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여파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소비자들이 역사적 반일 정서를 바탕으로 BMW나 아우디·폭스바겐 등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보여준 독일차 업체에 비해 일본차 브랜드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갖다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브랜드가 여실히 공개되는 자동차 특성 상 소비자들이 타인 시선에 부담을 느껴 일본차 구매를 회피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한국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일본차 4사.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렉서스코리아, 토요타코리아, 혼다코리아, 한국닛산 등 각 업체별 전시장. 출처=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각 사 공식 홈페이지 캡처

7일 업계에 따르면, 작년 한일 무역 분쟁으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여파가 올해 1분기까지 국내 수입차 시장에 영향을 끼친 모양새다. 실제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1~3월 일본 브랜드 차량의 국내 신차 등록대수는 전년동기(1만1585대) 대비 62.2%나 감소한 4377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수입차 신차 등록대수 점유율은 22.2%에서 8.0%로 급락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높은 상품성을 이유로 선호했던 일본차 제품들을 장기간 외면하고 있는 점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꼽힌다. 그간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제품 결함 등 소비자 안전에 위해를 입힐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슈를 제외하곤 업체별 판매실적에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아우디·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혐의(디젤 게이트)로 2016~2018년 한국 영업을 중단했지만 이후 실적을 즉각 회복한 것과 대조된다. 두 회사는 2016년 몇월 본사의 디젤 게이트에 일말의 책임을 지기 위해 한국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1년 개월여만인 2018년 4월 영업을 재개한뒤 연말까지 아우디 1만2450대, 폭스바겐 1만5390대씩 기록하며 국내 수입차 업체 가운데 4위, 6등을 단숨에 꿰찼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아우디·폭스바겐이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으로 소비자를 기만했지만 소비자 안전을 위협한 내용의 리콜이 아니었기 때문에 빠른 실적 회복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지난해 다른 국적별 수입차 업체에 비해 심각한 결함 이슈로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리콜센터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토요타·렉서스·혼다·닛산 등 4개 브랜드의 리콜 신고현황은 617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주요 독일 완성차 업체인 벤츠(734대), 아우디·폭스바겐(1805대), BMW(1346대) 등 4곳의 리콜 신고 대수 도합 3885대에 비해 적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을 둘러싼 실적 하락세를 두고 시장에선 작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사실상 유일한 원인으로 꼽힌다.일본 정부는 작년 7월 우리나라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제철 자산 강제환수 결정 등에 대응해 반도체 핵심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이는 역사적 반일정서를 지닌 한국 소비자들이 일본제품에 대한 ‘화폐투표’를 실시하도록 유발했다. 화폐투표는 기호, 정서적 옹호 등 개인별 성향에 따라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해당 제조사를 지지하거나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소비자 행위를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자신의 구매력을 활용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분노 표출, 신념 표현 등 내적 보상을 취하려는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장기화시켰다는 관측도 나온다.

송유진 충북대 소비자학과 전임교수는 논문 ‘텍스트 마이닝과 언어네트워크분석을 이용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특징과 의의 탐색’을 통해 “최근 불매운동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로 인해 장기 진행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제품을 습관적으로 불매·거부하는 태도를 안착시켰다”고 분석했다.

현재로선 일본차 업체가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묘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화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비교적 많은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 문화 특성 상, 일본차 시장이 불매운동을 금방 극복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일본차에 대한 국내 시장의 거부 반응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온라인 중고차 경매 서비스 헤이딜러가 작년 중고차 판매사원 144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304명(90.3%)이 ‘불매운동 때문에 일본차 매입이 꺼려진다’고 응답했다. 일본차 업체들이 프로모션, 사회공헌활동 등 ‘착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활동을 벌이더라도 타사와 차별화하긴 어렵기 때문에 제한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자동차는 의류, 게임기 등 품목에 비해 제조사 국적이 잘 드러나 불매운동에 따른 타인의 부정적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며 “일본차가 국산차나 다른 국적 수입차에 비해 두드러지는 상품 차별화를 실현하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