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위에 멋지게 공을 올려놓고 버디 찬스를 맞은 골퍼. OK 퍼팅거리에서 번번히 돌아나오는 공을 보면서 ‘이런, 홀컵은 누가 이렇게 조그맣게 만들었나’ 하며 ‘홀컵사이즈가 냉면의 그릇크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도대체 요 작은 홀컵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 역사는 이렇다.

아주 오래 전 홀컵 자체가 없을 때가 있었다. 넓고 푸른 잔디 위에 삽으로 대충 구멍을 파 놓은 곳을 홀컵으로 인지하고 쓰던 차에, 비가오면 무너지고 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없어지는 일이 허다하자 스코트랜드의 ‘세인트 앤드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던 한 골퍼가 1868년 버려진 토관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홀에 토관을 끼워 넣고 갔는데 그 뒤에 골프를 치던 플레이어들이 그 실용성에 감탄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 당시 선수이자 그린키퍼였던 탐 모리스(Tom Morris)에게도 이 소문은 귀에 들어갔고 모든 홀에 컵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 여기서부터 홀컵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초기 홀컵은 투박했던 테두리와 형태 때문에 쉽게 공이 튕겨져 나와 골퍼들의 만족감이 떨어졌지만 탐 모리스의 연구와 대대적인 성형시술(?)의 결과로 4.25인치로 규격을 정해 만들어낸 홀컵은 더 이상 골퍼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 후 1991년 개정된 골프룰에는 직경10.8cm, 깊이는 10cm이상이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홀컵 사이즈이자 모양으로 굳어졌다. 물론 홀아웃을 할때 힘차게 들리는 땡그렁소리는 후에 개발된 것이지만 말이다. 골프장에서 홀컵에 공이 떨어지는 순간 맑고 힘찬 이 투명한 소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과거 필자는 이소리에 익숙해져 모든 나라의 홀컵 사이즈가 똑같듯 공이 홀컵에 떨어질 때 나는 홀컵의 소리도 같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실 미국에서도 이 경쾌한 소리는 듣기 힘들었고 TV를 통해 자주보는 프로 골프 시합 중에는 더더욱 듣기 어려운 소리다. 미국의 경우는 홀컵 주위를 하얗게 칠해두기 때문에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효과 뿐 아니라 깨끗하게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 아마도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은 분명하나 홀컵의 사이즈는 결국 하나다.

앞서 잠깐 이야기 했듯이 홀컵의 사이즈는 108mm이다. 많은 골퍼들은 이를 ‘108배의 번뇌’라고 이야기 한다.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108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성철스님은 세상사람들의 업을 씻고자 108배를 하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씻고자 108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비우고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하면 기복이 된다’ 라는 말이 있듯 골프 또한 같은 맥락이기에 108번뇌 라는 말이 나온 듯 하다. 아무리 골프를 잘 치고 싶어도 무리한 욕심에는 오히려 해가 될수 있기에 “마음을 비우고 쳐라” 라는 말을 하고 또 노력해도 안될 때가 있기에 ‘인내’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얼마 전 KBS 생로병사에 방영됐던 내용 중에는 종교의 이념을 떠나 108배는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몸과 마음, 그리고 건강에 108배가 좋다는데 그 이유는 108배가 유산소 전신운동이면서 칼로리 소모에 비해 쌓여있는 지방을 태워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더욱 실용적인 것은 반드시 어떤 장소를 찾아가 108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 바로 큰 장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108배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에서 길게는 30분이라고 하니 돈도 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임이 틀림없다. 실제 모든 근육과 관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칭은 물론 근육량을 늘릴 수 있는 효과가 있어 수영이나 자전거 보다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훌륭한 운동인가.

많은 사람들은 108배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하고 또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뇌계발과 정신수양에 도움을 준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빠진 것이 있는데 바로 ‘자세’다. 아무리 단순한 동작이지만 올바른 자세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필자는 이쯤에서 골프와 108배의 관계를 연결시켜보려 한다. 첫째 온 몸을 이용해 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생기는 것이 일치하고 둘째, 깊은 수면 또한 운동을 하고 나면 피곤해지기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도 일치한다. 셋째, 단순한 동작이지만 올바른 자세, 즉 보기에는 골프채를 잡고 그냥 휘두르는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같다. 기본이 잘 잡혀 있어야 부상을 입지 않고 반복하기 쉬운 동작을 할 수 있다. 넷째, ‘두뇌개발’적인 측면이다.

1번홀 티박스에 올라선 골퍼들은 2번홀에서 어떻게 어떤 작전으로 공을 그린 위에 올릴 것인지 생각하게 되므로 두뇌개발적인 부분에서도 일치한다. 다섯째, 정신수양. 바로 이 부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되겠다. 골프를 치다보면 겸손을 배우게 된다.

잘 되나 싶다가도 안 되는 것이 골프다. 마음을 비우고 치다보면 버티찬스가 오거나 생각하지도 않은 롤퍼팅이 쑤욱 들어가기도 하고 어쩌다 장타를 치게 돼 장타가 나나보다 하고 힘차게 휘두르면 어느새 탑볼을 때려 잔디밭으로 콩콩 뛰어가는 공을 보며 민망할 때도 있다. 하루종일 토끼 잡으러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민폐를 끼쳐 힘 빠지는 ‘백돌이’의 한계를 느끼다가도 새로운 희망을 갖고 연습장에서 힘치게 공을 때리게 되는 것이 바로 골프가 아닌가 싶다.

분명 홀컵사이즈의 크기는 우연이었지만 108배와 골프의 관계는 우연이 아니라 사연이 깊다. 돌고 도는 우리네 인생처럼 공도 동그랗고, 스윙도 동그랗고, 홀컵도 동그랗다.

처음과 끝이 결국 만나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1번홀로 출발해 18번 홀을 통해 다시 들어오는 골프. 그렇게 둥글게 살아가는 모습이야 말로 아름다운 우리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라이프스포츠클럽 골프 제너럴 매니저, 방송인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