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EUV(Extreme Ultra Violet, 극자외선) 기반 최첨단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캠퍼스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고 21일 발표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후속 조치로 풀이되며, 초미세 공정 기술 적용 범위를 크게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중 무역전쟁 재발 가능성까지 나오는 가운데 무엇보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삼성전자의 구체적인 액션플랜에 시선이 집중된다.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출처=삼성전자

선명해지는 비전 2030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린다는 계획인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에서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겠다는 각오다.

계획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한다. 여기에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전략도 포함됐다. 국내 중소 팹리스 고객들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개발기간도 단축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IP, 아날로그 IP, 시큐리티(Security) IP 등 삼성전자가 개발한 IP를 지원하며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 및 불량 분석 툴(Tool) 및 소프트웨어 등도 제공한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는 지금까지 수준 높은 파운드리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어려움에 착안,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기준도 완화해,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의 소량제품 생산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올해 초 V1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 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V1 라인에서 초미세 EUV 공정 기반 7나노부터 혁신적인 GAA(Gate-All-Around) 구조를 적용한 3나노 이하 차세대 파운드리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V1 라인 가동으로 2020년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의 생산 규모가 2019년 대비 약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평택 EUV 파운드리 생산라인은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반 제품의 생산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5나노 제품을 올해 하반기에 화성에서 먼저 양산한 뒤, 평택 파운드리 라인에서도 주력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 퀄컴 X60. 출처=퀄컴

발 빠른 행보, 시선집중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포드에 따르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의 TSMC가 1분기 기준 무려 54.1%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으며 2위인 삼성전자는 15.9%의 점유율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파운드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TSMC와의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의 강자인 인텔에게 밀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의 자리를 인텔에게 내주고 말았다.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중심의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AMD와의 연합을 타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가운데, 선택과 집중 전략도 유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 퀄컴이 3세대 5G 모뎀인 스냅드래곤 X60 5G 모뎀-RF 시스템(X60)을 공개한 가운데, 일부 물량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소화한 장면이 중요하다.

퀄컴은 글로벌 모바일 AP 시장의 강자이면서 5G 시장에서는 9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 절대자다. X60의 물량을 따내는 쪽이 파운드리 측면의 5G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퀄컴이 이 물량을 어디에 줄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갤럭시S20에 자사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탑재를 포기하고 퀄컴 스냅드래곤 865를 지원하는 것이 퀄컴의 파운드리 수주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전히 모바일 AP 엑시노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면서도 유연한 대응을 통해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하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얼어붙는 최악의 상황까지 닥친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인 화웨이를 압박하기 위해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기간을 연장했으며, 아예 제3국을 통한 반도체 수급까지 막아서고 있다. 화웨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중국 반도체 기업과 오랜 연대를 보여주던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한편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발주를 받지 않는다 선언하자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파운드리 측면에서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공장을 건설해야 하는 TSMC가 자체 미세공정 경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데다 매출의 15%를 차지하는 화웨이와의 거래가 막힐 경우 화웨이가 그 대안으로 삼성전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를 수급받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재연 가능성까지 나오는 가운데 화웨이가 글로벌 반도체 수급전에서 밀려날 경우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화웨이와 협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중국 출장을 떠나 현지와의 협력기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큰 벽인 TSMC의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균열속에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측면의 반사이익을 얻는 한편 공격적인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적극 구사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파운드리 시장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은 조성된 상태다. 삼성전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운드리 중심의 다양한 전략적 선택을 바탕으로 점유율 상승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전망이다. 일각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는 것에 있기에, 삼성전자도 화웨이와 비슷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화웨이와의 거래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경우 모처럼 얻은 반사이익의 기회도 사라질 수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중국 언론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현지에 방문했을 당시 미국의 압박을 에둘러 비판하는 한편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과의 연대에 나서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설을 연이어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믿을 것은 초기술 격차 외에는 없다. 그 핵심이 바로 EUV다.

EUV는 기본 반도체 미세공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광원이다. 초미세 공정의 기반이 된 EUV 기술은 기존 불화아르곤 (ArF)보다 파장의 길이가 짧은 EUV 광원을 사용해, 보다 세밀한 반도체 회로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EUV 노광장비는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장비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부터 일찌감치 EUV 운용 노하우를 축적했으나 아직 완전히 다루고 있다 보기에는 어려운 수준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턴키 방식의 토털 솔루션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팹리스가 제안하면 빠르게 원스톱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미세 공정 경쟁과 함께 EUV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술 격차가 이어지면 삼성전자의 승부수도 '해 볼만 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평택 EUV 라인 구축을 바탕으로 EUV 공정이 적용되는 분야가 많아질수록 더욱 효과적인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 정은승 사장은 "5나노 이하 공정 제품의 생산 규모를 확대해 EUV 기반 초미세 시장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전략적 투자와 지속적인 인력 채용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의 탄탄한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