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삼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경색된 소비 활동을 진작하기 위해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한우 소비가 늘고 성형외과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등 새로운 소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네 평범한 동네 상권은 과연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얼마나 봤을까.

수급자 외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신청을 접수한 지난달 11일을 기점으로 3주가 흐른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과 회기동, 휘경동 일대의 대학가와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실태를 직접 살펴봤다.


 대학가 상권, 고객의 귀환?…"먼 얘기"


▲ 한국외국어대학교 후문 쪽 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두 학교의 후문 쪽에 자리한 S 피자가게는 위치적 이점이 크진 않지만, 맛과 가격 면에서 두루 장점을 갖춰 인근 학교 학생 및 주민들에게 알음알음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학교 개강이 연기되면서 타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S피자 점주 A씨는 재난지원금을 두고 "잠시 단꿈을 꿨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로 지난해 동월에 비해 반토막 난 매출은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3분의 2 수준으로 회복됐으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매출이 오르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도로아미타불"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매출이 다시 평소의 50% 수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5월 초중순 매출의 '반짝' 증가세에 대해 재난지원금 지급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 등 재확산 국면 이전까지만 해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방학이 비수기인 대학가 상권 특성 상, 이들에게는 현 상황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방학과 다름이 없다. 방학 때도 종종 매출을 올려주던 자취생들마저 코로나19 사태 및 이로 인한 '사이버 개강'에 따라 귀향하면서, 인근 원룸촌에는 사람보다 공실이 많다는 한탄도 나온다.

A씨는 "(재난지원금 덕분에) 외식업체는 잘 된다더니,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어 "(재난지원금으로) 컴퓨터를 샀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씁쓸해 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과 지하철 1호선 외대앞역을 잇는 중심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대학교 정문과 지하철역 사이의 중심 상권은 그나마 형편이 낫지 않을까. 대로변에 있는 Z 식당 측은 "재난지원금 사용가능 여부를 물어보는 사람은 여럿 있었어도 딱히 변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증발한 40%의 매출이 조금이라도 복구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해당 식당의 종업원 B씨는 "손님 수가 늘어난 것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재난지원금 받았다고 비싼 메뉴를 시키는 것도 아니다"면서, 매출 변화에 대한 물음에 "대중없다"고 거듭 답했다. 다만 그는 "중노년층이 재난지원금으로 결제 가능한지 묻고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가는 일은 평소보다 늘었다"고 덧붙였다.


 재난지원금 효과? '계절·날씨 요인'에 의한 수요


마카롱을 곁들여 파는 M 카페의 사장 C씨 역시 재난지원금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C씨는 "재난지원금은 누구나 다 사용한다"며 "나도 재난지원금을 쓰는 입장이지만 (재난지원금 수령이) 굳이 카페 소비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C씨는 "커피나 마카롱이나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데, 결국 원래 찾던 사람들이 사 먹는 것 아니겠냐"면서 모든 품목에서 눈에 띄는 매출 추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M 카페의) 매출 상승 여부는 그날 날씨가 좋은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히는 삼거리 횡단보도 앞에 자리해 목 좋은 입지를 점했다는 평을 듣는 M 옷가게의 경우, 매출은 제법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재난지원금이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기에는 불확실하다는 입장이다.

판매원 D씨는 "평소 같으면 이맘때 하루 매출은 100만원대 중후반인데 코로나19 때문에 50%는 꺾였다"며 "요즘은 그래도 100만원은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인근 학교들의 일부 등교 시행과 더워진 날씨가 매출 상승에 한몫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재난지원금으로 평소보다 과감한 소비 패턴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단가가 다른 의류보다 비교적 높은 편인 원피스·재킷 등의 판매량은 코로나19 대확산 때와 별 차이 없었다는 전언이다. 다만 특정 연령대의 고객 유입이 두드러졌다. 평상시에는 그리 많지 않던 중년 여성들의 방문과 구매가 늘어난 것이다.


 지속적 소비 "기대 안 해"


F 헬스장과 I 화장품 매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낙폭을 재난지원금 지급 시점인 5월부터 어느 수준 만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손실이 워낙 컸던 데다가, 재난지원금 소진 이후에도 매출이 이어질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 당시 10명 정도의 인원이 이용하고 있던 F 헬스장은 원래 월 3000만원 이상의 매출이 보장되던 사업장이었으나, 코로나19로 월 매출은 2000만원대로 내려 앉았다. 5월 들어서 3000만원 안팎의 매출이 추산됐지만, 코로나19 종식이라는 근본적 해결 없이는 사업 영위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헬스 트레이너 E씨는 "코로나19를 의식하는 이상 헬스장은 기피 장소로 남을 테고, 재난지원금의 사용 기한이 8월까지인데 이후가 걱정"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헬스장의 이달 등록 회원은 기존 단골들이 대다수이며 GX(단체 운동) 프로그램 경우 1명의 신청자도 없어 폐강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발 충격으로 매출이 50% 격감하면서 전례 없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이라는 I 화장품 매장의 점주는 "재난지원금과 제로페이 덕분인지 매출은 일시적으로 30% 가량 올랐지만, 이것만으로는 가게세를 감당할 수 없다"면서 폐업 고려 의사를 내비쳤다.

또 그는 "어차피 고객들은 가격이 더 싼 온라인몰에서 제품을 사거나 세일 기간에 온다"며 "잘 모르는 중년 여성들이나 이번에 (재난지원금)좀 썼지, 언제까지 현 매출이 지속되겠느냐"면서 냉소했다.


 학생들은 어디에 돈을 쓰나…재난지원금 주 사용층일까


이 지역 상인들이 주 고객인 대학생들의 귀환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가운데 근처의 한국외대는 지난달 초·중순부터 수강생 20~30명 이하 강의에 한해 대면 수업을 제한적으로 허용, 현재 일부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긴 하나, 실제 학교에 나오는 학생 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현재 대면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강좌는 5% 미만"이라며 "서울캠퍼스 경우, 전체 2000여개 강좌 가운데 (대면 수업을 하는 강의는) 100개도 안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원격 수업이 원칙이라, 대면 수업을 하는 강의여도 온라인 중심 시스템"이라면서 "수강생이 대면 수업에 불출석 해도 따로 제재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지역에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프랜차이즈 카페만은 코로나19 상황이나 재난지원금 등 변수들과 관계 없이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각종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로 빼곡히 차 있는 모습이었다.

3층짜리 건물 전체를 쓰는 C 카페에서 만난 한국외대 재학생 F씨는 "학교 내 여러 건물이 출입 통제된 상태기도 하고, 집에만 있자니 공부를 안 하게 된다"면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애용한다고 밝혔다. 쾌적한 환경인 데다 오랜 시간 머물러도 눈치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 지 미지수인데 계속해서 집에서만 생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놓으면서도, 이 동네 식당이나 소매점은 잘 찾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편 학생과 주민 등 이 지역 상권의 주 소비자들 중에는 4인 이상 가구의 일원으로서 재난지원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꽤 많았다. 가계 살림으로 쓰일 비용을 개인의 소비욕구대로 쓰기 힘들고, 재난지원금을 카드 형태로 지급받는 이상 모든 가족구성원이 번갈아 사용하기도 사실상 쉽지 않은 부분이다.

한국외대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G씨는 4인 가족의 세대주인 아버지가 받은 재난지원금 100만원 가운데 자기 몫으로 25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그는 현금화 한 25만원을 따로 묵혀둘 생각이라고 전했다. 고용 불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