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젠 서정선 회장. 사진=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20년 전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명과학, 생물학, 미생물학 등 다양한 바이오 관련 학과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당시 대학교수들도 바이오벤처 창업에 적극 뛰어들면서 바이오 열풍에 불을 지폈다. 머지않아 바이오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산업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감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바이오는 ‘만년 유망주’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채 성장을 위한 담금질에 한창이다. 다만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이 쏟아진다.

국내 바이오벤처 1세대로 통하는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도 K바이오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주력 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과거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파이프라인, 투자 현황, 설비, 성과 등에서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제는 하나의 기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미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마크로젠은 2000년 2월 국내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한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최근 우리나라 증권 시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바이오 업종의 태동기를 이끈 1세대 벤처다. 현재 한국바이오협회장을 맡고 있는 서 회장이 1997년 회사를 창업했다. 서 회장은 20년 넘게 마크로젠을 이끌면서 K바이오의 발전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6일 서 회장을 만나 지난 20년간 K바이오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20년 전 국내 바이오 산업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바이오 산업이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건 아닙니다. 사람들도 약을 만들면 제약산업으로 인식했지 바이오 산업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나오면서 바이오란 말을 처음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초기 바이오 산업은 긴가민가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다들 처음엔 바이오에 대한 핑크빛 미래를 꿈꿨지만 좀 지나고 보니까 돈 버는 회사가 없었던 것이죠. 사기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반대 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바이오벤처 열풍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지만 바이오 산업은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더 확실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는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8000억원 규모 기술수출을 하면서 새 도약기를 맞았고, 2016년에는 셀트리온이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았습니다. 흐리멍덩하게 보이던 산업이 조금은 더 잘 보이게 된 것입니다.

-계속 탄탄대로를 걸으면 좋겠지만 인보사 쇼크, 신라젠 임상 실패 등 바이오 업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각종 악재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같은 병폐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K바이오가 언제나 장밋빛이었던 건 아닙니다. 기술계약 해지, 상장폐지, 임상 중단과 같은 악재가 잇따라 출구 없는 암흑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인보사 쇼크, 신라젠 임상 실패 등의 이슈로 시장의 불안정성이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내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정책에 발맞춰 성과를 내기에 급급하다 보니 벌어진 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실검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고조사와 검증 자체에 대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단순히 인력을 충원하고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내부 검증체계부터 갖추고, 충분한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갖춰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악재가 계속됐지만 K바이오에는 저력이 있습니다. 작년 바이오 분야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사상 처음 1조원을 돌파했으며, 신규 파이프라인 수출 낭보도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를 계기로 K바이오는 우리나라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이오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제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만 보더라도 지난 20년간 K-바이오가 걸어온 길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서정선 회장이 마크로젠 홈페이지를 열고 회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우리나라가 보여준 극복 과정은 전 세계 모범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이오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탄탄한 방역대책으로 전염병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세계 1위인 미국도 이번 코로나19에 약점을 잡혔는데 한국은 순발력 있게 대처를 잘했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강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 역할을 잘 수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바이오 산업은 패스트 팔로어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의료 시스템에 혁신이 필요합니다. 과학적 의학에서 데이터 중심의 맞춤 의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즉 정밀 의학, 정보 의학을 말합니다. 이는 4차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하는데 모든 걸 정보로 만들어서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이를 머신러닝, 딥러닝으로 분석합니다. 이를테면 AI가 환자의 상태를 분석해 몇 살쯤에 어떤 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진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환자는 이 얘기를 들고 주의할 테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수명이 늘어나고 의료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산업이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의료는 아날로그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전환이 가장 느렸던 의료 분야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바이오 산업에는 어떤 이점이 있나요?

기존 의료 서비스가 원격 혹은 정보의학으로 바뀐다면 전 세계를 리드할 수 있습니다. 북한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원격의료를 가지고 5년만 도와준다면 중국 수출까지 가능합니다.

바이오도 우리나라의 수출 전략 산업에 들어갑니다. 아직 반도체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번 기회에 홍익인간 정신을 적극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른 나라를 도와준 적 있나요? 이제 도와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을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예전부터 이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원래 박쥐 등 동물에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있지만 종간 장벽 때문에 사람한테까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인간들이 환경을 파괴해서 야생동물을 밀어내다 보니까 접촉이 많아지게 된 것이죠. 이 중 노약자나 면역력이 취약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방어를 못 하고 변이가 생기면서 치사율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사스, 메르스 등 바이러스 대전이 2000년대 들어 세 번째 발생했습니다. 이제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바이러스 대전이 또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생활 패턴이 기존과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비대면 등 바이러스 위기 속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변이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신약 개발 외에 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요?

