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fine, thanks. And you?”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익숙한 말에 요즘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아마 "No"라고 답할 것이다. ‘그놈의 경제’ 탓에 먹고 살기가 팍팍하니 어쩌면 당연한 대답일 터이다. 그런데, 이 마땅한 답변 속에는 국내 파인다이닝(Fine Dining)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가 숨어 있다.

파인다이닝은 영어 단어 '파인(fine, 훌륭한)과 '다이닝(dining, 정찬)’이 결합한 말로, 패밀리 레스토랑과 같은 일반적인 캐주얼 다이닝보다 수준 높은 식당을 칭할 때 쓰인다. 식재료, 메뉴 구성, 인력, 인테리어 등 모든 요소에 아낌없이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부은 요식업계의 퍼스트 클래스다. 영화 속 상류층이 자주 찾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업계의 정점에서 우리 식문화를 이끌어야 할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12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외식산업 시장에서 파인다이닝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1%에 불과하다. 파인다이닝이 전체 외식 시장에서 약 10%의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과 비교해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업계에서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의 서울편 발간을 계기로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슐랭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안내서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내 파인다이닝이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우리 소비자들의 호주머니가 ‘파인’하지 않아서다. 최고급을 지향하기에 파인다이닝은 고가일 수 밖에 없다. 1인 저녁식사를 기준으로 주류를 포함해 한 끼에 최소 10만원 이상은 내야 한다. 즉, 명품 가방과 같은 일종의 사치제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사치스러운 한 끼를 위해 지갑을 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도약을 위한 방법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볼 만한’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것이다. 제주도 여행 경비도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비 보다 적어도 두 배는 비싸다. 그럼에도 해외여행객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넉넉치 않더라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다들 떠나는 것으로, 해외여행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낌 없이 투자한다는 ‘가치소비’ 성향을 만족시켜주는 상품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현재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과연 ‘제값’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점심·저녁 메뉴의 이원화, 와인 소비 촉진 프로모션, 세컨드 브랜드 개발 등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중 세컨드 브랜드 개발의 경우, 파인다이닝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쓰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업성이 낮은 파인 다이닝으로는 명성을 얻고, 가성비 좋은 다른 대중브랜드로는 수익을 내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파인다이닝은 아니지만, 일반 대중식당보다는 수준이 높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실패하며 이 같은 고급 식당 경영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영업이 제법 잘 돼 지점 계획까지 세우던 브랜드였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와 메르스 사태로 인한 소비 위축에 직격타를 맞은 탓에 접어야 했다. 아마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꿋꿋하고 슬기롭게 이 위기를 이겨내 다시 한번 우리 식문화의 선두에 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