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신동빈의 롯데, 정용진의 신세계가 코로나19와 유통환경 변화, 오프라인 유통 위기에 맞선 대응을 시작했다. '플랜 A'보다 더 강력한 '플랜 B'를 가동하면서다. 그러나 두 기업은 같은 비전 속 집중하는 부분이 사뭇 다르다. 재계는 오프라인 전통 유통공룡인 두 수장들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 신동빈 회장. 사진=롯데지주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오프라인 유통 기업 DNA를 유지하되 다운사이징(Downsizing) 전략을 추진하는 반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유통 기본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엿보는 방식으로 같은 듯 다른 위기 대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선, 롯데는 사업 축소를 통한 유통 핵심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오프라인 유통 인력과 자산을 줄이고, 보다 슬림하고 효율성 높은 조직을 만들어 언택트 시대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신 회장이 추진하는 유통 부문의 굵직한 변화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부동산=현금’으로 인식하던 그룹 사고를 깨고, 롯데쇼핑의 백화점·마트·호텔·물류·오피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부동산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사업을 시도한 것이 시작이다. 

롯데는 부동산의 운용권을 유지하면서도 투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리츠를 묘수로 활용했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리츠 형태로 주식시장에 상장,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는 방식이었다. 롯데쇼핑이 리츠 형태로 보유 부동산을 현금화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통합 온라인몰 ‘롯데ON’ 출범도 지난해 기획됐다.

당시 롯데리츠의 감정평가액은 1조5000억원에 달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업계 역시 롯데가 부동산을 보는 시각 변화에 놀랐다. IMF 외환위기에도 유동화하지 않았던 부분을 바꾼 것에서 신 회장의 롯데쇼핑 개선 의지를 엿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1분기 롯데그룹은 롯데쇼핑 200여개 비효율 점포정리 계획을 밝힌다. 2월13일 밝힌 비효율 점포 정리를 핵심으로 하는 ‘2020년 운영 전략’의 내용이 그것이다. 핵심 역량을 활용, 온·오프라인 체질 개선에 나선단 방침이다.

핵심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롯데쇼핑 내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 등 총 700여개 점포 중 30%를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미니백화점의 실험장이던 엘큐브와 영플라자도 명동점과 세종점을 제외하고 모두 폐점 수순을 밟았다.

최근 행보에는 그룹 모태인 오프라인 유통을 벗고 온라인 육성에 대한 적극성이 보인다. 지난달 오픈한 ‘롯데ON’을 비롯해 최근 황각규 부회장의 진천 물류 허브 터미널 방문이 그렇다.

지난 19일 열린 2분기 첫 임원회의에서 신 회장이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강조했고, 바로 다음날 황 부회장의 센터 방문이 이뤄진 것, 롯데 계열사의 오프라인 역량을 온라인으로 확대하겠단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 정용진 부회장. 사진=신세계

반면, 정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는 핵심 사업에 강점을 두면서도 단계적 사업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는 최근 신규호텔 브랜드 '그랜드 조선' 론칭을 알렸다. 업계에서는 이 행보를 호텔사업부를 강화, 자체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평가했다. 

신세계조선이 최근 6년간 메리어트 그룹에 지급한 '웨스턴' 브랜드 로열티 금액이 157억원에 달해서다. 이는 지난해 영업손실 124억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부동산 개발 계열사 성장에도 '통큰' 배팅을 했다.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는 올해 4월 약 4조6000억원의 투입되는 화성 국제테마파크 사업권을 따냈다. 이 프로젝트는 화성시 남양읍 일대 약 316만㎡에 조성되는 숙박·쇼핑·여가 복합시설 조성 사업이다. 그룹이 해오지 않은 글로벌 테마파크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이다. 

본연의 사업 ‘유통’에 대한 관심도 빼놓지 않고 있다. 실패에 그쳤지만 정 부회장이 추진했던 ‘삐에로 쇼핑’은 오프라인 매장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험적 역할을 마쳤고, 트레이더스, 일렉트로 맨 등 유통 본연의 강화 시도도 이어졌다.

일부 투자는 실패로 끝났지만 코로나19 이슈에서 빛을 본 SSG닷컴의 성과는 선제투자와 경험의 중요성을 살펴본 의미 있는 행보란 데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신세계와 이마트가 준비한 실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이마트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4조4995억원에 달했고, 이 중 3000억원이 단기 차입금이었다. 정 부회장 체제 이후 이렇다할 캐시카우를 키워내지 못한 여파가 크다. 

부동산 리츠 사업 이슈가 있지만 여건은 좋지 않다. IB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리츠(가칭)'가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을 시작했지만 이마트, 신세계, 신세계디에프 등 분리된 법인들의 부동산 자산을 한데 모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롯데쇼핑의 성공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시장 시선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의 롯데가 오프라인 유통 기업 DNA를 유지하되 슬림화를 추진하는 반면 정용진의 신세계는 유통 기본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엿보는 방식"이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장에서의 경험은 신세계가, 부동산과 재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롯데가 앞선 듯 한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