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지급 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를 플랫폼 사업자로 인정하고 CP(콘텐츠제공자) 측이 ISP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터넷의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ISP가 온전히 트래픽 부담을 떠안는 건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 문제는 망 중립성이라는 관념적 가치에 따른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트래픽 부담이 커지는 ISP 입장에서는 망 이용료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깔린 것도 사실이다.

▲ SK브로드밴드 vs 넷플릭스. 출처=이코노믹리뷰DB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의 법적 공방에 따라 망 이용대가 관련 논쟁이 2라운드를 맞았다. 지난 2016년 SKB는 페이스북과 망 이용대가 문제로 갈등을 겪었지만 페이스북 측이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기로하며 사건이 일단락 된 바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SKB를 비롯한 ISP는 트래픽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은 CP에 있는 반면 인터넷 환경 관리에 대해서는 ISP가 책임을 모두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러한 구조에선 CP는 원활한 인터넷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트래픽 조절 여부는 CP에 있다. 가령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유럽연합(EU) 집행부는 실내 활동 급증에 따라 인터넷 망이 과부하에 걸릴 것을 우려해 넷플릭스를 포함한 구글, 아마존 프라임 등 글로벌 OTT 업체를 대상으로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은 비트레이트를 25% 줄이는 등 협조했다.

특히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서비스하는 구글은 유럽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튜브의 기본 화질을 표준화질(SD급)로 낮췄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경우 국내에선 화질 조정을 하지 않았다. 국내 인터넷 환경이 그만큼 안정적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장선에서 SKB는 “넷플릭스는 자사의 동영상 압축기술을 통해 비트레이트를 줄이더라도 초고화질(UHD)이 고화질(HD)로 떨어지지 않아 품질에는 변화가 없다고 주장해 트래픽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부담을 전적으로 ISP 사업자에게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문제제기의 핵심에는 해외 CP가 트래픽 급증을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디지털 미디어렙 나스미디어가 발표한 ‘2020 인터넷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동영상 시청시 유튜브를 본다는 응답은 무려 93.7%에 달했고 넷플릭스의 이용률은 지난해 결과인 11.9%보다 2배 늘어난 28.6%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변재일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LTE 트래픽을 발생 시키는 상위 10개(국내 5개 · 국외 5개) 사업자의 트래픽 발생 비율을 조사한 결과, 국외 사업자의 트래픽이 67.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래픽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동영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트래픽 중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57.7%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구글과 넷플릭스 등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CP는 국내 ISP에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지 않다. 반면 국내 CP인 네이버, 카카오는 매년 각각 700억원, 300억원 규모의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SP “울며 겨자먹기 투자”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ISP는 CP의 트래픽 발생량에 따라 종속적으로 망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동영상의 경우 같은 영상이라도 SD급으로 전송하는 것과 UHD급으로 전송할 때의 트래픽 차이는 8배까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유료 가입자가 40만명 수준이었지만 2년만에 가입자가 5배 증가해 현재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튜브는 모든 연령대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으로 꼽힐만큼 많은 사용량을 기록한다.

CP가 트래픽 유발에 따른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경우 ISP의 망 자원을 절약할 유인이 없고, ISP 사업자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는 평이다. 이는 ISP 사업자에게 불필요한 망 투자를 일으키고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ISP 사업자는 CP의 서비스 품질을 이용자에게 문제없이 전달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는 최근 3년간 매년 8000~90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꾸준히 집행하는 한편 해외망 확충, 우회루트 확보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망은 '양면시장'…이중과세 아니다”

통신 업계는 인터넷 망이 양면시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ISP가 CP와 이용자의 중간에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CP와 이용자로부터 적절한 비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 참여자 간 요금부담 주체와 수준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중과세는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양면시장의 관점으로 보면 넷플릭스, 구글 등을 비롯한 글로벌 CP들은 국내 인터넷 가입자의 망 이용요금과 국내 CP의 망 이용대가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셈이다.

수익 창출이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러한 주장에 대해 ISP가 주요 CP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 대비 입장이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만큼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트래픽은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예정이며 지금처럼 ISP가 투자 비용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에선 생태계 지속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망 이용대가와 관련 SKB와 넷플릭스는 앞서 9차례 협상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SKB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을 신청했으나 넷플릭스가 소송이라는 강수를 두며 법적공방으로 번진 상황이다.

양사의 분쟁 결과는 국내 통신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이 발휘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지난 2014년 미국 컴캐스트와의 비슷한 분쟁 이후 망 이용대가를 주기로 계약했고, 이어 AT&T, 버라이즌, 타임워너케이블 등과 잇따라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에 합의한 바 있다.

최근의 전선은?

국내 ISP의 정당한 망 이용료 요구와 글로벌 CP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의 전선은 사실상 CP와 ISP의 전선으로 고착화됐다. 국내 CP의 경우 한 때 막대한 망 이용료를 내고 있으나 글로벌 CP는 이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CP와 함께 ISP의 망 이용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으로 뭉친상태다.

그런 이유로 국내외 CP가 일종의 연합군을 조성해 ISP와 전쟁을 벌이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으나, ISP는 정당한 망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