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인 그라운드X와 피어테크가 운영하고 있는 거래소 지닥이 클레이 상장을 두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현재 외국 거래소 일부에만 클레이를 상장한 그라운드X는 국내 거래소인 피어테크의 지닥이 별다른 상의없이 클레이 원화 마켓 상장을 강행하고 있다 비판하며 ‘도둑상장’이라 주장하지만, 피어테크는 “거래소는 독립적인 심사기관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프로젝트 상장에 있어 프로젝트 자체의 허락을 구하거나 협의를 진행해야만 상장을 하는 구조는 아니다”고 맞서고 있다.

이 문제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거래소의 고질적인 논란이자,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 업계에 중앙집중형 권력이 개입하며 발생하는 모순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거래소의 관행에 대한 시사점도 발견된다.

▲ 출처=피어테크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지닥을 운영하는 피어테크는 지난 2월 에코시스템 파트너로 카카오 그라운드X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 연장선에서 피어테크가 11일 카카오 코인인 클레이를 원화마켓에 최초, 단독 상장한다고 밝히며 논란이 시작됐다.

그라운드X는 “사전에 논의된 사안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클레이튼(그라운드X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발행되는 가상자산(KCT)을 지닥에 상장하는 것을 두고 업무협약은 맺었으나 원화 마켓에 상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다. 기술적 파트너십을 통해 협력고리를 만들기는 했지만 지닥을 통해 클레이가 국내서 상장되는 것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당연히 지닥의 클레이 상장을 반대하며, 상황에 따라 파트너십 종료도 고려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피어테크는 그라운드X가 일종의 월권행위를 한다고 본다. 피어테크는 “그라운드X와의 협력은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의 파트너십이기 때문에 상장여부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어테크는 “클레이 상장은 클레이튼과 상장하기로 협의하거나 상장하지 않기로 협의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상장을 위한 논의도 없었지만, 상장하지 않기로 협의한 바도 없다는 주장이다.

피어테크는 “거래소는 독립적인 심사기관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프로젝트 상장에 있어 프로젝트 자체의 허락을 구하거나 협의를 진행해야만 상장을 하는 구조는 아니다”면서 “거래소는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들을 검증하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들을 상장하며 자체적인 상장심사위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닥은 불법적인 회사가 아니다”면서 “이번 상장은 여느 상장과 마찬가지로 거래소는 대중을 위해 건강한 프로젝트들을 상장시킬 의무가 존재하고 디앱이나 생태계조성을 위해 원화거래가 가능한 창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그라운드X와 피어테크가 협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원화 상장을 두고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았으며, 이 대목에서 그라운드X는 원화 사장을 두고 논의된 바가 없기 때문에 피어테크가 독단적으로 클레이를 상장할 수 없다는 주장인 반면 피어테크는 ‘원화 상장을 하기로 논의하거나, 상장하지 않기로 논의한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거래소의 권한에 따라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피어테크는 “모회사인 카카오가 대기업이라고해서 블록체인이 가지는 본질적인 오픈소스와 퍼블록 블록체인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 문제를 대기업의 갑질 프레임으로 끌어가는 분위기도 연출했다.

코인원 사례?

그라운드X와 피어테크 지닥의 사례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해 벌어진 코스모체인과 코인원의 사례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당시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코스모체인이 발행한 코스모코인이 코인원에 상장됐을 때, 프로젝트와 거래소의 협의가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논란이 커진 바 있다. 원화 상장을 원하지 않는 그라운드X와 지닥의 사례와 비슷하다.

다만 당시에는 거래소가 상장 수수료를 받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별다른 협의없이 상장을 추진했다는 코인원의 설명이 받아들여졌다. 이어 양측은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했고 코스모체인의 코스모코인은 이후로도 코인원에 상장되어 올해 초 거래량 부족에 따른 가이드 라인에 막혀 상장폐지될 때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코인원 사례와 지닥의 사례가 완전히 동일한 것도 아니다. 코인원 관계자는 “코스모체인과 코인원이 별다른 파트너십을 맺은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상장 전 협의에 대한 충돌을 겪었으나 이후 원만하게 해결했다”고 밝혔다.

협의해야 하는가의 문제

그라운드X와 지닥의 현안이 코스모체인과 코인원의 논란과 비슷한 구석은 있으나, 논란이 된 당시의 회사들이 보여준 협력의 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코스모체인과 코인원 논란의 배경에서 그라운드X와 지닥 현안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는 포착된다. 

바로 ‘협의의 유무’다. 프로젝트와 거래소가 상장을 앞 두고 과연 협의를 해야하는 것일까.

업계에 따르면 프로젝트와 거래소가 상장을 앞두고 논의를 하는 것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으나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상장은 관행적으로 논의가 이뤄지며 이 과정에서 상장 수수료를 둘러싼 ‘짬짜미’ 논란이 나오지만, 역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상장과 관련한 이슈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특히 그라운드X의 클레이 국내 상장 여부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거래소인 지닥이 그라운드X와 관련된 협의를 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그라운드X의 클레이는 해외 거래소 일부에 상장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누군가 해당 해외 거래소를 통해 클레이를 매집한 상태에서 지닥이 클레이를 원화 마켓에서 상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업계 관계자는 “누군가 클레이를 해외 거래소에서 매집한 후 그라운드X와 상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이 운영하는 국내 거래소에서 원화 상장을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라며 “카카오 코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그라운드X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개미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클레이 시세는 폭등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라운드X 입장에서 지닥의 행보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어테크의 주장대로 거래소가 프로젝트와 일일이 협의해 상장하는 것도 어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어테크의 주장대로 거래소는 독립적인 심사기관이며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프로젝트 상장에 있어 프로젝트 자체의 허락을 구하거나 협의를 진행해야만 상장을 하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힘있는 프로젝트가 거래소에 상장과 관련된 엄격한 규제를 한다면,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 사진=최진홍 기자

탈중앙화와 중앙집중형

그라운드X와 피어테크의 논란을 두고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시장의 모순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탈중앙화의 블록체인 플랫폼이 오히려 중앙집중형 권력의 각축전이 되며 강렬한 모순의 불꽃이 튀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업계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블록체인의 특성이 탈중앙화에 있다고 보지 않는 경향을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그 핵심에 권력의 분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중앙화의 블록체인 시장에서 오히려 중앙집중형 권력들이 충돌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모든 이들의 권력’이어야 하는 블록체인이 몇몇 힘을 가진 중앙집중형 플랫폼(프로젝트와 거래소)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하며 이들의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프로젝트와 거래소)이 서로 협의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그 협의가 시장의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제는 탈중앙화의 블록체인 업계에서 아예 ‘우리는 탈중앙화 플랫폼이 아니다’는 선언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실제로 그라운드X 한재선 대표는 지난해 간담회에서 “탈중앙화라는 가치 외에도 블록체인은 신뢰성 보장 등 다양한 가치 전달할 수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윤준탁 에이블랩스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프로젝트와 거래소가 상장을 앞두고 협의하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탈중앙화에 기반했다는 블록체인 업계의 모순”이라면서 “시장의 각 플레이어들이 크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