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PN의 KBO 관련기사. 출처= ESPN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콘텐츠 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의 실적부진으로 광고시장이 경직되면서 콘텐츠 제작의 원동력인 상업 광고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전에는 콘텐츠로써 가치를 생각해본 적 없던 분야가 떠오르면서 새로운 관점의 한류 열풍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다. 스포츠채널 ESPN을 통한 KBO의 미국 중계가 시작되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KBO 열풍’이 불고 있다.

야구 종주국에 야구를 수출하다

지난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의 해외 중계권에 대한 입찰을 진행했다. 이에 전 세계 주요 방송사들과 OTT 플랫폼들이 관심을 가졌고 세계 최대규모의 스포츠 채널인 미국의 ESPN도 중계권 입찰에 참여했다. ESPN은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미국의 프로야구 MLB리그 경기 중계의 대체로 코로나10 확산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프로스포츠 리그인 KBO의 중계권을 선택했다. 세부 조건 조율에서 KBO와 ESPN은 서로 원하는 조건이 일치하지 않아 중계권 협상이 다소 늘어지긴 했지만 결국 양 측은 적정선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ESPN은 하루에 최대 5경기까지 열리는 KBO 경기 중 1경기를 선택해서 중계한다. 이에 5월 5일 대구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 삼성라이온스의 개막전 경기를 시작으로 ESPN은 KBO리그의 중계를 시작했다. 

야구에 대한 미국의 자부심은 크다. 현대 야구경기의 룰과 체계가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MLB리그의 챔피언 결정전이 ‘USA 시리즈’나 ‘아메리카 시리즈’가 아닌 ‘월드 시리즈’인 것에도 야구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MLB는 전 세계 모든 야구선수들이 도전하고자 하는 최고의 무대다. 이런 미국에 한국의 프로야구가 실시간 생중계되는 것은 굉장히 역사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스포츠 미디어 닛칸스포츠(日刊スポーツ)는 “미국에서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자국 국가대표팀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나 월드시리즈-재팬시리즈 챔피언 올스타전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의 프로야구 경기가 방송된 전례가 없다”라면서 ESPN의 KBO중계에 대한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 KBO의 배트플립 영상을 공유한 ESPN 야구 담당기자 제프 파산의 트위터. 출처= 제프 파산 트위터

‘빠던’에 열광하는 미국인들 

5일 KBO리그 개막 직전까지 야구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이 한국 프로야구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는 미국과 우리나라 미디어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약 12시간에서 13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오후에 경기가 열리면 미국에서는 새벽에 ESPN 중계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잠을 줄여가며 새벽에 한국 야구를 볼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국의 시청자들은 KBO리그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국내 스포츠 채널 SPOTV가 공개한 지표에 따르면 NC와 삼성의 개막전 경기 ESPN 라이브방송 동시접속자 수는 총 27만6623명(오전 1시 생중계 17만3468명, 오후 3시 재방송 10만3155명)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포털을 통해 생중계되는 KBO 한 경기 평균 동시접속자 수가 6만명~8만명대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관심이다.

▲ 출처= SPOTV

미국의 시청자들이 특히 열광한 것은 KBO에서는 ‘빠던(배트 던지기)’로 불리는 타자들의 배트 플립(Bat Flip)이었다. 배트 플립은 타자가 장타나 홈런을 날렸을 때의 기쁨을 표출하는 일종의 세리머니다. MLB에서 배트 플립은 장타나 홈런을 허용한 투수에 대한 지나친 모욕으로 여겨 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KBO에서 배트 플립은 타자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재미있는 볼거리다. 멋진 배트 플립을 자주 보여주는 타자들은 인기도 많다. 호쾌한 스윙에서 이어지는 장타 그리고 이를 시원하게 마무리 짓는 배트 플립에 미국의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KBO 개막전 직후 미국 트위터에서는 KBO의 특정 팬임을 자처하는 트윗들이 넘쳐났다.이처럼 뜨거운 반응에 ESPN의 야구전문 기자 제프 파산(Jeff Passan)은 자신의 트위터에 KBO에서 나온 수많은 배트 플립 영상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호응은 해외에 선보일 수 있는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의 저변이 넓어질 수 있는 기회로 해석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K-POP 그룹의 라이브 투어나 콘서트들이 모두 취소됐다. 이에 콘텐츠 업계에서는 K-POP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KBO에 대한 해외의 좋은 반응은 영상이나 K-POP 등으로 다소 국한된 우리의 문화 콘텐츠가 다른 부분으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