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조선왕조의 황혼기인 1896년 사업가 박승직이 서울(한성부) 종로에 세운 ‘박승직 상점’에서 두산그룹(이하 두산)은 시작됐다. 

박승직 상점은 OB그룹, 두산까지 명맥이 이어지며 다사다난한 근현대사의 파도를 견뎠다. 그러나 최근 두산은 사상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있다. 두산이 그간 마주한 큰 위기들과 ‘연결된’ 현재의 상황을 정리해 봤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과 주력사업 전환  

현재 두산은 중공업, 건설 등 규모가 큰 인프라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사실 두산의 본래 주력사업은 아니었다. 주력이 바뀌게 된 계기는 두산이 마주한 ‘위기’였다. 

사연은 극적이다. 지난 1991년 두산의 전자 계열사인 두산전자(현 전자BG) 공장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인접한 낙동강에 유해물질인 ‘페놀’을 몰래 방류해왔고 수사당국은 이를 적발했다. 물론 이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두산의 전자사업 운영에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두산의 모기업과 같은 OB맥주에 대해 낙동강 인근 부산·경남지역의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특히 주류, 음료(코카콜라), 식품(KFC, 네슬레)등 다수의 식음료계 소비재들을 취급하는 주력사업에도 엄청난 타격이 가해졌다. 

이 시기 OB맥주는 그간 굳건하게 지켜오던 맥주업계 1위 자리를 크라운맥주(현재 하이트진로)의 ‘하이트’에게 내준다. 두산은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박용곤(경영진 3세, 장남) 회장을 퇴진시키고 동생인 박용오(차남) 회장을 경영 일선에 내세우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급기야 총수일가의 분쟁으로 이어진다. 이미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기 어려운 소비재 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도모하자는 박용성(3남), 박용만(5남) 전 회장과 두산의 역사가 있는 소비재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박용오 전 회장이 대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박용성, 박용만 회장의 의견이 경영에 반영됐고 박용오 회장이 물러나면서 OB맥주를 포함한 두산의 소비재 사업은 정리된다. 

두산은 2000년대 초 들어 중공업, 플랜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주력 분야를 완전히 바꾼다. 당시 상황에서 주력사업 변경은 두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이후 중공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서 결과적으로 당시의 판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이 때 매각된 소비재 사업들은 이후 두산이 매각한 가치보다 시장에서 훨씬 높게 재평가되면서 두산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 조감도. 출처=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 홈페이지

모든 위기의 시작점 ‘건설사업’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 미분양 사태’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현재 두산이 마주한 위기의 시초가 된다. 

두산 위브 더 제니스는 두산건설의 프리미엄급 아파트 브랜드다. 1995년 탄현동 택지개발 계획에서 시작해 2013년 완공 후 입주가 시작된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는 최고층 59층, 207m의 높이, 2700세대 규모의 대형 단지 아파트다. 서울 지하철 경의중앙선과 연결된 입지 등 유리한 조건을 전제한 아파트로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문제는 인근에 훨씬 더 입지조건이 좋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가치가 떨어졌다. 

2013년 입주 시작 당시 수많은 세대가 미분양으로 남으면서 두산건설은 약 1650억원의 손해를 본다. 건설사업 부문이 두산에 입힌 손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PF(Project Financing·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출자를 받아 사업을 시행하는 부동산 개발) 보증 방식으로 울산, 천안, 화성, 용인에서 진행된 건설 사업이 모두 적자를 기록하면서 두산건설은 약 1조7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한다. 이에 두산건설은 지난해 말 상장폐지 되고 두산중공업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 경남 창원시 소재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조립공장. 출처= 두산중공업

중공업까지 ‘휘청’ 대 위기 

건설부문을 중공업에서 떠안았다고 해서 건설이 기록한 손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손해의 뒷감당은 오롯이 두산중공업에게 넘겨졌다. 

현재 두산이 직면한 120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는 문제는 상황이 나쁘지 않던 중공업 사업이 휘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이 상장폐지되기 전부터 건설부문의 손해를 대손충당금(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회계 계정)으로 감당해왔는데 이제는 중공업 부문에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마주한 두 가지 위기는 건설부문에서 기록한 손해를 더 이상 감당하는 것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과 더불어 편중된 주역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장 동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의 현재 주력사업은 원자력, 화력발전이다. 물론 이 사업들은 두산중공업에게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나 문제는 이 사업군들이 여러가지의 외부 요인으로 추후 성장 동력이 약해졌다는 것에 있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탈(脫)원전/석탄 정책기조와 더불어 이전보다 강화된 환경규제 등 요인은 장기적 관점에서 화력/원자력 발전 사업의 성장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두산중공업의 주가에도 반영됐다. 2017년 2만1000원대였던 두산중공업의 3년동안 지속 하락해 현재는 3000원대(18일 종가 기준 3880원)까지 내려갔다.    

▲ 최근 3년 두산중공업 주가 추이. 출처= 네이버 증권

이 상황들을 그대로 두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두산중공업은 특단의 대책을 내린다. 18일 두산중공업은 약 400명의 임직원들에 대한 휴업을 실시할 것을 공표한다. 대상자들은 오는 21일부터 약 7개월 동안 임금의 70%를 보전 받는 유급휴직에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현재 두산이 처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다년간의 손해가 누적된 건설 부문의 정리 시점을 놓친 것이었다. 대신증권 양지환 연구원은 15일 발표한 리포트에서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회사, 유형자산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라면서 “이 작업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이후 두산그룹 전체에 대한 실적 전망이나 투자계의 평가가 나빠져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련의 상황은 과거 두산이 내린 주력 사업군 전환 결단이 ‘과연 최고의 선택이었는가’라는 의견까지 대두되게 하고 있다. 두산에게서 매각된 후 기업의 가치가 몇 배 이상으로 치솟은 소비재 사업 부문은 모두 현금흐름이 원활한 사업들이었다. 만약 해당 부문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은 오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 해석이며 중공업과 인프라로 인해 두산의 기업가치가 커진 것 또한 부정할 수 없기에 그다지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두산건설은 지난 15일 "천안 성성 레이크시티 두산위브의 시공권을 반납하고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런가하면 두산은 부채의 누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산건설을 포함해 소재사업부문 두산솔루스, 연료전지 사업부문 두산퓨어셀, 강원도 홍천 소재 골프장 클럽모우CC의와 더불어 두산의 상징이자 본사 건물이었던 동대문 두산타워의 매각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계획은 점점 가중되는 부채의 부담을 덜기 위한 자산 유동화 전략의 일환이다. 재계순위 15위(2019년 공정위 조사 기준)인 두산이 한국 경제에 미치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두산은 지난 120년 동안 쌓아올린 많은 것들을 단기간에 잃을 수 있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기에, 재계는 추후 두산이 보여줄 위기대응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