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한 달 전 이미 고베에서만 4만명의 감염자가 나왔다는 현지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올림픽 정국을 맞아 긴급사태 선포를 망설이던 아베 총리가 뒤늦게 액션플랜에 나섰으나, 대처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심리를 이용해 개헌 불씨를 지피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교도통신은 3일 고베시립의료센터 중앙시민병원이 긴급사태 선포 전후 시기에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며, 33명의 혈액에서 코로나19 감염 후에 생기는 항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고베시 전체 인구인 152만명에 대입하면, 무려 4만명이 이미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포할 당시 이미 고베에는 코로나19가 만연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기하라 야스키 중앙시민병원장은 “무증상감염자가 상당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계획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로 일본내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고 있으나, 아베 총리는 코로나 불안심리를 이용해 개헌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는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우익인사들의 헌법 포럼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도전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면서 “(개헌을)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 헌법의 핵심인 9조(전쟁포기·무력 불보유)에 자위대 근거 규정을 명확히 하려는 개헌 의지다.

지금까지 일본 자민당은 개헌을 통해 평화헌법을 뜯어고치고, 자위대의 존재 기반을 명확히하려는 시도를 지속한 바 있다. 특히 자민당은 2018년 정리한 개헌 4항목에서 내각의 권한을 한시적으로 강화하는 긴급사태조항의 신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국민의 불안심리가 높아지자 오히려 이를 개헌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위한 무대는 이미 마련됐다. 아베 내각이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여전히 일본의 민심은 자민당의 손을 들어주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실시된 중의원 시즈오카현 제4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자민당 후보 1명과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 공산당·사민당이 공동 지원한 무소속 후보 1명이 대결을 펼쳤으나 자민당 후보가 더블 스코어로 압승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아베 내각이 제개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큰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은 야당 연합의 승리를 점쳤으나, 오히려 자민당이 대승을 거둔 셈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아베 내각이 코로나19 대응에서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며 비판받고 있으나 일본 국민들은 당장의 불만을 가지기 보다 ‘그래도 자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자국민의 민심을 간파, 코로나19 사태속에 쏟아지는 비판을 내각에 대한 지지로 돌리는 한편 그 연장선에서 불거지는 불안심리를 이용해 개헌까지 내달린다는 각오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해 3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의 긴급사태조항 창설 주장을 두고 일본 국민의 45%가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아베 총리의 야심찬 개헌 의지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사히 신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이 58%였고, 찬성은 3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일본인 대다수가 개헌에 소극적이고, 일부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아가 아베 총리가 본인의 임기에 개헌을 추진할 명확한 동력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만만치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