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처음이다.

2015년 발표된 이 부회장의 메시지는 메르스 사태 국면에서 삼성의 실책에 대한 사과문이면서 동시에 이 부회장이 삼성의 전면에 확고히 나서는 효과를 창출한 바 있다. 그러나 우연히 메르스와 같은 심각한 전염병 정국인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서 이 부회장은 본인을 둘러싼 논란에 재차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꼐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있는 이 부회장이, 아직 수사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메르스 사태 이후 5년만에 이뤄진 이 부회장 대국민 사과문 발표의 결정적 장면 5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전 포인트 하나. 메시지의 타이밍

당초 삼성 준법위는 지난 3월 11일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삼성은 준법위의 권고를 "충실히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선에서 이를 미룬 바 있다. 

삼성은 “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후 권고안 이행 방향과 주요 내용 논의에 착수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삼성 측 내부에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했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 되면서 삼성 역시 국내외적으로 사업영역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아 삼성의 모든 경영진 및 임직원들이 이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로 대응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계속 되어 권고안 논의 일정에 불가피한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삼성 준법위는 유감의 뜻을 보이면서도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김지형 삼성 준법위 위원장은 “위원회가 원래 정해준 기한을 삼성 측에서 지키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면서 권고안 회신에 높은 관심을 가진 분들을 다시 기다리게 한 것은 결과적으로 유감”이라면서 “삼성 측은 비록 어려운 여건 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국민 발표 시일은 11일까지로 정해진 가운데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과문이 15일 총선 직후, 징검다리 황금연휴가 끝나는 6일부터 11일 사이에 이뤄질 수밖에 없고 특히 연휴 직후인 6일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왔다. 7일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발표를 금요일에 하는 것은 꼼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삼성 준법위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삼성 준법위 회의가 열리기 전 연휴의 직후에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렸고, 이 부회장은 재계의 예상대로 6일 오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검찰의 경영승계와 관련된 수사가 정점을 찍는 가운데, 사과문의 표현 하나도 세밀하게 보정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사과라면 삼성 준법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무엇보다 삼성 준법위의 행보에 기대를 걸고있는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이후 수사 과정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겪을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최근 삼성물산과 제익모직 합병 과정을 두고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벌어진 일로 판단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디테일’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관전 포인트 둘. “자녀 승계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 세밀한 핸들링을 거친 가운데, 실제 발표된 메시지에도 조심스러움이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실제로 본인의 혐의와 관련된 현안을 두고는 사죄의 메시지를 전제하면서 거듭 몸을 낮췄다. ‘사과’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고개를 숙일 때는 호흡이 미묘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의미있는 선언도 나왔다. 바로 자녀의 승계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 부회장 스스로가 이건희 회장과 본인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는 점에 착안해, 앞으로 삼성 4대 경영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계에서 삼성은 물론 LG, SK, 현대자동차 등 많은 대기업들은 당연하다는 자녀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제왕적인 오너경영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한편, 소위 왕자의 난이 벌어지며 기업의 경쟁력이 소모되는 일도 많았다. 삼성도 고 이병철 창업주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이 불어졌고, 최근에는 대한항공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되기도 했다. 특히 기업의 자녀승계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도 벌어지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그 연장선에서 “더 이상의 자녀승계는 없다”는 선언으로 새로운 길을 선언했다는 평가다. 추후 다른 주요 대기업이 삼성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앞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 자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본인의 ‘흑역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논란까지 끄집어내는 등 진심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면서 “이제는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 셋. 무노조 삼성, 없다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 당시부터 무조노 경영을 이어온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 관련된 움직임이 감지되면 불법적인 행위를 한 정황도 발견되고 있다. 이른바 노조 파괴공작이다.

이 부회장은 관련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직접 무노조 경영 철폐를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그 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무노조 시대를 끝내겠다는 선언이다.

삼성 준법위의 첫 성과도 과거 삼성의 노조탄압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시절 직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내기 위해 이와 관련된 광범위한 정보수집에 나섰고, 특히 노조 설립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직원들을 색출하는 것에 집중한 바 있다. 인사관련 부서에서 직장인 익명 SNS인 블라인드나 자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 직원들이 교환한 메일까지 살펴보며 아주 작은 노조 설립 가능성도 집중적으로 사찰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를 설립할 가능성이 높은 소위 ‘요주의 인물’이 어떤 시민단체에 후원하고 있는지 살펴본 것이 최근 문제가 됐다. 삼성이 극우단체가 지목한 좌파 시민단체 명단에 후원한 직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관련 후원내역을 무단열람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이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삼성 준법위는 2월 회의에서 이에 대한 사과를 권고했고, 삼성은 “임직원들이 후원한 10개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후원 내역을 동의 없이 열람한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우리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해 오해와 불신이 쌓였던 것도 이번 일을 빚게 한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며, 깊이 반성한다. 임직원과 시민단체 및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삼성 준법위의 첫 성과가 무노고 경영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됐고,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을 걷어내고 새로운 삼성의 길을 선언하며 재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노동운동의 흐름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노조 출범식. 사진=최진홍 기자

관전 포인트 넷. 삼성 준법위 “준법경영의 표본”

재계에서는 삼성 준법위의 존재감에도 집중하고 있다. 몇 차례의 굴곡은 있었지만 삼성 준법위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끌어내고 삼성의 실질적인 액션플랜까지 구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삼성 준법위의 행보 자체가 ‘요식행위’라는 말이 나왔으나, 이번 이 부회장 사과문 발표를 기점으로 이제 삼성 준법위의 존재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는 사라질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면서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며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 다섯. 강력한 경영의지

이재용 부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새로운 삼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여러번 피력했다. ‘반성’ ‘부족함’ ‘실망’이라는 강력한 표현을 통해 몸을 낮추면서도 앞으로의 삼성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이 부회장은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되었다“면서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싶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기는 항상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절박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최근 2, 3개월 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사진=최진홍 기자

관전 포인트 '플러스 알파'

한편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지던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면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몰려와 고함과 함께 부부젤라를 부르며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외쳤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이 나왔으나 이들은 “이 부회장을 무조건 구속수사해야 한다”면서 인근 도로를 막고 한동안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일부는 도로에 누워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한편, 불이 붙으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대치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진심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