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춘 500대 기업 중 흑인 CEO는 단 4명 뿐이다. (왼쪽부터) 주택개선용품 업체 로스(Lowe’s)의 마빈 엘리슨, 제약회사 머크(Merck)의 케네스 C. 프레이저, 보험회사 TIAA의 로저 퍼거슨, 패션회사 태피스트리(Tapestry)의 지드 자이틀린.    출처= EnterpriseSuit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기업의 진정한 다양성은 그 다양성이 경영진에 반영되지 않는 한 달성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주요 기업의 핵심 요직에 흑인 전문가들이 여전히 극소수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다양성 차원에서 미국 주식회사의 갈 길은 아직 멀다고 CNN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직장의 각 직급에서 다양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기업들이 더 나은 혁신과 경쟁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이사회와 임원 자리에 흑인 전문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암울할 정도다.

기업이 내부 임원과 이사회 멤버의 인종과 출신을 공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통계는 수작업으로 수집되거나 설문조사를 통해 추론하는 경우가 많다.

CNN이 다양한 자료원으로부터 미국 기업의 다양성이 얼마나 부진한지 보도했다.

2018년에 미국고용평등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EEOC)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전체 임원 및 고위지도자들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불과했다(그러나 이 조사는 CEO와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위치의 임원 및 고위직으로만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흑인 CEO: 포춘 500대 기업 중 흑인 CEO는 1%도 되지 않는다. 포춘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의 흑인 CEO가 2012년에는 6명을 기록했으나 현재는 4명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을 통틀어도 흑인 CEO는 17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 여성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제록스(Xerox)를 경영했던 우르슬라 번스 한 명뿐이다.

흑인 임원 및 고위직: 기업에서 CEO로 승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리는 최고재무책임자(CFO)나 회사 내 노른자위로 여겨지는 수익을 많이 내는 지역이나 사업부 담당 사장들이다. 그러나 스탠포드 기업지배구조 연구원(Stanford Corporate Governance Research Initiative)에 따르면, 올해 포춘 100대 기업에서 흑인 전문직은 CEO의 3%, CFO의 1%, 주요 사업부 사장단의 3%에 불과하다. 다만 최고경영자(CEO)나 이사회로의 승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사담당임원(13%)과 관리담당임원(43%)자리의 흑인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사회 멤버: 흑인 기업인 보고서(Black Enterprise's 2019 Power)에 따르면 S&P 500대 기업에서 흑인 이사회 멤버는 307개 회사에 322명이었다. 그 중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흑인은 21명이었다. 그러나 보고서에 따르면 S&P 500대 기업에서 흑인 이사회 멤버가 단 한 명도 없는 회사가 3분의 1이나 되는 걸로 나타났다.

왜 여전히 다양성이 부진할까

미국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다. 흑인 전문가들이 미국 기업 핵심 요직에 그 만큼의 비율도 대표하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 EEOC 회장이자 전국기업이사회(National Association of Corporate Directors) 멤버인 캐리 도밍게즈는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흑인 인재들이 임원에 승진하고 이사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다양한 (CEO나 임원, 이사회) 후보군을 요구하고 있지만, 유색인종이 몇 퍼센트를 차지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승진의 문화도 자격 있는 유능한 흑인 후보들을 제외시킨다. 흑인들은 이사회 멤버들과 CEO들이 후보자를 조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에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 이사회는 전형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현직 또는 은퇴 CEO나 이사회에서 이전에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임원들 가운데에서 사람을 찾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인력채용전문회사 맨파워그룹(ManpowerGroup)의 이사회 멤버인 도밍게즈는 "그런 인력 풀에는 흑인 임원 경력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설령 흑인이 선택되더라도 같은 사람이 계속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종 차별의 문제가 있다. 물론 기업 내에서는 일반 사회에서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인재혁신센터(Center for Talent Innovation)가 실시한 ‘기업에서 흑인이라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흑인 전문직 종사자들은 직장에서 다른 어느 집단보다 인종적 편견을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차별은 흔히 “당신은 당신 인종과는 다르게 보이는군요”라든가 “당신은 좀 특이하군요”라고 말하는, 이른 바 은근한 공격을 통해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편견과 은근한 공격에는 단지 말 뿐 아니라 행동이 수반된 결과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더 큰 위험은 그나마 현재의 흑인 인재들이 조만간 더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이들의 3분의 1 이상이 2년 안에 회사를 떠나게 될 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