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직 미국이 무역합의 파기까지는 거론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나 두 슈퍼파워의 갈등이 진영 논리로 번지는 장면은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의 G11을 구상하며 한국을 '반중 전선'에 포함시키려 하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는 정중동이다.

홍콩 국가보안법, 트럼프의 G11 구상
중국이 양회 기간 전인대를 통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두고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일국양제 체계를 견지하고 보완하는 중대한 조치”라면서 “중국 전체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설명했으나, 이미 현지에서는 민주화 및 야권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이 홍콩에 집결한 가운데 현지에서는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미 360명이 넘는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도 움직이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하게 견제하며 우려하던 상황에서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상응조치로 미국이 그동안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에 착수한다"고 말했다.

홍콩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몰렸다는 말이 나온다. 홍콩은 1997년 중국령이 된 이후로도 매우 특수한 위치를 점했으며 아시아 금융허브의 역할을 명확하게 수행했다. 실제로 홍콩 교역소에 따르면 4월 기준 홍콩 증시에는 무려 2477개의 기업이 상장되어 있으며 이들의 시가총액을 모두 더하면 3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규모적인 측면에서 미국 나스닥과 도쿄, 런던, 상하이에 이은 네 번째 금융허브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홍콩에는 현재 약 8만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13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이 있다. 홍콩은 중국령이면서도 사회주의의 중국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가 사라질 경우,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후폭풍이 예상된다. 당장 비자 및 통관의 절차가 까다로워지며 세계의 공장 중국과 글로벌 공급망 체계의 심각한 균열이 예상된다.

"숨 죽이다'
미중 충돌이 격화되고 있으나 아직 최악의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을 시사했으나 구체적인 액션플랜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중국은 물론 미국의 타격도 상당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중국이 코로나19로 글로벌 정세가 어수선한 틈을 타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고, 이에 따른 부정적인 경제 파급효과를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도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특히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무차별 치킨게임으로 자국 경제의 악영향을 감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가뜩이나 국제유가까지 요동치는 가운데 일이 잘못될 경우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미중 무역합의 파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직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신 외교 군사적 옵션이 가동될 전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G7(주요 7국) 정상 회의를 9월로 연기하고, 한국·호주·인도·러시아 등 4국을 추가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G7 의장국인 상황에서 이들을 미국으로 불러오려 했으나 독일의 강한 반발에 주춤한 상태에서, G7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예 새로운 G11 체제를 고민하는 뉘앙스다.

여기에 중국 군함이 대만 인근에서 훈련을 시작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미중 슈퍼파워의 격돌이 당장의 충돌은 아니더라도, 외교 및 군사적 관점에서 광범위한 진영 싸움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사태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국내 산업계 '정중동'
홍콩 국가보안법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강해지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밀월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분간 대결국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미국 내 상황이 미묘하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커지는 가운데 한 때 실탄이 발사되고, 성난 시위대가 백악관 바로 앞까지 몰려오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의 '팩트체크 딱지 논란'에 격노해 SNS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는 실리콘밸리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물론 페이스북은 트위터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는 등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고립이 선명하다.

이러한 전략적 고민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과의 끝모를 갈등도 결국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결국 이 문제는 미국 대통령 선거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내부와 외부의 적과 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선명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은 더욱 결집할 것이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분간은 지금의 전쟁 상황을 끌고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물론 산업계가 고민하는 이유다. 트럼프'발' 글로벌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당장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G11 초대장을 두고도 고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를 수락할 경우 국제무대의 높아진 위상을 정립할 수 있으나 자칫 중국의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도 아슬아슬하다. 최근 TSMC가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서며 중국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국내 전자 및 반도체 업계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정중동의 행보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싸움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일본처럼 미국에 바짝 밀착할 수도, 그렇다고 중국과 공조해 미국에 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