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애경그룹 총수일가가 애경유화 주주 명단에 일제히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애경유화 지분을 소유한 것은 약 8년만의 일이다. '채형석 체체' 완성을 위한 지주사 지분이 굳건한 상태에서 이들이 '가랑비 수준'의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은, 주가가 저평가된 시점에서 매수하는 '장기 가치 투자' 일환으로 관측된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을 비롯한 장남 채형석 그룹 총괄 부회장 겸 그룹 최고경영자와 2남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 3남 채승석 전 애경개발 사장, 장녀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까지 지난달 28일 나란히 애경유화 주식을 장내매수했다.

채형석 부회장과 채동석 부회장은 각각 2000주씩, 장 회장과 채 전사장, 채 부사장은 각각 500주씩 지분을 늘렸다. 매입 비용은 총 4000여만원(주당 7127원~7169원대)으로, 이들 모두 배당소득을 재원으로 활용했다.

AK홀딩스, 애경유화 지분 47.49%...경영진 일가 매수 배경은 '적립식 적금'?

애경그룹 경영진 일가가 애경유화 지분을 매수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만해도 장 회장은 애경유화 지분 6.26%, 장남 9.81%, 차남 7.49%, 삼남과 장녀 각각 6.57%, 3.02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분은 2012년 9월 AK홀딩스를 그룹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애경유화가 인적분할되면서 모두 희석됐다.

총수 일가의 갑작스런 애경유화 지분 확보는 주가 하락과 관련이 깊다는 게 재계 시선이다. '적립식 적금' 개념의 지분 매입 일환이 아니냔 것이다. 실제 애경유화 주가는 2018년 1월 한때 1만9000원대까지 올랐지만 이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겪고 있다. 지난 4일에도 전거래일 대비 2.81%(200원) 하락한 6920원에 장을 마쳤다.

출처=네이버 증권정보 캡쳐.

더욱이 채 부회장은 AK홀딩스 최대주주로, 이미 지주사인 AK홀딩스를 통해 애경유화 지배력을 공고히 해놓은 상태다. AK홀딩스는 한동안 애경유화 지분 44.49%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7년만인 지난해 말부터 지분을 꾸준히 사들였다. 6일 현재 애경유화 지분률을 49.44%까지 끌어올렸다. AK홀딩스가 지난 2월 말 공시한 애경유화 목표 주식 47.49%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홍대시대 개막을 기점으로 오너 2세로의 경영승계가 시작됐단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룹은 지난 2018년 본사를 42년만에 홍대로 이전하면서 '홍대시대' 개막을 선포, 본격적인 오너 2세 채형석 경영체제를 공표한 바 있다. 현재 그룹 총수는 장 회장이지만, 장남인 채 총괄부회장이 2006년 총괄 부회장 겸 그룹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실질적인 그룹 회장 역할을 맡는 중이다.

때문에 애경 가(家)의 애경유화 지분 매입은 지주사의 자회사 지배력 지분이 충분해 채 부회장으로의 경영 승계가 굳어진 상황에서, 애경유화의 주가가 6000원대까지 하락한 현시점을 '지분 매입 적기'로 판단한 결과물로 보인다. 

 

앞서 애경그룹 일가는 배당 수익을 통해 지주사와 계열사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몇백주씩 꾸준히 사들이는 저가매수 방식으로 '적립식 매입' 행보를 보여왔다. 

채 총괄부회장 부인인 홍미경 몽인아트센터 관장과 3세들은 AK홀딩스와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장기 가치투자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경유화가 비교적 안정적 수익이 가능한 고배당주에 꼽힌다는 점은 경영진 일가의 추가 매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애경유화는 업황 악화에도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전년과 같은 1주당 350원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9% 줄었지만, 시가배당율은 4.3%를 보였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오너나 경영진들의 주식 매수는 책임경영 일환으로 주가 반등을 노리는 동시에 지배력 강화로 쓰이곤 한다"며 "주가가 하락한 시점에 적은 자금으로 계열사 주식 매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