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제가 이달부터 휴직에 들어가서요. 점심미팅은 다음 달로 미뤄야 할 거 같아요. 당분간은 제가 아닌 OOO대리에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 저희 회사로 출근 안하고 있어요. 진짜 오랜만에 나왔는데 맞춰서 연락주셨네요.”

최근 항공사 홍보실에 연락하면 심심치 않게 듣는 소리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입은 항공업계가 연이어 임금 반납, 유·무급 휴가와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면서 홍보실도 그 영향을 피해가지 못한 탓이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그간 친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당사자들의 처지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곧 나아지지 않겠냐며 줄곧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면서 위로조차 사치로 느껴지진 않을까 조심스럽다. 

항공업계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 유동성 마련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지면서 버티기에 돌입한 것이다. 유급 휴직, 희망퇴직 등 인력 감축이 대표적이다. 항공업은 고정 지출 비용 중 유류비를 제외하면 인건비 비중이 20%내외로 제일 높다. 유류비를 크게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인력 감원은 가장 확실한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50년만에 지난 4월 7일 최대 6개월 간 전 직원 순환 휴직(유급)을 결정했다. 필수인력을 제외한 70%의 직원이 대상이다. 이어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을 제외한 타 항공사들은 유급휴직을 실시한다. 아시아나항공은 5월, 15일 이상 무급휴직을, 지난 2월부터 제대로 급여를 주지 못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희망퇴직에 이어 전체 직원의 22%인 약 350여명을 정리해고 한다. 

항공사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조업사들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코로나19로 국제선 노선 운항을 중단하면서 일이 없어진 조업사들은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권고사직, 정리해고까지 단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아시아나항공 협력업체 KO는 350여명의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대한항공 기내식 탑재 업체 케이택은 250명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그야말로 구조조정 광풍이다. 기업들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동고동락해온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달갑지만은 않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지속될 경우 직간접 연계 일자리 25만개 중 16만개, 국내 GDP 11조원이 증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고용 안정과 자본 확충·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이 전제될 경우 항공사에 추가 지원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6일 첫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를 마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당연히 고용 안정이 목표지만, 또 기업들의 부담이 너무 크면 안 되니까 균형있게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고용 안정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미국은 지난달 코로나19 피해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 25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지원받은 기업은 9월 30일까지 고용 총량의 90% 유지조건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 내 항공업 종사자가 75만 명에 이르는 만큼 이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는 항공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인데다, 코로나19란 불가피한 외생변수로 일어난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우리 정부는 현재 고용유지지원금만으로 항공 근로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됐고,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고도 유·무급휴직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휴업명령을 내리며 논란이 됐다.  

정부는 항공 근로자 고용 안정을 위해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일례로 사업주의 고용유지조치를 강제하는가 하면 영종도 등 일부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모두가 행복한 구조조정이 어렵다면 많은 사람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