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유행기간 동안 많은 소비자들이 집에 머물면서 네스카페 커피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출처= 123RF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글로벌 가정용품 회사 프록터앤갬블(P&G)의 임원들은 일주일에 3일 오전 7시에 서로 만나 고객들의 동향을 점검한다. 이번 주에는 그들이 무엇을 많이 샀는지, 그들의 요구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회사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이 회사의 존 뮬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실적발표회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들의 습관, 요구, 욕망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탁세제 타이드(Tide), 주방세제 페어리(Fairy), 샴푸 팬틴(Pantene), 면도기 질레트(Gillette) 등 유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P&G는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형성된 소비자들의 새로운 습관이 그들의 쇼핑 방식을 영구히 바꿀 것인지 예의 주시하는 여러 소비재 대기업 중 하나다.

우선 나타나고 있는 초기 증거는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고, 건강과 가정을 위한 제품의 구매가 늘어나고 있으며, 비용 절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격에 보다 예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슬레(Nestle)의 마크 슈나이더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애널리스트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코로나 위기가 회사의 각 제품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네슬레는 아침 식사 대용식인 시리얼 치리오스(Cheerios), 라면 브랜드 매기(Maggi), 아이스크림 하겐다즈, 네스카페 커피, 탄산수 산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등의 유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은 빨리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아니면 최소한 몇 분기 동안 지속될 것이며 이로 인해 제품군별 판매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순식간에 거의 모든 것이 바뀐 환경에서 소비재 회사들은 소비자들의 새로운 구매 패턴 중 어느 것이 일시적일 것인지, 또 어느 것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돈을 소비하는 방식을 재구성할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홍차의 대중화를 가져온 립톤(Lipton), 도브(Dove) 비누, 헬만(Hellmann) 마요네즈, 벤앤제리스(Ben & Jerry's)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글로벌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Unilever)의 하네케 파베 식음료부문 대표는 "주력 제품, 가격, 포장 규격을 바꿀 필요가 있는지 각 시장별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경기침체에 대한 '교과서’는 없습니다. 현재 상황은 우리가 예측 가능한 미래에 매우 민첩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할 뿐입니다.”

모든 것은 전자상거래로 통한다(E-evrything)

많은 것들이 아직 불확실하지만, 일부 생활방식의 변화와 소비패턴의 변화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보다 더 오래 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상점들이 문을 닫기도 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선택했는데, 이제 그런 습관이 고착화되면서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완전히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파트너들은 연구 논문에서 "중국의 사례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 디지털 채널에 새롭게 익숙해진 기성세대와 새롭게 소비자 층에 가담한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거래가 전체 소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포인트 높아졌다”고 밝혔다.

네슬레의 전 세계 전자상거래 매출은 올해 첫 3개월 동안 30% 증가했고, P&G의 온라인 매출도 같은 기간 35% 성장했다.

▲ P&G는 코로나 유행기간 동안 세탁 제품의 판매가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출처= Digital Trends

건강 및 위생제품 판매 급증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더불어 두드러진 변화는 건강과 웰빙 부문에 대한 관심의 증가다. 건강과 웰빙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꾸준히 성장하던 생활 트렌드였지만 코로나 유행 기간 동안 더욱 탄력을 받았다.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주변 사물의 표면을 자주 닦고 손을 자주 씻으며, 비타민C가 풍부해 건강에 이롭다고 여겨지는 오렌지 주스의 매출이 급증했다.

앨런 조프 유니레버 CEO는 "건강과 웰빙과 관련된 제품군들의 판매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유니레버 파베 대표는 “아연과 비타민C가 함유된 음료와 립톤 면역강화 제품(Lipton Immune Support)의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런 제품들을 전 세계에 출시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건강 관련 제품은 앞으로도 제품 혁신의 우선순위가 될 것입니다.”

P&G의 뮬러 CFO는 "건강, 위생, 청소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증가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며 “미국 소비자들이 옷을 더 자주 세탁하고 있으며, 세탁 물량이 급증하고 있어 회사는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머물면서 찾은 새로운 즐거움

봉쇄령이 해제되고 식당, 술집,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어도 사람들은 외출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P&G의 뮬러 CFO는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더 많은 식사를 하고, 집에서 더 많은 청소를 하는 등, 집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많은 소비자들은 여가를 위한 지출을 줄일 것이다. 또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할 것이다. 영국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3월 유럽 각국의 가계 저축률이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저축률은 198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맥킨지의 보고서는 "규제가 풀려도 소비자들은 집에 머물면서 새롭게 찾게 된 즐거움을 누리며 저축을 늘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소매기술기업 스택라인(Stackline)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빵 만드는 기계의 온라인 판매가 지난 3월 전년 대비 652% 증가하며 일회용 장갑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웨이트트레이닝 장비(307%), 공작 키트(117%), 탁구대(89%)의 판매 증가는 많은 소비자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음을 반영한다.

유니레버는 중국에서 코로나 위기 동안 문을 식당 중 15%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조치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가치와 신뢰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발한 경기 침체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이 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는 기업과 소비자들이 가까운 미래에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가난한 나라나 부유한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물가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회사가 부상할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P&G는 포트폴리오가 일상용품에 집중돼 있어 경기 침체를 헤쳐 나가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코스트코(Costco), 식료품 및 건강보조제품 유통업체 월그린스(Walgreens), 약국 체인 CVS 같은 소매업체들의 저가 자체상표 제품의 매출 증가는 소비자들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징후다. 달러제너럴(Dollar General DG)과 알디(Aldi) 같은 저가 할인점의 매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네슬레, 유니레버, P&G 같은 소비재 대기업들은 소비자들이 가격과 가치의 균형을 맞추며 친숙하고 위험 부담이 적은 기존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잘 알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할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제품에 돈을 쓸 여유가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