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다양한 사업자들이 제도권 내에서 활발히 경쟁하는 등 시장은 성장해나가고 있음에도 전기차에 대한 일부 소비자들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점은 업계의 과제다. 한국 전기차 소비자들이 학계에서 여전히 조기 수용자(얼리 어답터)로 여겨질 정도로 시장 발전 단계가 초반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시장 성장을 위해 전기차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1865년 영국에서 위험성을 이유로 들어 운행 규제하기 위한 ‘붉은 깃발법’이 제정됐지만 자동차 안정성의 강화로 인해 폐지됐던 사건에 빗댈 수 있다.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는 붉은 깃발법의 영향으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미국, 독일 등 타국에 뒤처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작년 전기차를 구매·이용해본적 없는 승용차 운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유지관리 불편’(54.0%), ‘짧은 주행거리’(60.2%), ‘충전 불편’(74.5%) 등 부정적 인식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제품, 인프라 등 두 가지 측면에서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업계 이견이 없다. 제품 발전 측면에서 화두가 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최종 소비자 가격이다. 전기차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정부가 도입한 구매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거나, 전기차 생산단가를 높이는 배터리의 단가를 낮추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최근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정부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 관련 예산의 규모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지 혹은 확대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공급자들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방안이 시장 성장 측면에 있어 현실적인 솔루션으로 지목된다. 완성차 업체의 신기술은 차량의 생산단가를 낮춤으로써 최종 소비자가를 인하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오는 2024년 배터리팩 가격이 1㎾h당 100달러(약 12만1700원) 수준으로 낮아짐에 따라 내연기관 모델과 동등한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자동차 코나 EV에 장착된 64㎾h 용량 배터리의 생산 단가가 올해(156달러·약 18만9852원) 기준 1215만528원에서 4년 뒤 35.9% 가량 인하한 778만8800원으로 책정되는 셈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의 가격을 낮출 뿐 아니라 차량 성능별 수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전기차를 이용한 경험이 없는 소비자들은 차량의 성능별 수치를 통해 제품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느껴 구매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엔 충전 소요 시간을 단축시키는 연구개발 과정이 진행돼야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상황에서, 생산단위별 단가가 높은데다 공차중량까지 높이는 등 가격 부담을 높이는 배터리에 투자하는 건 비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황성호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19일 서울에서 열린 자동차 기술 및 정책 개발 로드맵 3단계 연구 발표회에 참석해 “전기차 최대 주행거리가 600㎞를 넘어서는 건 무의미하다”며 “해당 주행거리를 양산 모델에 적용한 뒤로는 전기차의 충전 속도를 높이는 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충전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늘리는 전략은 자동차 업계에서 이미 클리셰(cliché)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거론돼왔다. 문제는 업계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충전 인프라가 오랜 기간 충분히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같은 거대 시장에 비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쓸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전기차 시장에 수익원을 둔 민간 업체들이 인프라 구축에 적극 투자할 만하지만 실정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판매실적을 늘리는데 목말라 있을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양사가 정작 인프라 구축에 있어선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양사는 이마트, GS칼텍스 등 산업별 주요 기업들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제휴 관계를 맺어왔지만 시설을 구축하는 등 직접 투자하는데엔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르노삼성자동차, 한국지엠 등 현대차·기아차보다 영업실적이 적은 국산차업체들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 나서길 기대하긴 어렵다.

이 가운데 테슬라는 지난달 말 기준 급속충전소 32개소(급속충전기 약 180기), 완속충전소 200개소(완속충전기 약 500기) 등 충전시설을 국내 구축하는 등 국산차 업체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선 국내 전기차 시장 규모가 아직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범용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함께 민간 업체들은 전기차 사업 관련 고급 기술을 활용해 차별화한 시설을 적극적으로 개발,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충전 인프라 사업에 적극 나섬에 따라 고객 충전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완성차 업체의 역할에 변화가 일고 있다”며 “다만 전기차 시장이 더욱 확장할 수 있으려면 범용·고급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각각 정부와 민간 기업이 분담해 개발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