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혹평도 받았으나, 최근에는 당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메모리와 시스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계획적인 플랜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장면과 미국의 압박이라는 위기를 자국 내 기술력 결집으로 끌어내는 장면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도 여전한 가운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하이실리콘의 화려한 데뷔
8일 업계 및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위 10개 기업의 총 매출액은 724억87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6% 늘어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졌으나 비대면 트렌드의 확산으로 서버용 D램이 각광받는 등 일부 호재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메모리 반도체 기준으로 보면 가격 상승세도 선명하다. 시장조사업체 디랩익스체인지에 따르면, 4월 D램 PC향 범용제품(DDR4 8Gb 1Gx8 2133㎒)의 고정거래가격은 3.29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격 상승폭이 2017년 1월 이후 최대치다. 

서버용 D램 가격도 오름세다. 지난해 12월 106달러 선에 머물렀으나 지속적으로 올라 120달러 선에 안착하는 분위기다. 하반기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대거 등장하며 모바일 D램 시장 상황도 좋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보합세지만 바닥을 이미 다졌다는 평가다. 나아가 시스템 반도체 부문도 좋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물론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악재가 많다는 평가지만 큰 틀에서 악재는 제한적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다만 IC인사이츠의 이번 조사는 상위 1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최근 상위 기업들의 매출 쏠림 현상이 커지고 있어 전체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ID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올해 -4.2%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면 감소폭은 -7.2%까지 떨어질 것이라 봤다. 결국 전체 반도체 시장이 상위 기업 쏠림 현상을 보이며 큰 틀에서는 하강국면, 상위 기업 기준으로는 다소 고무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IC인사이츠의 조사에서 처음으로 톱10에 올라 눈길을 끈다. 인텔,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브로드컴, 퀄컴, TI, 엔비디아에 이어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의 키옥시아와 원조 아이폰 A시리즈 명가인 독일의 인피니온이 톱10에서 밀린 가운데 하이실리콘이 화려한 비상을 보여준 셈이다. 하이실리콘의 1분기 매출액은 2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4%나 급증했다.

하이실리콘의 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화웨이 압박과 관련이 있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1차 휴전을 맞이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화웨이를 압박하고 있으며, 화웨이는 사실상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구글 안드로이드를 탑재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요 부품도 수급받지 못하고 있다.

1분기 주춤한 실적을 기록한 이유다. 실제로 화웨이는 올해 1분기 3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하는 것에 그쳤다. 순이익률도 7.3%에 머물러 전년 동기 대비 0.7%p 떨어졌다.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5G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나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며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 연장선에서 스마트폰 반도체 수급에만 집중하면, 화웨이는 미국과의 거래 중단을 만회하기 위해 하이실리콘을 통해 모바일 AP를 설계하고 대만 TSMC를 통해 제작받고 있다. 당연히 하이실리콘의 실적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즉 하이실리콘의 깜짝 톱10 진입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거래로 반도체 물량을 받던 화웨이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자회사와의 협력강화로 선회했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기적으로 중국 전자 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지만, 오히려 힘의 응축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강력한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타의 반, 자의 반 '자강론'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거세지는 중국 반도체 굴기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WSJ는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군자금”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2014년 1차 펀드를 조성했을 당시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크게 올린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4% 내외에서 움직이는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올리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표현하며 자급률 상승에 사활을 걸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5% 내외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다시 급변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조금씩 성과를 내고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연내 17나노 D램을 양산할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17나노급의 2세대 10나노급 D램을 지난 2017년 11월 양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회사의 기술 간극은 불과 3년에 불과한 셈이다. 

낸드플래시 분야도 심상치않다. 중국이 D램보다 낸드플래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지난 4월 양쯔메모리(YMTC)는 128단 QCL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성공한 데 이어, 샘플 테스트까지 통과했다. 128단 QCL 3D 낸드플래시 칩 X2-6070을 SSD 플랫폼에서 샘플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YMTC는 2021년부터 기업용 SSD, eMMC/UFS 솔루션 및 기타 제품에 적용한다는 각오다. YMTC는 소위 빅펀드라고 불리는 중국 반도체 산업투자 펀드의 주도로 설립된 회사며 128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올해 4분기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각오다.

YMTC의 계획대로 로드맵이 전개될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과의 격차는 또 한 번 크게 줄어든다. 128단 3D 낸드플래시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에 양산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기술격차는 좁혀질 수 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2025년까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제시한 상태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다시 꿈틀대고 있다.

▲ 출처=YMTC

아직은 긴 안목이 필요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꿈틀대는 가운데, 약점도 선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하이실리콘의 경우 미국의 압박에 따른 반작용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화웨이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미국과의 거래가 재개되는 것이며, 하이실리콘과의 협력은 일종의 플랜B에 가깝다. 실제로 화웨이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미국의 수출 통제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스프레드트럼로부터 칩을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원산지 부품소재가 25% 이상 들어간 제품의 수출을 막는 가운데 그 비율을 10%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압박 기조를 이어가자 미국과의 거래를 완전히 중단하고 삼성전자 등 새로운 대안을 찾겠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는 경고성 발언에 불과하며, 이면에는 '조속한 거래 정상화'를 바라는 의식이 깔렸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대외적인 상황이 달라질 경우 하이실리콘의 존재감은 다소 흐릿해질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으나 당국의 1기 진흥책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기술력도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YMTC의 수율에 대한 업계의 의구심은 여전한 편이다. 지난 2014년 32단, 2019년 64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으나 막상 시장에서 제품이 등장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다만 방심은 금물이라는 평가다. 여전히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인력 빼가기 전략이 이어지는 한편, 막강한 자금력으로 시장을 좌우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국은 시스템 반도체 및 파운드리 영역에서도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장 업계에서 무명에 가까운 유니SOC가 TSMC와 함께 6나노급 5G 통신 모뎀 및 AP 등을 생산한다고 발표하는 등,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들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것도 불안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