파로 업계전체가 수렁에 빠진 가운데 낸 의미있는 성과였다. 특히, 올 들어서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도 실적 하락폭을 최소화 해 오너의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분기 매출 2조3523억원, 영업손실 56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6892억원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적자전환했다. 그러나 업계와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 앞서 증권가에서 내놓은 대한항공의 1분기 영업적자 컨센서스(국내 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044억원 규모에 달한다.

여기에는 여객기를 전용 화물기로 돌린 조회장의 혜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임원회의에서 조 회장이 먼저 나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하는 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코로나19로 상당수 여객기 날개가 묶이면서 항공화물 운임은 치솟은 상태다. 통상 여객기의 화물칸(벨리 카고)은 글로벌 항공화물 운송의 50%를 차지한다. 공급은 줄어들었지만 마스크나 의약품, 의료장비 등 긴급수송 수요는 늘어나면서 항공화물 운임은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4월 아시아~미주노선 운임은 톤당 6.67달러로 전년동기비 90%, 유럽노선 운임은 5.31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8% 상승했다. 이 같은 운임은 과거 항공화물 호황기였던 2010년과 2017년도의 고점보다도 20%~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유가 급락으로 항공유 가격이 낮아진 점도 호재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대한항공의 2분기 실적이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조 회장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예전에도 주목받은 적 있다. 지난 2009년 여객사업본부장으로 근무하던 조원태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발 항공여객 수요가 대폭 감소하자, 인천을 거쳐 제3국으로 여행하는 환승 수요를 유치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 결과 2009년 전 세계 주요 항공사가 대부분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도 대한항공은 흑자 1334억원이라는 깜짝 성적을 거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솔선수범해 급여의 절반을 반납하는가 하면 임직원은 물론 사회소외계층 챙기기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1월말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거 우한 전세기에 직접 탑승해 솔선수범하는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지난달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편지를 통해 “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실적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연 임직원 여러분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와 사회소외계층을 위해 함안수박 500여통을 사비로 구매,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이목을 끌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국민정서가 강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결속력을 굳히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평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대한항공 살리기가 시급한 가운데 경영권 방어라는 숙제까지 주어져 조 회장이 어떤 리더십을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3자연합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조 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또 경영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악재가 컸다고는 하지만 대한항공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가운데 소모적인 경영권 논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조 회장의 초반 경영 성적은 합격점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