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이 넘는 지원을 받는 대한항공이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결정하면서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추가 자금 마련, 경영권 분쟁 등 불씨가 남아있어 정상화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14일 한진칼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출자목적물은 보통주 2377만 9196주, 출자금액은 3000억원이다. 출자상대방(대한항공)에 대한 총출자액은 1조3452억원이며, 출자 목적은 유상증자 참여다. 출자일자는 오는 7월 20일이다.

한진칼은 보유 자산 매각과 담보부 차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외에 한진과 진에어, 정석기업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어, 이 회사들의 지분을 담보로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인 차입 방안은 추후 이사회를 통해 확정한다. 

한진칼의 결정은 전날 대한항공이 이사회를 열고 창사이래 첫 유상증자를 결정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전날 대한항공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새로 발행되는 주식수는 7936만 5079주이며, 예상 주당 발행가격은 1만 2600원이다. 대한항공은 물량의 20%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80%를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한다. 

일단 숨통은 트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대한항공의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는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첫번째 불씨, 1조5000억원 이상 자금 더 필요한데… 

우선 자금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산은에 따르면 올해 대한항공이 필요한 자금은 3조7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산은과 수은이 지원하는 1조2000억원과 유상증자로 마련하는 1억원 외에도 1조5000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의 매각을 추진하고, 직원 임금 삭감 등에 나서고 있지만 필요한 자금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송현동 부지의 가치는 약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추가 자구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기내식, 항공정비(MRO), 스카이패스 등 사업부를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번 자구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전날 대한항공 이사회가 끝난 직후 우기홍 사장도 기자들과 만나 “(사업부 매각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기내식과 항공정비(MRO) 등 사업부를 매각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관측된다. 기내식의 경우 매출 내 비중은 미미하나 영업이익률이 약 10%에 달하는 알짜배기 사업이다. 여객운송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항공 수요만 살아나면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매출이 나지 않는다고 팔아버리기엔 아깝다는 말이다. 

항공우주사업이나 MRO 역시 미래를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 없는 카드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세계 MRO 시장 규모는 2018년 844억달러에서 2030년 1368억달러로 1.6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노른자사업이다. 한진그룹 또한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전문 사업 영역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6월부터 주요 국제선이 재개될 예정이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항공수요가 정상화되는 시점을 빨라도 올해 4분기가 될 것으로 관측돼 매출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유동성 마련이 가장 용이한 부동산의 추가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알짜 계열사인 한국공항의 정석비행장 인근 부지 등도 매각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두번째 불씨, 경영권 분쟁 가능성 여전

경영권 분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양측의 지분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진칼 자체의 유상증자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결정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3자 주주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의 경영권 분쟁 주주 배정 물량에 대한 전량 미청약 가능성 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조 회장 측은 우호지분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을 비롯해 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 특수관계인, 델타항공, 대한항공 사우회 등을 합해 총 41.5%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다. 42.74%를 보유한 3자 연합에 1.24%p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지분율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여전히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전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판국에 경영권 분쟁이 대한항공의 발목을 계속해서 붙잡는 모양새다.

현재 한진칼은 보통주 기준 대한항공의 지분 29.96%를 보유 중이다. 만약 한진칼이 주주배정 물량만 소화하려면 2400여억원의 자금만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유상증자 후 한진칼의 보유 지분율은 27.05%로 하락한다. 

결국 대한항공 유상증자 후에도 종전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최저 기준치보다 600억원 더 많은 약 3000억원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연결기준 한진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412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한진칼은 나머지 1589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한진칼은 유상증자를 추진하지 않고 보유자산 매각 및 담보부 차입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한진칼은 ▲대한항공(보통주 기준 29.96%) ▲㈜한진(23.62%) ▲진에어(60%) ▲정석기업(48.27%) ▲한진관광(100%) ▲칼호텔네트워크(100%) ▲제동레저(100%) 등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다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 유상증자 카드를 꺼낼 경우의 수가 남아있다. 한진칼은 14일 공시를 통해 향후 6월 이내 제3자 배정증자 등 계획은 없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보유 자산 매각이나 차입을 통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향후 유상증자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