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이런 기업도 있다. 마케팅이 거의 자해(自害) 수준이다. 진지하게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캠페인을 벌인다. 이미 팔린 옷을 평생 무료로 수선해주는데 열 올린다. 인기 제품일지라도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자체 조사가 나오면 지체 없이 제품을 바꾼다. 고객불만이 없더라도 진열대에서 치운다. 그럼에도 신제품 출시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킨다. 매출은 매년 성장하며, 열광적인 팬들이 전 세계에서 늘어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Patagonia) 이야기다.

이 책은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인생 스토리와 독특한 경영 철학을 담고 있다. 등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쉬나드는 이윤 추구와 환경 보호, 직원의 일과 삶 등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던 가치들을 온전히 실현함으로써 경영자로서도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쉬나드는 1953년 14살 때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당시 등반가들이 사용하던 피톤은 연철로 만들어져 한 번 쓰면 바위에 버려두고 와야 했다. 요세미티에서 수일간 등반하고 나면 버려진 피톤만 수 백개에 달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쉬나드는 1957년 대장간을 차려 곡식을 자르는 기계의 날로 피톤을 만들었다. 크롬-몰리브덴 철 피톤은 인기를 모았다. 이를 계기로 등반장비 업체 ‘쉬나드 이큅먼트’를 창업했다.

1972년 엘 캐피탄 봉우리의 노즈 루트가 망가진 걸 발견한 쉬나드는 잘나가던 피톤 제작 사업을 접었다. 손실이 컸지만 피톤의 대안을 찾는데만 매달렸다. 쉬나드는 결국 크랙에 박지 않고 걸 수 있는 알루미늄 초크를 개발했다.

의류사업은 1970년 그가 럭비 셔츠를 등산복으로 활용하면서 시작됐다. 럭비 셔츠는 질겨서 바위에 비벼도 괜찮았다. 주문 제작한 의류에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명을 붙였다. 1994년 목화 재배에 쓰이는 농약이 농부와 환경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든 면 제품을 유기농 목화로만 제작하기로 했다. 무농약 전환은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으나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지구세(Earth Tax)’를 만들어 회사 매출의 1%를 자연환경의 보존과 복구에 사용한다. 최근에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 buy this jacket)’ 캠페인과 자사 의류 무료수선 프로그램 ‘원웨어(Worn Wear)’ 등을 통해 소비절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월 파타고니아가 새로 작성한 기업 사명(使命)은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이다.

책 속에는 60년 경영을 통해 다듬어진 이본 쉬나드의 디자인·생산·유통·마케팅·재무·인사·경영·환경 분야 경영철학이 소개돼 있다. ‘인사철학’편에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명칭의 놀라운 ‘유연근무제’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직원들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우리는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과거 대장간을 경영하던 시절부터 2m짜리 파도가 올 때면 작업장의 문을 닫고 파도 타러 갔다. 서핑에 매진하는 사람은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서핑을 하러 가는 계획을 잡는 게 아니라 파도와 조수와 바람이 완벽할 때 서핑을 간다.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바로 나설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