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 말은 비단 경제학 뿐만 아니라 사회학을 비롯한 시사관련 뉴스.평론에서 가끔 보게 된다.그레샴의 법칙이라고도 표현되는데 , 기원은 이렇다.과거 영국 튜토왕조의 헨리8세는 부족한 재정상황을 타개하고자 당시 통용되는 은화의 은 함량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했다.기록에 따르면 1543년 은화에는 은함량이 90%가 넘었으나 2년후인 1545년에는 1/3인 33%정도로 함량미달의 은화가 통용되었다고 한다.경제주체들은 같은 가치를 지닌 은화 1실링에 대해 은함량이 넉넉한 즉 실질가치가 있는 기존의 좋은 은화는 따로 보관하고 함량미달인 동전만 거래에 사용했다.말 그대로 함량미달의 악화가 정상함량의 양화를 시장에서 구축(Crowding out) 즉 , 몰아냈던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정부지출과 민간투자의 관계를 설명할 때 쓰이고는 한다.즉 정부가 지출을 증가시키면 민간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된다.참고로 구축효과에 대해서는 경제학파에 따라 관점을 달리한다.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고전학파는 구축효과로 인해 정부정책은 완전히 무용하다 주장하고 큰정부를 지향하는 케인즈학파는 구축효과는 불완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정책은 유용하다 주장한다.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한국은행이 역대 최저수준인 0.5%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하였음에도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해진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 정부지출이라는 악화가 민간투자라는 양화를 몰아내고 있지 않나 싶기에 고전학파의 의견이 현상황을 더욱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현대에 와서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진품을 모방해 만드는 가품이 대표적이다.가품의 거래가 많아지게 되면 그만큼 진품의 수요와 공급은 줄어들게 되고 결국 진품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다.부동산 시장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습이 예상된다.현재 정부는 분양가상한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등 신축아파트 공급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주택공급시 임대주택의 비중을 늘리도록 하고 있다.단기적인 관점에서보면 건설업계는 당장의 수익을 위해 사업성이 저하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주택공급을 계속하겠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규아파트 공급이 손실과 직결되는 상황이 된다면 주택공급의 유인이 사라지게 되어 결국 공급이 축소될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시장에서 양화가 계속 공급되어야 부동산 시장이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다 할 수 있음에도 현재 상황은 양화의 공급이 아닌 양화를 축소시키고자 하는 모습이다.영국에서는 그러했다.함량충분한 양화는 계속 집에 두고 부실한 악화는 시장에 내놓았다.이러한 모습이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에도 재현된 바 있다.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때마다 , 인기지역의 고가 아파트는 양화로서 계속 보관하고 비인기지역의 아파트는 매물로 내놓지 않았던가.이미 ‘똑똑한 한 채’라는 표현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2020년 6월 현재 , 서울 강남지역은 중과세 회피를 위한 급매물들이 다 정리되어 호가가 다시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강남이 다시 상승하면 정부는 기존의 대책에 더해 더욱 강력한 정책을 발표하리라 예상된다.과연 더욱 강력한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고 말이다.강남지역에 신축 아파트들이 대규모로 공급되어 악화/양화의 구분이 없어진다면 오히려 부동산 가격은 안정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서울과 수도권에 총 37만호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제한적인 효과만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양화보유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충분한 양화가 공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옛날 영국만의 이야기이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