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J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아파트'라는 자조섞인 별칭이 붙은 한 아파트 단지가 입방아에 올랐다. 경비원들을 하수인처럼 부리고 다니며 자신이 사는 단지만 황궁처럼 밝혀놓는다는 입주자 대표 회의(이하 입대위) 회장에 대한 풍문이 돌았다. 입주자 대표회의에 당연히 참석해야할 입주민들의 권리는 묵살됐고, 정보공개 요청에는 고소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이코노믹리뷰 이슈팀>에서 이 아파트 단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동의한 적 없는 불편


지난 3월 말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J아파트에서는 새로 설치된 아파트 공동현관 자동문과 주차 차단기 문제로 한창 입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입대위와 시공 업체 간 분쟁으로 해당 공사가 중단되면서 해당 아파트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평의 댓글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공동현관 문이 떼어진 채로 지내야 했던 주민들 입장에서야 새 현관문이 달린다는 희소식이 될 법도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기존 인터폰은 새 공동현관 문과 연동되지 않아 바꿔야 했고, 자동문의 잦은 오작동으로 다칠 뻔한 사례가 발생했다. 주차 차단기 역시 오류와 비효율성 문제가 제기됐다.

커뮤니티에는 아래와 같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A주민 "108동 작은 쪽 현관문 사이에 끼일 뻔 했어요. 문이 열리다 말고 엄청 빨리 닫히는데… 제 뒤에 나오시던 아저씨도 부딪히셨어요. 아이들 다칠까봐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네요. 이 문 얼마나 사용했다고 저러나요?"

B주민 "(기존) 인터폰 결국 안된대요. 꼭 이 모델을 사라고 하네요. 멀쩡하게 작동하는 걸 바꿔야 한다니… 공동현관 (자동문 설치) 동의서에는 이런 사항 없었는데…"

C주민 "(주차) 차단기 안 열려서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짐 나르네요. 지나가다가 하도 황당해 사진 찍었어요. 105동 1층 보도 쪽 집인지 트럭이 인도로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큰 가구를 옮기네요. 참, 이게 뭔지…"

D주민 "주차 차단기 만들었는데 주차 공간은 줄어들고…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자는 건데 더 불편하고…"

또 카드키를 찍어야만 공동현관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불편으로 부각됐다. 비밀번호 설정·입력이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다녀오는 등 잠시 외출한다고 카드키를 집안에 두고 나온 입주민이 공동현관 앞에서 문을 열어줄 다른 입주민을 기다려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광고 전단지는 여전히 집집마다 붙어있었다. 당초 보안 강화 취지로 설치된 시설들이었으나, 정작 실 입주민은 들어가지 못하고 잡상인은 드나드는 사례가 반복되자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사진=제보자

지난달 27일 J아파트 내에 자동문 비밀번호 사용과 주차 차단기의 양방향(입·출차) 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안내서가 발송됐다. 

입주민들의 반응은 분분했다. 앞서 주민들은 여러 차례 관리사무소와 입대위 측에 공동현관 비밀번호 사용을 건의해왔다. 그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다양했다. A씨는 "관리사무소에서 그런 기능(비밀번호 설정)이 아예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고, B씨는 "처음에는 돈이 들어서 할 수 없다고 했고, 저번 회의 때는 해킹의 위험이 있어서 못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C씨에 따르면, 비밀번호 설정이 '불법'이라는 황당한 사유도 들었다.


누구를 위한 동의서 인가


동의서의 형식과 내용, 정당성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우선 동의서의 내용과 배부는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정식 상정 후 의결된 안건이 아니다.

또 입주민이 작성의 주체로서 동의 여부를 관리사무소 수신으로 보내는 형식을 취해, 이 경우 동의서에 게재된 모든 내용이 주민의 의사로 읽힐 수 있다.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던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의 초기 설정 뿐 아니라, 자동문 비밀번호와 주차 차단기 양방향 사용 역시 '자발적' 의사 번복이므로 추가 공사·운영 비용까지 입주민의 책임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애초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설치를 주도했던 입대위나 아파트 위탁관리업체의 책임은 지워진다.

