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공도를 다니는 전기차 5대 가운데 1대가 수입차인 점은 국내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꼽힌다. 내연기관차 시장 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에도 수입차의 성장세가 돋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국내 자동차 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입 순수 전기차의 등록 대수는 2014년 190대에서 5년 뒤인 지난해 101.7배 늘어난 1만9318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순수 전기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6.8%에서 21.5%로 급격히 늘었다.

지난 1분기에는 수입차 업체가 국산차 업체를 순수 전기차 판매 실적에서 앞서나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테슬라가 고급 전기차 라인업으로 지난 1분기 국내에서 기록한 차량 판매실적은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테슬라 실적이 비교적 저가인 국산 전기차 모델의 판매 실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배포한 4월 자동차 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테슬라는 1~4월 누적 4075대를 판매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전기차 생산공장이 휴업함에 따라 물량을 국내에 들여오지 못한 4월(5대)을 제외하면, 1분기에 월 평균 1356대를 기록한 셈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4060대), 기아차(1747대) 등 두 국산차 업체의 개 별 판매 실적을 뛰어넘었다. 현대차, 기아차 양사가 해당 실적에서 1톤 전기트럭 모델인 포터2 일렉트릭(2039대), 봉고3EV(887대) 등 상용 모델별 기록을 배제할 경우 테슬라에게 더욱 크게 뒤처진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차·기아차의 보급형 전기차 라인업은 국내에 저가 전기차를 통해, 저렴한 제품을 출시 초기에 활발히 구매하는 소비자(조기 수용자)를 양산했다”며 “그럼에도 최근 테슬라가 고가 라인업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모은 건 혁신적 브랜드 이미지를 (고가 조기수용자에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대형 전기 상용차 시장에서도 수입차 업체들이 기세등등한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차 양사가 국내 상용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지만 규모의 경제로 생산단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산 제품의 공세가 한창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전기버스에 지급되는 구매 보조금 예산의 40.4%가 중국산 수입차에 지급된 것으로 분석됐다. 환경부가 당해 책정한 전기버스 구매 보조금 예산 150억원 가운데 60억6000만원 가량이 중국 전기차의 국내 공급에 투입된 셈이다. 국내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이 국산차 업체의 시장 경쟁력을 위축시킨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만기 KAMA 회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제3회 산업발전포럼에 참석해 “산업보다는 환경을 우선해 시행된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중국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 전기차 시장에 앞다퉈 진출한 이유는 시장의 급성장세 때문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분석 사이트 EV세일즈(EVSALES)에 따르면 작년 한국에서 집계된 배터리 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수소전기차(FCEV) 등 범 전기차 판매 대수는 3만4000대에 달한다. 유럽(56만4000대), 미국(32만5000대), 캐나다(5만1000대), 일본(4만4000대)에 이어 5번째로 큰 규모를 보였다. 전년 대비 증감폭은 유럽(44%)에 이어 가장 높은 7%를 기록했다. 수입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전기차 모델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고, 구매 보조금 지급 등 소비자 친화적인 전기차 시장 부흥책이 도입된 점이 해외 업체의 한국 진출을 유인한 요소로 풀이된다.

중국(3%), 미국(-12%), 일본(-16%) 등 주요국보다도 높은 성장폭을 보였다. 수입 전기차가 외산차 라인업 가운데에서도 프리미엄급 가격대를 갖추고 있지만 최근 판매 실적 성장세를 보인 점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입 전기차의 입지가 확장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로 수입 모델의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제품 감성을 꼽는다. 통상 고가 차량을 구매할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고객들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누릴 수 있는 수입 전기차를 적극 구입할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 자동차 시장 분석업체 카이즈유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급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제품인 모델3를 구매한 고객 4031명을 분석한 결과, 가장 활발히 경제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30~40대 고객이 3099명으로 86.9%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디자인이나 제원 등 측면에서 보급형 위주로 구성돼 있는 국산 전기차 라인업의 한계가 드러났음을 방증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 국산차 업체 3사는 현재 기존 보급형 내연기관차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한 전기차들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각 국산차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전기차 모델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아이오닉 일렉트릭·포터 일렉트릭, 기아차 니로EV·쏘울EV·봉고3 EV, 르노삼성차 SM3 Z.E·트위지 등이다. 이 가운데 포터, 봉고 등 트럭 모델을 제외한 승용 모델은 주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준중형 세단 같이 비교적 작은 차량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모델은 작은 제원 덕에 더 큰 차량에 비해 낮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어 전기차의 가격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 강점을 갖췄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이상 소비자에게 소구할 수 있을 만한 가격적 이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 생산단가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터리의 공급가는 기술적·생산 규모적 제한점으로 인해 획기적인 수준으로 인하되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지자체의 차량구매 보조금 규모가 산업 발전 도모, 예산 부족 등 이유로 더 이상 커지기 어려운 점은 보급형 국산 전기차의 강점을 약화시키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