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유명한 이론 중의 하나가 소위 ‘20대80 법칙’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 투입량과 산출량, 노력과 성과 사이에는 불균형이 있으며 이 불균형의 관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100년 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보통 마케팅 분야에 쓰이는 이 이론은 백화점 같은 곳의 매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백화점 고객 중 20%인 상위계층이 전체 매출의 80%를 일으킨다는 예이다. 이런 사례를 현실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 일명 ‘VIP 마케팅’이다.

부자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럭셔리 마케팅’ 또는 ‘VVIP 마케팅’이다. 초기에는 백화점이나 호텔 등 일부 업종에 국한 된 얘기였지만 이제는 항공, 건설, 자동차 등 전 방위 산업에 널리 쓰이는 부분이다.

금융-PB센터서 원스톱 금융쇼핑
우리나라 산업 중에서 부자와 가장 밀접한 산업을 찾는다면 단연 ‘금융업’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부자들만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PB센터는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이자 부자들의 소통공간이다. 하지만 금융업에서 보면 일반인보다는 극히 적은 숫자의 부자들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남겨주는 공간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일부 지역의 PB센터를 강화했다. 주로 ‘강남 3구’에 몰려있는 PB센터만 100개에 이른다. 그중 고액 자산관리의 메카로 부상한 강남파이낸스빌딩은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 건물에는 7개금융사의 VVIP센터가 몰려 있다. 한마디로 ‘원스톱 PB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이 이런 치열한 전선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 강화가 원인이다. 지난 2008년과 2011년 금융위기가 PB센터의 서비스를 받던 부자들을 서비스를 요구하는 부자들로 진화시켰다. PB들이 권하는 대로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은 부자들이 좀 더 다양한 전략과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면서 PB센터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한 PB지점은 일반 PB센터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통 PB센터는 금융자산 10억원 안팎의 자산가가 주 고객이지만 여기서는 30억 이상의 자산가를 집중 공략한다는 게 금융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S증권 PB센터는 인력을 경력 10년 이상의 부·차장급으로 세팅했다. 업계 최고의 인력들을 스카우트해 배치했다는 전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 강남센터에만 들르면 한 곳에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는 장점 외에도 음식점이나 특수한 업종끼리 한 자리에 몰려 있을 때 도움이 된 것처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한다. 이곳의 한 PB는 “어떤 자산가는 이 빌딩에 들러 복수의 PB센터에 몇 십억원을 분산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경향은 상품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PB센터를 찾는 부자들은 누구나 다 받는 뻔한 서비스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한다. 강남의 한 PB는 “지난 금융위기로 학습 효과를 얻은 부자들은 센터에 들르기 전에 자기 나름대로의 투자에 대한 구상을 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마련해 온 밑그림을 바탕으로 PB들의 도움을 받아 투자 전략을 완성한다. 때문에 요즘은 개인 맞춤식 전략을 짜는 게 일상화 된 업무가 됐다”고 귀띔했다.

일반 예금을 하러 오는 개인고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서비스이지만 금융사의 주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우수 고객으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도 있다.

항공-비즈니스석 늘리고 서비스 강화
이런 부자들을 위한 마케팅은 금융권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부자 마케팅은 그 대상인 고객도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고, 마케팅 방식 역시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고객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6월 대한항공은 ‘하늘 위의 특급 호텔’이라 불리는 초대형 여객기 A380을 도입해 뉴욕, LA 노선 등을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A380은 세계 최초로 2층 전체를 비즈니스 석으로 만들었다. A380은 기내에 바 라운지와 면세품 전시공간 등을 구비하고 넓은 좌석 공간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비즈니스 승객을 위해 전문 바텐더 교육을 받은 승무원이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무료로 제공할 정도다.

A380은 취항 6개월 만에 40만명 이상의 승객을 태웠다. 운항거리만 592만8262㎞. 지구를 150바퀴나 돌았다. 아시아나항공도 미주와 유럽 노선에 세계적인 요리 전문학교를 수료한 요리사 승무원을 탑승시키고, 조리사 복장을 한 요리사 승무원은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승객들에게 각종 음식을 직접 서비스한다.

이렇게 항공사들이 경쟁적으로 부자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이미지 제고뿐 아니라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에서는 “항공기의 1등석과 비즈니스 석은 합쳐서 20% 미만 수준이지만 여객기 운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50%에 달한다”면서 “결국 항공사의 경영을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건설·유통-일반인 시선 고려 조용한 마케팅
이런 부자 마케팅은 건설업에까지 도입됐다. 한 채에 20억~30억 원이 넘는 초고가 주택의 경우에는 공개모집이 아닌 계약자 추천방식으로 분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수도권에 지어진 타운하우스 등도 이런 분양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은 해외 골프 클럽처럼 기존 입주자들의 추천을 통해 새로운 입주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입주자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경우 한 때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방식을 바꿔 조용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최우수고객 초대행사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백화점들은 최근엔 부자 고객들을 초청해 국내 미공개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는 등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마케팅 대상을 4단계로 세분화해 각각의 등급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이렇게 부자 마케팅이 광범위 하게 도입되는 현상은 어떤 이유일까?
결국은 20대80 법칙처럼 부자들의 소비지출에서 각 산업의 주요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어렵지만 일단 부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이처럼 다양하다. 때문에 모두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한동철 부자연구학회 회장은 부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자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중 소수만이 자신의 꿈을 달성한다.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하라. 현재의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지 확실하게 그려야 한다. 정신이 물질을 만든다. 현재 물질이 전혀 없어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정신을 끌어올리고 또 올리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