J아파트의 온라인 커뮤니티 한 운영자는 "문서번호와 관리사무소장 직인이 없는데 정식 공문이라 할 수 있느냐"면서 "오히려 잘못된 서명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크다"고 꼬집었다.


 없는 규정 내밀며 회의 방청 불허 


같은 날 임시 입주자 대표 회의가 열렸다. 사전 신청한 11명의 입주민이 방청을 위해 모였으나 끝내 입장을 거부 당했다.

이날 회의에 방청하러 온 D씨는 "동 대표들이 동의서 때문에 온 것이면 1명만 들어와서 발언하고 가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면서 분개했다.

방청 불허를 일방적으로 통보 받은 주민들은 즉각 입주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발했지만, 입대위 측의 묵살은 이어졌다. F씨는 "그 누구도 사전에 방청 불가 안내를 받지 못했고, 뚜렷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회의실 앞에서 수십 분 간 기다렸다"고 전했다.

입대위는 이들의 방청을 불허한 근거로 방청 신청서 하단에 적힌 유의사항을 들이댔다. '관리규약 제27조 1항 및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 방청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며 세개의 조항이 나열돼 있는데, 이 가운데 ▲공개되면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의결(입찰 조건, 업체 선정 조건, 공사비 산출 등)이 있는 경우 조항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J아파트 공동주택 관리규약 제27조에 따르면, 회의 방청을 사전 신청한 입주자 및 이해관계자는 ▲흉기 또는 위험한 물품을 휴대한 사람 ▲음주자 또는 정신이상자 두 경우에 한해서만 입장이 제한된다. 즉, 입대위는 임의 작성한 항목을 근거로 입주자의 권리를 제한한 것이다.

이날 입주민들은 결국 동의서 관련 의혹들과 추가 비용 책임을 입대위에 일절 물을 수 없었다.

이러한 와중 추가 비용 발생에 대한 입대위의 설명도 번복됐다. 추가 운영에 따른 비용이 있다고 답변 받은 이가 있는가 하면, 없다는 말을 들었다거나 회의에서 구체적 금액도 상의됐다고 전달 받았다는 등 상이한 전언들도 나왔다.


소통없는 입대위 회장...우린 참을 만큼 참았다


입대위 회장의 만성적인 말 바꾸기와 소통 부재로 점점 불신과 불만이 증폭되면서 입주민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문제 관련 회의록·계약서·사업자 등록증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주민 G씨는 "(입대위가) 회의록을 개인정보 유출될 수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며 "(개인정보) 지우고 달라 하니까 음성 변조 등은 기술 업체에 맡겨야 하는데 우리 보고 그 비용을 대라더라"고 언급했다.

이를 시작으로 입대위 회장에 대한 다른 의혹들도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공금 지출 내역의 불투명성과 공사·용역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부터 경비원들에 대한 갑질 논란, 연임 관련 비리 의혹 등이 줄줄이 불거졌다.

하지만 입주민들이 입대위 회장에 대해 가장 큰 불만으로 꼽는 부분은 소통이 전무한 독주 행보다. H씨는 입대위 회장에 대해 "주민들의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은 공사들을 여기 저기 벌려 놓고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적반하장으로 협박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입주민들은 현 입대위 체제에서 공사 시행 자체는 물론 견적이나 시공 업체에 대해서 역시 사전 고지 받아본 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공사 결정과 업체 선정 등의 과정에 입주자로서 의사권을 행사하기는커녕 사전 고지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G씨는 "이게 독재가 아니면 뭐냐"고 울분을 토했다.

▲ 지난 6일 오후 8시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J아파트에서 현 입주자 대표 회의 체제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의 발족식이 열렸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이에 J아파트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反) 입대위'가 결집했다. 서른명 남짓의 입주민들이 지난 6일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입주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입대위의 행태를 바로잡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주민 80여명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한편 이들은 그동안의 무심과 묵과를 자책했다. "진작 관심 가질 걸 그랬어요. (입대위 회장으로부터) '그 때에는 가만히 있더니 왜 이제 난리냐'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