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으로 떠났다. 18일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장 사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 등과 함께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 및 대책을 논의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현장 경영의 재개다.

이재용 부회장은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중국 시안반도체 사업장 방문은, 단순히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지 사업체를 찾은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위기의 순간 해결의 단초를 글로벌 경영에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의 핵심 키워드에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 이재용 부회장이 시안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삼성

#글로벌 경영 의지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후 경영전면에 나서자 즉시 글로벌 경영의 시동을 걸었다. 특히 탄핵정국에 휘말려 수감생활을 한 직후인 2018년 초반 이 부회장은 말 그대로 '단기유학'에 비결될 정도의 연속적인 출장길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2018년 3월 출장을 떠난 이 부회장은 유럽과 캐나다를 종횡무진했고 그 해 5월에는 일본으로 날아가 현지 양대 통신사 NTT도코모와 KDDI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중국을 방문해 선전의 전자매장에 들러 삼성전자와 샤오미 부스를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전기차 부품 업체인 BYD는 물론 화웨이와 샤오미, BBK 등 중국 거대 전자 업체와 연이어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2018년 7월에는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기도 했다.

명절은 홀가분하게 글로벌 경영에 나설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실제로 지난해 설 명절에는 중국을 찾았다. 이 부회장이 설 명절에 외국을 찾은 것은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수감중이던 시기를 포함해, 3년만의 일이었다. 이 부회장은 중국 시안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아 반도체 2기 라인 공사 현장을 살펴보고, 연휴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그 해 추석에는 중동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다. 2013년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Abdullah Bin Abdul Aziz) 전 국왕의 왕명에 의해 시작된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 현장을 찾아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계신 여러분들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면서 "중동은 탈석유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 21세기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여러분이 흘리는 땀방울은 지금 이 새로운 기회를 내일의 소중한 결실로 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추석에는 브라질로 날아갔다. 브라질 북부 아마조나스(Amazonas) 주(州)에 위치한 삼성전자 마나우스 법인을 찾아 생산라인을 둘러봤으며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에서 나온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개척자 정신으로 100년 삼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 오늘 먼 이국의 현장에서 흘리는 땀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미래는 곧 글로벌 무대에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모색하고 파트너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면 당장 현지로 날아가 본인이 직접 '연결고리'를 잇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이 부회장의 거듭된 글로벌 경영의 중요한 행간이다.

▲ 브라질 공장을 찾은 이재용 부회장. 출처=삼성

#위기를 극복하라
이 부회장의 출장은 대부분 위기상황에서 비롯됐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카드로 글로벌 경영이 나오곤 했다. 실제로 2018년 상반기에 이뤄진 중국과 일본 출장의 경우 이 부회장의 출소 직후였으며, 당시 출장은 결국 삼성의 경영행보가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대내외적 메시지라는 말이 나온 바 있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인공지능과 스마트폰 및 5G 등 산적한 도전과제가 쌓여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중심이 되어 삼성 전체가 위기를 극복하고 있음을 알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8년 7월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가 여전한 상태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 이 부회장은 국내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나아가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기조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 정부와의 화학적 정책 시너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최적의 무대인 셈이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인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지난해 추석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출장도 2014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사실상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무리수라는 의혹이 충만한 상태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물산의 건설 현장에 찾아간 장면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사억적 측면에서는 탈 오일정책을 추구하는 중동의 실리콘밸리, 사우디와의 사업적 협력이 핵심이다.

18일 중국 출장도 비슷하다. 삼성 준법위의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한 직후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이 부회장은 현대자동차와 배터리 동맹을 시사하는 등 강력한 경영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으로 날아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것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재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강력한 시장 장악력 유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중국을 방문한 글로벌 기업인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라는 상징성도 있어, 양회를 앞 둔 중국 지도부에 좋은 이미지를 실어줄 수 있는 효과도 있다.

▲ 중국 출장중인 이재용 부회장. 출처=웨이보 갈무리

#반도체 굴기, 미묘한 시점
최근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정국에서 서로 책임론을 제기하며 충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화웨이와 자국 기업의 거래를 차단하는 한편 아예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화웨이 수급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한다. 중국 화웨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만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이 확정되는 등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한편 애플과 보잉에 대한 제재까지 시사하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미중 무역전쟁 재발 가능성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중국 시안반도체 현장을 찾은 것은, 정무적인 판단과 더불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위기를 정면으로 타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현장 발언을 보면 다급함이 느껴진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최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올해 반도체 업황 악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선제적인 조치를 주문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과의 접점 마련도 눈길을 끈다.

당장 양회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이 부회장이 방문한 시안반도체 현장은 중국과 삼성 모두에게 의미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중국 리커창 총리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시안반도체 현장을 찾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은, 2014년 5월 공장이 들어선 후 처음이다. 지금까지 지역관리가 현지 공장을 방문한 사례는 있으나 정상급 인사가 찾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업계에 따르면 리 총리의 방문 일정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다. 다소 즉흥적인 방문이었다는 설명이다.

리 총리의 당시 방문은 여러가지 포석이 있었다. 특히 외국 기업의 탈 중국 행렬을 의식한 것이라는 의견이 눈길을 끈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속화되는 한편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는 가운데, 리 총리가 '그럼에도' 자리를 지킨 삼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리 총리는 당시 공장을 방문해 "중국 대외 개방의 문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식재산권을 엄격히 보호하고 중국에 등록한 모든 국내외 기업을 동일하게 대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당시 현지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했으나 시안반도체 공장은 유지한 가운데, 리 총리가 현장을 찾아 삼성과의 동맹을 재확인한 셈이다.

리 총리의 방문을 두고 자국 기업에 대한 채찍질과 함께, 중국 반도체와 글로벌 반도체의 시너지를 노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삼성과의 협력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 밖에 없으나, 이 부회장이 직접 중국을 찾은 것은 결국 현지와의 강력한 반도체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