흔히 바이러스는 하수 시설 같은 곳에서 가장 먼저 확인됩니다. 개인이 걸리면 이틀 뒤 배설 등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약 10일 정도 됐을 때 증상이 나오는데 미리 알게 되면 8일가량의 시간을 벌게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정부에 전염병을 막기 위한 조기 경보 시스템 개발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이나 건물 등에 이 시스템을 설치하면 바이러스 검출을 사전에 확인해 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추적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히는 무증상자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세팅하고 있습니다.

-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바이오 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앞으로 현존하는 대기업의 40%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둔 현재 위태위태한 회사는 전부 사라질 수 있어요.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무서운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은 ‘웨스턴 브랜드가 사라진다’고 보도했습니다. 파워 시프트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웨스트에서 이스트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의학 분야에서도 혁명이 찾아옵니다. 의사에서 환자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의사가 환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정보를 의사만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도 정보를 갖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정보를 잘 알게 되면서 의사와 대등한 입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기존 주치의 개념에서 카운슬러로 지위가 하락하는 셈이죠. 그래도 여전히 의사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AI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서정선 회장은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이끌어 나갈 유망 스타트업 육성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 국내 바이오 업계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지금까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는 M&A를 통해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9년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1118억달러(약 128조원)를 들여 워너램버트제약을 인수하여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거듭났고, 이후에도 파마시아(2003년), 와이어스(2009년)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세계 최대 제약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작년에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M&A 규모가 4110억 달러(약 480조 원)로 역대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가 M&A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규모 M&A에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예전보다 M&A 횟수는 늘었지만, 자국 내 M&A가 대부분을 차지해 판도를 뒤흔들 만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위험부담이 높은 M&A보다 혁신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신규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이 바로 제약·바이오 산업입니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업들이 조금 더 M&A가 중심이 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이끌어 나갈 유망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한국형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신생 벤처기업의 저변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겠지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바이오 산업의 후발주자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빨리 경험하고 풀 수 있도록 규제 완화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또한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환경 변화가 매우 큰 가운데, 덩치 큰 회사들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벤처는 시도하고, 도전하는 데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망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두세 번의 실패가 자연스럽게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K바이오를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20년 넘게 마크로젠을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마크로젠의 역사는 한마디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룰 수 있다’는 신데렐라의 스토리처럼 ‘If you wish’-‘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는 명제가 마크로젠을 이끌어 온 것입니다. 우리의 Wish는 ‘홍익인간’ 즉,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마크로젠은 돈을 벌기 위해, 큰 기업이 되기 위해 이어온 것이 아니라 그 Wish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해 왔습니다. 마크로젠의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 Wish를 이뤄간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크로젠의 궁극적인 목표는 “누구나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이용하여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기존의 리서치 분야에 매진하며 쌓은 실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임상진단, 개인 유전체 분석,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등 신성장 사업의 기반을 확대해 가면서 정밀의학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밀의학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빅데이터 확보를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후 K바이오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데이터 3법 통과와 규제샌드박스 시행으로 바이오산업 도약의 새 기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데이터 3법 개정안에는 기업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기업 역시 정부의 시험 절차에 많은 시간이 투입되면서 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료산업의 무게중심이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요소인 의료 데이터의 확보·활용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이는 미래 의료시장에서 국가 경쟁력이 퇴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K바이오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점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기존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핵심기술인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가 제약·바이오 시장에 큰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첨생법(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시행이 오는 8월로 목전에 와 있는데, 이 첨생법을 통해 국내 줄기세포 재생의학 분야의 기술 경쟁력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늘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K-바이오의 위상이 한껏 높아져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또 바이오인(人)으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과거로부터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20년을 위해 최선을 다해봅시다.

▲서정선 회장은 K바이오가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프로필

1997-현재 ㈜마크로젠 회장 & 창업자

2017-현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석좌교수

2017-현재 공우생명정보재단 이사장

2009-현재 한국바이오협회 회장

1997-2017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

1983-201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0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