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된 상태를 의미하는,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 ‘국뽕’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이처럼 ‘국뽕’이 인기를 누리게 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19가 펜데믹 현상을 보이며 세계 전역에 퍼지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전염병 확산을 잘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국뽕’은 여당 압승에 큰 역할을 했었다. 총선에서 다루어졌어야 할 쟁점들은 코로나 안개 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K방역’에 대한 자부심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코로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국뽕’의 여흥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가 직면할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지난 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115달러로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인 4.3%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경제성장률이 외환 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1.1%에 그친 반면 환율은 6% 가까이 오른 탓으로 분석되는데, 코로나 위기 이전 작년 통계를 기준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달러 이하로 미끌어질 가능성이 높다. 통상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는 해당 국가가 선진국 그룹에 편입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데, 2017년 사상 처음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에 진입했던 우리나라는 3년 만에 선진국 그룹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번에 주춤할 우리 경제가 재기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올해는 우리나라 인구 감소의 원년으로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즉 인구자연감소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부터 시작된 생산가능인구는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고, 은퇴자는 늘어나 연금 고갈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여야 합의로 ‘기본소득제’도입 등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논의가 경쟁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내수시장의 발목을 잡을 개인, 기업, 국가 빚의 증가는 예상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반해 미래 경제 발전을 견인할 유니콘 기업은 보이지 않고, 대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자리는 선진금융기법을 빙자한 규제 안 된 사모펀드가 대신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에는 기업 성장을 위한 건전한 투자 대신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가 횡행한다.

국제 관계는 또 어떤가? 코로나 위기 직전까지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던 미중 무역 분쟁은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블록경제’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경제대공황 직후의 상황처럼 미국과 중국은 ‘화웨이 사건’을 시작으로 각국을 종주국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한국 경제 역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경제 블록에 편입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인데,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경제·외교·안보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묻고자 한다. 우리는 코로나 안개를 핑계 삼아 언제까지 ‘국뽕’에 취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