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찬찬히 조명한다. 

특히 주인공인 덕수(황정민 분)가 친구인 달구(오달수 분)와 함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파독광부가 되어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당시에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국만리 독일로 날아가 탄광에서 청춘을 바쳤고, 누군가는 간호사가 되어 현지인들이 꺼려하는 병원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산업역군이면서, 눈물겨운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 영화 국제시장 갈무리. 출처=갈무리

1963년부터 1980년까지 파독광부가 되어 독일땅으로 날아간 이 땅의 젊은이들은 모두 7900명이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또 한 번 이 땅의 인재들이 독일로 날아가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독일이라는 지명과 국제교류라는 점은 40년전과 동일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40년 후 이땅의 인재들은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고된 광산일과 병원 허드렛일이 아닌, 최신 ICT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양자암호통신 등 다양한 ICT 기술을 바탕으로 독일의 도이치텔레콤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가운데, 3일 양사 경영진 2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화상 컨퍼런스를 열어 5G, MEC, 인공지능 등 K-ICT를 활용한 협력을 약속했다.

▲ 박정호 사장. 출처=SKT

SK텔레콤은 도이치텔레콤과 ▲효율적인 5G 구축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채용 노하우 ▲코로나19 이후 상황에 대비한 클라우드, MEC(모바일엣지컴퓨팅)기술 진화 등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키로 했다. 나아가 비대면 플랫폼과 생활 안전 · 편의 기능을 제공하는 AI 기반 스마트 에이전트 솔루션, AR/VR 서비스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기술 공동개발, 표준화, 사업화를 위한 ‘테크 합작회사’(Tech. JV)의 핵심 설립 조건을 담은 계약을 체결했으며 SK텔레콤은 ‘엔지니어 교환 프로그램’(N/W Engineer Exchange Program)을 통해 인프라 엔지니어들을 대거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40년 전 이 땅의 인재들이 외화를 벌기위해 눈물겨운 타국행에 나섰다면, 이제 그들의 아들 딸들은 세월을 넘어 한국의 선진적인 ICT 기술력을 전수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걷는 셈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글로벌 ICT 기업들이 기술과 역량을 응집하면 위기 극복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이라며, “코로나로 촉발된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럽 뿐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국가에 K-ICT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의 선진국, 라인강의 기적인 독일과 국내 ICT 존재감이 만나는 사례는 스타트업 업계에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계 회사인 딜러비리히어로는 국내 배달앱 시장 최강자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합병 소식을 알린 바 있다. 나아가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딜리버리히어로의 아시아 시장 공략의 첨병인 우아DH의 콘트롤 타워로 '초빙'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적인 ICT 모바일 플랫폼 기술력을 지휘한 김봉진 전 대표가 딜리버리히어로와 함께 큰 꿈을 꾸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제 한국은 글로벌 ICT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강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안을 찾는 독일, 아니 유럽 전역의 선택을 받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과 유럽 전역의 협력 관점에서 바라보면 네이버와 프랑스의 협력도 고무적이다. 이미 K-1 펀드라는 매개가 묶인 가운데 네이버는 프랑스에 강력한 인공지능 거점인 네이버랩스 유럽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으로 출범한 네이버랩스 유럽은 2017년 네이버가 인수해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프랑스 그로노블에 위치해 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등 다양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유럽 최대의 인공지능 연구소로 활동하고 있다.

▲ 네이버랩스 정경. 출처=네이버

업계에서는 SK텔레콤, 배달의민족, 네이버 등 다수의 국내 ICT 기업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과 긴밀하게 만나는 장면에 고무되어 있다. 

유럽은 실리콘밸리 일색인 글로벌 ICT 업계에서 강력한 우군을 찾고 있으며, 그 해답을 한국의 ICT 업체들과의 만남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40년전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는 일념으로 이역만리 비행기에 올랐던 가난한 나라의 인재들이,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패권과 맞서려는 유럽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 당장하게 K-ICT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