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2 Forest-Black hole, 182×228㎝, Mixed media, 2015 ⓒADAGP

류영신의 작품에 대해 글 쓴지 일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작품은 또 그 시간만큼 진화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화는 그녀의 작품이 실험적인 요소라는 측면에서 전보다 더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예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평론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류영신의 변화는 반가운 일인데, 특히 ‘숲–블랙홀 (Forest-Black hole)’시리즈를 볼 때는 일말의 즐거움이 느껴질 정도다. 이 연작을 보고 있노라면 고치에서 탈피하듯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더 발전하는 화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 시리즈에서는 그 화풍이나 작품 소재 혹은 주제에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지만 또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물론 구석구석 같은 작품인 것 마냥 느껴지게 하는 흔적들이 있지만, 일부 의도적으로 배치한 요소를 제외하고 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뜻 보기엔 그 작품이 그 작품인 것 같다고 말하기 쉽지만 실은 작품마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같아 보이지만 절대 같지 않다, 바로 이게 핵심인 것이다.

그의 정물화에서는 작품마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화가는 바라보는 시점의 각도를 옮기면서 때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형태와의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오묘한 흰빛이 흐르는 가운데 사용한 빛나는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의 사용은 실로 압권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 류영신 역시 그녀의 최근 작품인 숲 시리즈에서 흰색과 검은색을 독특하게 엮어 쓴 게 아닌가 하고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비교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화가가 엔터테인먼트라는 허구의 세계에 이끌리는 대신, 스스로의 개성을 살린 채 내면의 소리를 따르게 되면 정말 대단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혹 작품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

경청하듯 감상하노라면 분명히 보이지만 또 어찌 보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후자의 경우는 예술작품의 탄생에 필요하다 여겨지는 요소이지만 실제 일어나기도, 예측하기도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은 순간도 있다. 화가의 작품 중에서 나무를 소재로 한 최근 추상화를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화가의 작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나는 그녀의 작품마다 보이는 고요함에 감탄하게 된다. 화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나무 등걸에서 찾을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은, 특히 절제된 표현주의적 요소를 드러낼 때 가장 설득력을 지닌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현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면 류영신은 자연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 자연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최근 작품에서는 좀 더 자연과 맞닿아 있고 싶은 노력이 느껴진다. 지난 몇 달간 그녀의 작품은 자연의 어두운 구석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녀의 화풍을 구성하는 비유이기도 하다.

그녀의(South Korea Painter RYU YOUNG SHIN,서양화가 류영신,류영신 작가,柳栐慎,ARTIST RYU YOUNG SHIN)작품, 숲–블랙홀은 대충 훑어 보는게 아니라, 자세히 보아야 한다. 이미지 그 이상을 담고 있는 작품은 보는 이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화가가 실제 자연 속에서 나무 등걸을 매만지며 관찰하던 기억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뻗어나가는 진실을 찾아 치밀하게 표현한다. 공예를 예술로 승화시키듯 류영신은 자연을 그린다.

 

△글=로버트 C 모건(Robert C. Morgan)

저명한 미술 평론가로서 1997년 이래 한국에 자주 방문해서 강의한 적이 있다. 짤즈부르그의 유럽예술과학협회원(European Academy of Sciences and Arts in Salzburg)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