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이전에는 배달 자동화의 이유가 대부분 ‘비용 절약’ 차원이었지만 이제는 비접촉 배달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능의 차원’으로 바뀌었다.     출처= Nuro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바퀴 네 개 달린 날렵한 로봇들이 미국 프로농구(NBA)팀 새크라멘토 킹스(Sacramento Kings)의 홈구장이었던 슬립 트레인 아레나(Sleep Train Arena) 외곽의 갈라진 포장도로를 바쁘게 오가고 있다. 이곳은 지금 캘리포니아주(州)가 코로나 야전 병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R2라고 불리는 이 로봇들은 스타트업 누로(Nuro)가 원래 휴스턴의 부유한 동네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하기 위해 만든 로봇이었지만, 코로나 대유행 이후 전 세계의 다른 로봇들처럼,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인간 대신 구호물품과 의약품을 배달하는 서비스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새크라멘토에서 누로의 로봇들이 보급창고와 야전병원 사이에 식품, 병원 세탁물, 개인보호장구 들을 날라주면서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한 지원 요원들은 환자와 의료진들과의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건강관리 공급망의 중요한 부분이 된 배달 로봇들이 식료품과 다른 생활 필수품들의 ‘비접촉’ 배달에 도움을 주면서, 그 동안 이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기업, 정부, 소비자들을 열성적인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s)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에게 횡재가 될 배달 로봇 수요의 급증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인지 모른다. 이들은 배달 로봇의 배치에 대한 국가 및 지방 정부의 승인도 아직 얻지 못했고, 더구나 대량 생산할 채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니까 말이다.

도시 기술 컨설턴트이자 자율주행차의 미래에 관한 책 ‘유령 도로’(Ghost Road)의 저자인 앤서니 타운센드는 "코로나 이전에는 배달 자동화의 이유가 대부분 ‘비용 절약’ 차원이었지만 이제는 비접촉 배달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능의 차원’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자율주행드론 회사 플라이트렉스(Flytrex)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던 정부의 규제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크게 완화되었다. 이 회사는 그랜드포크(Grand Forks)의 월마트 슈퍼센터에서 인근의 고객 앞마당까지 드론으로 물건을 배달해주는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월마트와 제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주문을 받고 플라이트렉스가 구매 대행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향후 몇 달 안에 이 서비스를 비행 반경 3마일로 확대해 수백 가구에 최대 6.5 파운드(3kg)의 물건을 배달할 계획이다.

▲ 드론 개발회사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던 정부의 규제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크게 완화되었다.     출처= Flipboard

스타쉽 테크놀로지(Starship Technologies)도 2018년부터 영국 밀턴 케인즈(Milton Keynes)에서 바퀴 여섯 달린 배달 로봇으로 식료품을 배달해 왔다. 이 회사의 렉스 베이어 CEO는 “코로나 유행 이후 밀턴 케인즈에서 이용 고객이 10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베이어 CEO는 현재 50대의 배달 로봇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수백 건의 배달 주문을 수천 건까지 늘릴 수 있다. 스타쉽은 지금까지 10만 건 이상의 배달을 처리했으며 배달 로봇의 이동 거리가 50만 마일(80만 km)을 넘었다고 말했다.

현재 새크라멘토에서 운영되고 있는 R2 로봇의 제조사인 누로에게 코로나바이러스는 수요 증가와 우선순위 전환을 의미했다. 이 회사는 휴스턴에서 자율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자택 격리령이 내려지면서 주문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누로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데이브 퍼거슨은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R2를 어떻게 재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중국의 드론 배달 회사 앤트워크 테크놀로지(Antwork Technology)도 지난 2년 동안 시범 프로그램으로 저장성의 스타벅스와 KFC로부터 음식을 배달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가 이 지역을 강타했을 때, 회사는 병원 배달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후 지역 테스트와 검역 인프라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앤트워크의 드론은 항저우의 한 병원에서 테스트 샘플을 근처의 더 큰 병원으로 날라주며 신속한 테스트를 도왔다. 이 지역에서 코로나의 위협이 줄어들자 앤트워크는 7개의 새로운 경로를 개발해 의료 배달을 계속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앤트워크의 드론은 450여 차례의 배달을 완료했고, 사고 없이 2100 마일(3400 km)을 이동했다.

배달 로봇이나 드론의 대량 출시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았던 이 회사들은 이제 로봇 제작부터 안전 인증까지 모든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마존과 인스타카트 같은 회사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를 수 있을 만큼 배달 로봇이 충분히 준비되기 전까지는, 로봇 배달은 코로나 확산 위기에 대응하는 제한된 역할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달 수요가 확대되면서 배달 로봇이 점차 인간의 노동력을 보완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회사들은 단거리 신속 배송을 위한 로봇의 적합성에 초점을 맞출 뿐 아니라 건강 관리 같은 안전 측면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