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는 회사를 의미한다. 지배받는 회사가 금융기관이면 ‘금융지주회사’다. 국내에 금융지주법이 도입된 지 올해로 13년째다. 금융지주법의 내용과 도입 배경 그리고 현재까지의 평가를 살펴봤다.

최근 하나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농협의 구조개편 등으로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동안 국민, 우리, 신한, 하나의 4대 금융지주 구도에 농협을 포함해 ‘5대 금융지주’가 새로 탄생했다. 원래 금융지주회사는 여러 가지 장점, 즉 금융복합상품 취급, 통합 재무·마케팅, 중복기능 해소 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로서 구미 선진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으로 금융지주를 도입했다.

이 법은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을 촉진하면서 금융회사의 대형화·겸업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전이(轉移), 과도한 지배력 확장 등의 부작용을 방지해 금융지주회사와 그 자회사 등의 건전한 경영을 도모하고 금융소비자, 그 밖의 이해관계인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로 12년째를 맞는 금융지주사들은 우선 규모면에서 괄목할 성장세를 보여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 겸업화에 대한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겸업화를 위한 추가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제 우리나라 금융지주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 걸맞은 발전의 틀을 마련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금융지주들이 모두 바람직한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딘 행보로 또는 옆걸음질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크고 작은 잡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13년이라는 세월을 잣대로 보면 분명 금융권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들의 향후 과제와 미래 비전을 폭넓게 조망해 본다.

지주회사는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로 나뉜다. 순수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그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업 활동은 하지 않는다. 반면 사업지주회사는 직접 사업 활동을 영위함과 동시에 다른 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주식을 소유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지배만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지주회사를 택하고 있으며 유럽의 경우에는 지배와 함께 금융 사업을 겸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에 속한다.

특정사업 잔퇴 용이 ‘장점’ 다단계 경영 ‘약점’
1990년. 전 세계 금융업계에 대형화와 겸업화의 바람이 불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추세를 감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당장 국내 은행 간 합병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은행법의 제한 및 감독 기간의 부재 등 여러 가지 한계점에 부딪쳐 탁상공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우여곡절을 지낸 금융지주법은 2000년 들어 비로소 도입됐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주회사의 장점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

우선 특정 사업부문에 대한 진출과 퇴출이 용이하다. 실제로 다른 회사의 주식 취득을 통한 자회사 편입만으로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으며, 실적이 좋지 못한 자회사는 지분매각을 통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기관 대형화에 유용한 수단’으로 평가돼 왔다. 이 밖에도 자회사의 경영관리에 전념하고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함으로써 그룹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물론 단점도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조직구조가 다단계화 돼 있다. 때문에 잘못 운영될 경우 의사결정단계 및 경영지원기능의 중복으로 인해 경영비효율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지주회사는 또, 소유의 다단계화를 통한 기업확장으로 비교적 소액자본으로 다수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력 집중’의 우려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주회사 설립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 발행주식의 일부만 소유함에 따라 자회사의 소액주주와 이해상충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이러한 이해상충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의 발행주식을 전부 소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융지주법의 가장 큰 취지는 ‘금융의 겸업화와 대형화’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어느 정도 충족됐을까.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제도 도입이후 금융지주회사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만큼 놀라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으며 겸업화와 대형화의 긍정적인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금융지주회사는 인수, 합병을 통해 동종은행 및 여타 금융회사를 지주회사 산하의 금융회사로 편입하여 규모를 크게 확대해 왔다.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이래 주요 금융지주는 현재까지 4군데로 꼽힌다. 2001년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그리고 2005년 하나금융지주와 2008년 KB금융지주가 그것이다.

우리금융지주는 국내최초로 세워진 금융지주회사다. 사진은 지난 1월 4일 우리은행 회현동 본점에서 열린 우리은행 창립 113주년 기념식.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오른쪽 네번째) 비롯한 임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연합


이 관계자는 “이러한 금융지주회사의 도약으로 인해 현재 미전환된 은행들이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며 외국계 은행의 국내자회사인 은행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을 검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조정실장 또한 비슷한 견해를 펼친다. 정 실장은 “금융지주 회사 도입 직후에는 그 성과가 미미했지만 최근들어 지방은행을 비롯해 지주사로의 전환이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지주전환을 할 경우, 규모의 경제를 꾀하는 것은 물론 그룹 전체에 자원의 효율적 배분, 자회사간 시너지 창출, 고객정보 공유 및 위기 발생 시 자회사의 진입 퇴출이 자유롭다는 점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건전성 악영향 막을 시장규율 개선 시급
반면, 회의적인 입장도 없지 않다. 주진형 J&컴퍼니 대표는 “‘지주회사’의 의미가 금융사의 몸통불리기 수단으로만 이용됐다”고 지적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더 나아진 서비스도 없으며 금융권의 전반적인 경쟁력 또한 답보상태”라고 꼬집었다. 주 대표는 “금융지주사 도입 시 내세운 정책적 기대효과는 ‘대형화와 겸업화’였지만 금융지주사와 금융기관 대형화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연관성이 약하다”면서 “자본 규제 관련 투명성 확대를 통한 시장규율 개선이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대형 은행지주사가 증가하는 것은 금융권 전체 자본 관련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겸업화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 대표는 “금융지주사 관련 겸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후속 조치가 최근까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겸업에 관련한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하다”면서 “대형화에 대한 명시적 정책 틀을 수립하고 겸업화를 위한 추가조치와 자본적정성 강화는 물론 이와 관련한 공시체계 제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재규 실장은 이에 “금융지주 회사로 전환되면서 기존 금융그룹 내 리스크 발생 시 그 파장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상황이 개선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라며 “다만 아직까지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또, “메가뱅크라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과거에 비해 대형화-겸업화 된 것은 자명하며, 모범적인 금융기법 등도 해외에서 수입하고 적용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