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 통신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지난해 5월 네트워크 슬라이싱 관련 논의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에는 현 시점에서 5G 네트워크 슬라이싱를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필요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기술 변화에 따른 관리형 서비스 도입에는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와 CP(콘텐츠제공자) 모두 공감하는 만큼 앞으로의 향방은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망중립성이 완화 기조를 보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ISP와 CP의 기싸움은 이어질 전망이다. 

망중립성 논쟁은 국내 통신사인 ISP와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CP, 스타트업 등 중소 CP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ISP 입장에선 5G 킬러 콘텐츠를 키우기 위해 망중립성 완화를 지향하고 있는 가운데 CP가 받는 영향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도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건 대형 CP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상대적으로 국내 통신사와의 계약보다는 AWS 등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비율이 높은 스타트업은 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여지가 생긴다.

스타트업의 경우 경제적 여건이 떨어지는 만큼 상대적 차이가 발생했을 때 시장의 문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로레이팅에 대한 논쟁도 이와 연장선이다. 제로레이팅은 CP의 특정 콘텐츠에 대해 발생하는 데이터 요금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는 통신사인 ISP가 스스로 CP의 역할까지 맡게된 가운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자사의 5G 서비스에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통신요금 완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나오지만 ISP와  대형 CP가 제로레이팅 서비스로 시장의 우위를 점할 경우 중소 CP 등 힘이 약한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망이용료 분쟁

 

망중립성 훼손의 사례라고 보긴 애매하지만 그 연장선에서 논쟁이 뜨거운 망이용료 측면에서도 교통정리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CP들이 국내 ISP의 망이용료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의 소모전이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와 SKB의 소송전 결과는 ISP와 CP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KB와 넷플릭스는 지난 1년여간 망사용료에 대한 갈등을 빚었다. SKB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망사용료를 지불해야한다는 입장이고 넷플릭스는 자사의 캐시 서버인 오픈 커넥트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트래픽 과중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SKB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 겪고 있는 망 이용료 갈등을 중재해달라고 신청한 뒤 관련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지난 4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며 문제를 법정 공방으로 끌고 갔다. CP가 ISP에 망이용료를 내는 것이 부당하다며 SKB가 요구한 망사용료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걸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겠다는 의미다.

이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제로레이팅 등 망중립성 완화 기조와 충돌하는 셈이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원칙은 ISP의 망중립성 강화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CP와의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넷플릭스와 달리 국내 대형 CP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매년 각각 700억원, 300억원 규모의 망 이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CP들이 매년 수백억원의 망이용료를 지불하지만 일부 글로벌 CP는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망사용료를 내지 않는 글로벌 CP를 향한 비난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엔 국내 CP가 해외 CP와 합심해 망이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을 하는 모습도 포착되는 상황이다. 

한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일 망사용료 관련 글로벌 CP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했다. 규제안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규제안에는 전기통신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ISP뿐만 아니라 국내외 CP에게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 글로벌 CP를 비롯한 국내 CP들도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4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망품질 유지는 통신사 본연의 의무다. 디지털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통신사의 망품질 유지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오픈인터넷 정신이냐, 새로운 가능성이냐

망중립성을 지키자는 진영과, 유연하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진영 모두 각자의 논리가 탄탄하다.

망중립성을 지키자는 진영은 인터넷의 초기 정신인 오픈 인터넷, 즉 모두를 위한 인터넷 가치가 지켜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시장이 만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ISP의 영역을 제한해야 하며, ISP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망중립성 개념이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작된다. 실제로 망중립성이 지켜지면 다양한 CP의 콘텐츠 전략이 만개할 수 있으나, ISP 입장에서는 부당한 처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ISP, 즉 네트워크 사업자의 기준에서만 활동을 강요당할 경우 ISP를 활용해 콘텐츠 시장의 성공과실을 독점하는 CP와 힘의 불균형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통신사들이 탈통신 전략을 준비하는 이유도 더이상 ISP로만 활동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망중립성의 유연한 변화를 주장하는 진영의 목소리다.

이 문제를 하나의 진영에서만 살피면 엇박자만 난다. 그런 이유로 한국 ICT 특유의 상황을 고려해 맞춤형 전략을 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망중립성과 관련한 이슈에 접근하며 국내의 ISP가 요구하는 망이용료가 국제적인 수준에서 얼마나 높은지, 혹은 낮은지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포괄적인 현안을 점검한 후 ISP의 영역과 CP의 영역을 극대화시켰을 때 어떤 기회비용이 발생하는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SP가 망중립성 약화를 전제로 활동할 때 얼마나 콘텐츠 시장의 잠재력을 갉아먹는지, 혹은 발전시키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 데이터가 필요하며 CP가 망중립성의 강력한 보호를 받을 때 ISP의 가능성을 전제할 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연구조사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이해 관계자들이 최소한의 교집합을 조성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망중립성과 망이용료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어도, 망중립성 논의 자체가 망 활용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접적인 금전적 이슈가 오가는 문제에 대한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 ISP의 역할과 기대효과를 측정하고, CP는 국내외를 나눠 국내법 적용 현황 및 망중립성 가치에 대한 합의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