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 중에 가까운 데를 가족들과 둘러보러 갔는데,

많은 사람들로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야 했습니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이미 코로나를 잊은 것 같은데, 가벼워진 옷차림에

착용한 마스크가 아직도 겨울 같은 코로나 격리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많이 소란스러웠는데,

그게 익숙하지 않게 여겨지며,

문득 얼마 전 기사에서 보았던 ‘고요한 택시’가 생각났습니다.

청각장애인이 모는 택시로 승객에게 모니터를 통해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승객이 키보드 단말기나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목적지 등을 입력하면 서로 소통이 끝나는 거죠. 수어를 못하는 입장이니 더 말할 여지도 없이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겁니다. 어떠신가요?

옛날 택시 기사로부터 들은 얘기도 생각났습니다.

주중 일주일에 한번 씩 손님이 정한 곳에 정확히 가서 싣고는 양평까지를 왕복하는 겁니다.

조건은 한마디 말도 안하는 거였다지요.

그렇게 양평에 가서 손님 혼자 점심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답니다.

고요한 택시도 그렇고, 양평을 혼자 갔던 손님도

‘아이들은 잘 때 크고, 어른들은 혼자의 시간 속에 성장한다’는 것을 말해줌일까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입니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두 분이 다 귀가 많이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모임도 안 나가시게 되고, 반평생 다니셨던 교회도 설교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아

안 가게 되고, 인터넷으로도 설교 말씀이 잘 안 들리는 시련의 시기입니다.

지금은 책으로 매일 성경 말씀을 통해 믿음을 이어가고, 세상 형편도 얻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제 60대에 진입한 우리 친구들은 잘 안 들릴 때

‘세상 많은 것들, 우리가 참견하지 말라고 귀가 어두워지는 것 아닌가?’라며 쿨 하게 여기고,

단어나 기억이 안 나는 일이 생겨도 ‘그만큼 말도 줄이고 살라는 것 아닌가’라며

아직은 너무 쉽게 넘어가는데 부모님께는 뭐라 위로 드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과거 부친이 65세에 퇴직 시, 컴퓨터와 운전 배우라고 강권해서,

지금까지도 잘 활용한 전례가 있어,

수어를 배우라고 권할까 하다가 멈추게 됩니다.

또 조용한 침묵 속에 혼자만의 시간 통해 더 성장하고, 성찰하게 된다는 말도

잘 안 들리는 답답함에 전혀 얘기할 처지가 아님을 압니다.

결국 내게 숙제로 여겨지는 일이 남습니다.

길어질 인생 후반부를 위해

혼자 놀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함은 물론,

수어를 배워 신체적으로 닫힐 때를 대비하는 겁니다.

게다가 몰랐던 평생 수어를 써온 그분들의 고통과 소통하는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