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승계 및 노동조합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 가능성을 일축하는 한편 무노조 경영을 끝내겠다 선언했다. 나아가 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책임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메시지도 나왔다.

이 부회장의 선언을 두고 재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승계 과정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따르는 형식으로 처벌을 피하기 위한 카드를 꺼냈다는 말도 나오며, 무노조 경영 철폐에 대해서는 "삼성의 경쟁력이 사라졌다"와 "지금이라도 무노조 경영 고집을 꺾은 것이 다행"이라는 상반된 반응도 나온다.

특히 재계의 관심은 4세 경영을 포기한다는 발언에 집중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경영세습을 포기한 사례기 때문이다. SK와 LG, 현대, 롯데 등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세습경영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 1위 삼성이 경영세습을 포기한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반응도 엇갈린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오너경영의 강점도 분명히 있는 상황에서 다른 그룹의 처지가 곤란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오너경영, 그리고 전문경영인 체제
오너경영, 소유경영은 기업의 실질적 소유주가 해당 기업의 대표 및 업무 최고 집행자가 되어 회사를 꾸리는 체제를 말한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해당되며, 당연히 세습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오너경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SK의 최태원 회장,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모두 오너경영에 나서는 한편 경영을 세습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LG는 벌써 4세 경영이다.

오너경영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오너경영의 강점은 강력한 주인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너 스스로가 조직의 비전을 본인의 삶에 투영하며,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경영활동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가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14년간 이어오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끝내고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타 아키오 회장을 전면에 세워 위기를 극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너 입장에서는 회사의 운명이 곧 본인과 가족의 운명이기에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전력투구를 다하게 된다. 최태원 SK회장이 직원들과의 토크쇼에서 "워라밸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 이유다.

오너경영은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강점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문희 KLS경영연구소 부원장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오너 경영인은 당장의 출혈을 감수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뚝심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너경영 최고의 미덕"이라 말했다.

월마트의 사례가 회자된다. 월마트는 샘 월튼(Sam Walton) 창업주가 사망한 후 장남인 롭슨 월튼이 지배대주주로 이사회장을 승계했고, 월마트를 최고의 유통강자로 키우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월마트와 비슷한 시기 태동한 강력한 경쟁자인 K마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K마트는 1967년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입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사업의 동력을 상실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두 기업의 명운을 가른 요소는 다양하게 거론되지만 업계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경영체제를 주목한다. 위기와 변화의 순간 월마트는 오너를 중심으로 과감한 상황판단이 이뤄졌으나, K마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오너경영의 경우 독단적인 경영횡포가 벌어질 수 있고 승계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또 오너의 독단적 경영이 황제경영으로 이어질 경우 회사의 존립이 위험해지는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전문경영인 체제는 어떨까.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은 역시 전문경영자가 갖는 전문적 경영 역량(management skill)에 있다. 오너가 회사를 세웠을 수 있으나,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에는 전문적인 경험이 필수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는 유연한 대응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나아가 오너경영과 달리 누구나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조직에 부여해 구성원들의 동기부여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핏줄로 선택된 것이 아닌 실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연다면 구성원들은 고무될 수 밖에 없으며, 조직의 생산성은 극대화된다. 또 경영자 평가에 있어 핏줄이 아닌역량(metrit)에 의한 평가를 한다는 인식이 조직에 새겨지면 외부 인재를 공격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에도 단점은 있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제격이지만, 이에 천착해 근시안적 성과내기에 급급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너경영이 이뤄지던 회사에 전문경영인이 영입된다면, 해당 전문경영인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무리한 조직 쥐어짜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조직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고 기업 특유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투자할 유인도 상대적으로 낮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이득을 고려하는 것보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가능성도 있다.

▲ 출처=삼성

유기적 연계가 필요하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가 각각 뚜렷한 장단점을 보이는 가운데, 결국 상황에 맞는 맞춤형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중시하는 미국 증권자본주의 관점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는 단기적 판단에 능하기 때문에, 회사의 성장기에는 이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다. 그러나 산업의 특성으로 본다면 진화의 속도가 빠르고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은 회사라면 오너경영인 체제가 제격이라는 분석이다. 산업 자체가 신속한 판단을 요구하고 장기적 관점의 플랜으로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면 이를 돌파할 강력한 경영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체제의 절묘한 혼합을 꾀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너일가가 큰 그림을 그리며 콘트롤 타워로 존재한 상태에서 각 주력 계열사들의 전문경영인들이 포진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이미 선택한 그림이지만, 한 발 더 앞으로 나간 사례로는 IT 기업인 네이버를 꼽을 수 있다. 지분 등으로 보면 오너로 보기는 어렵지만 총수로 규정된 이해진 창업주는,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거쳐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GIO로 활동하며 네이버의 큰 그림을 그리는 한편 미래 비전을 개척하고 국내사업은 한성숙 대표와 변대규 이사회 의장에 일임하고 있다.

여기서 이사회 중심의 독립적인 경영을 확립시키는 전략도 주효하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처음으로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삼성전자의 사례에 시선이 집중된다. 주인공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2016년 3월부터 사외이사로 활동한 박 사외이사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인사가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오너경영의 부작용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역시 삼성전자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켜 준법경영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삼성준법위는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이끌며 그 존재감을 강하게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습니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면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입니다.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화학적이고 유기적인 융합이 필요하다. 강력한 경영 동력 창출과 큰 그림을 그리는 뚝심을 위해 오너경영의 밑바탕이 깔린 상태에서 전문경영인의 실력을 덧대며, 오너경영의 폐혜를 걷어내기 위해 독립된 이사회 중심의 경영과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가동되는 장면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융합의 롤모델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에 주목하기도 한다. 일종의 오너경영을 하면서도 전문경영인 체제와 유기적인 결합을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존경받는 경제 명문가가 된 발렌베리 가문 모델을 국내 재계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활동하던 당시는 물론, 이재용 부회장도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에서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 회장과 만나는 등 발렌베리 가문에 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다만 발렌베리 가문은 구성원에 대한 엄격한 교육 및 선발, 나아가 가문이 기업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 등 국내 대기업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실제로 발렌베리 우산 아래에 포진한 기업의 주식은 인베스터가 가지고 있고 이를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과 마리앤느 앤 마르쿠스 발렌베리 재단, 마르쿠스 앤 아말리아 발렌베리 재단 등 가문이 설립한 3개의 재단이 소유한다. 물론 경영의 콘트롤 타워에 3개 재단을 지휘하는 가문의 대표자들이 모두 속해있어 큰 의미가 없다는 말도 나오지만, 발렌베리와 국내 대기업이 처한 상황은 역사와 전통, 경영 방식 모두 판이하다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그런 이유로 오너경영 중심의 역사를 가진 국내 재계에서는 일단 오너경영을 중심에 두고,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부작용을 걷어내며 전문경영인 체제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내 5대 그룹 관계자는 "한국만의 특수한 경영 환경이 존재하는데다 학계에서조차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비교우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황에 맞게 두 체제의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