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와 동맹을 맺던 유럽도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이상기류를 연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가운데 화웨이는 미국의 압박에 대비해 플랜B를 적극 가동하고 있다.

화웨이 거래제한 연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 기업의 통신장비를 미국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1년 연장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미 상무부가 화웨이 및 68개의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후 해당 조치를 연장한 셈이다.

화웨이와 거래가 막힌 미국 기업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심지어 제3국 기업이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막을 기세다. 사실상 중국으로 흘러가는 반도체 공급줄을 완전히 막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

▲ 출처=갈무리

코로나19, 미국과 중국 대결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압박은 코로나19 정국을 통해 더 심해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은 코로나19 사태 후 꾸준히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로 명명하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 대사관 주소를 현재의 '3505 인터내셔널 플레이스'에서 '리원량 플라자'로 바꾸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3월 대만수권법을 통과시키는 등 중국과의 한판승부를 피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이 이구동성으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CNN은 지난 5일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과 함께 코로나19에 있어 중국 책임론을 공동으로 추궁하는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12일 폭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유진 스캘리아 노동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연방공무원 저축계정(TSP)의 중국 주식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공적자금의 중국 유입을 막겠다는, 일종의 금융제재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휴전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공식적인 메시지가 나와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코로나19 정국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한판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며, 일각에서는 재선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선택이라는 말도 나온다.

중국도 반격하는 분위기다. 3월 대만수권법 통과 당시 외교채널을 통해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유럽에서의 일대일로 정책을 강화하는 등 맞불전략을 택하는 분위기다. 현실성은 낮지만 미국 국채를 매각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협력도 강조하고 있다. 9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8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기념일을 맞아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했고,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어떤 세력이 전염병을 이유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을 반대하며 확고하게 중국 편에 함께 서겠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화웨이의 선택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격화되는 가운데 화웨이가 받는 타격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실적에 제동이 걸렸다. 화웨이가 올해 1분기 3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순이익률도 7.3%에 머물러 전년 동기 대비 0.7%p 떨어졌다.

화웨이가 생존을 위한 다각적인 전략을 타진하기 시작한 이유다. 특히 미국산 반도체 수급에 차질이 벌어진 가운데 이를 만회하려는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하이실리콘을 적극 키우는 이유다. 화웨이는 현재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모바일 AP를 설계하고 대만 TSMC를 통해 제작받고 있으며, 이 연결고리를 강하게 구축해 외부의 수급 불균형에 대비하려고 한다. 전격적인 투자와 함께 대규모 물량을 밀어주고 있다.

하이실리콘이 최근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반도체 매출 톱10에 오른 배경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위 10개 기업의 총 매출액이 724억8700만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하이실리콘은 인텔,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브로드컴, 퀄컴, TI, 엔비디아에 이어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의 키옥시아와 원조 아이폰 A시리즈 명가인 독일의 인피니온이 톱10에서 밀린 가운데 하이실리콘이 저력을 발휘한 셈이다. 하이실리콘의 1분기 매출액은 2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4%나 급증했다.

TSMC와의 아슬아슬한 협력 대안도 마련한다. 최근 미국 정부가 대만 TSMC를 대상으로 설비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라는 압박에 나선 가운데, 미국 기업의 물량을 소화하고 있는 TSMC와 화웨이의 협력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회사는 오랫동안 협력을 이어왔으나 미국 기업과 협력하는 TSMC가 언제까지 미국 정부의 압박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화웨이가 파운드리에 있어 자국 기업인 SMIC에 물량을 일부 넘기는 이유다. 아직 14나노 기술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웨이의 프리미엄 제품 양산에는 당장 동원될 수 없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는 가운데 자국 기업인 SMIC와의 협력고리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 외 수급 다각화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도 타진한다. 실제로 화웨이 대변인은 실적 발표 당시 미국의 수출 통제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스프레드트럼로부터 칩을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도 화웨이와 거래가 끊기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는 평가다. 실제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간한 '중국과의 무역 제한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리더십을 어떻게 종식시키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한 이후 미국의 25개 상위 반도체 회사는 매분기 각각 4%에서 9% 사이의 평균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BCG는 미국이 수출 제한 기업 명단을 유지해 중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거래를 제한한다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3년에서 5년내 8% 포인트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16%의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관련 판매를 전면 금지하면 같은 기간 미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18%p) 및 매출(37%p) 낙폭은 더 증폭된다는 주장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시장 지원 및 생태계 조성도 화웨이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지난 4월 128단 QCL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성공한 양쯔메모리(YMTC)가 최근 샘플 테스트까지 통과한 가운데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연내 17나노 D램을 양산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2025년까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제시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며, 화웨이에도 큰 틀에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 출처=BCG

혼란속으로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으나 화웨이는 플랜B를 가동하며 유연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과 무관하게 코로나19 사태로 스텝이 꼬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에도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5G 네트워크 영역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속속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이 대두되며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이 속속 동참하는 한편, 예정됐던 자국의 5G 통신망 구축에서 화웨이를 일부 배제하려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우군을 확보해 미국의 압박을 넘어서야 하기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