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이코노믹리뷰DB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역대 최단기 회생절차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정확한 기업분석과 협상전략이었다.

전자업체 이엠더블류(EMW)의 최단기 피플랜(Pre packaged-Plan)회생절차가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실상 피플랜 회생절차의 리딩케이스가 됐다는 평가다.

피플랜 회생절차는 법정관리 이전에 이미 회생계획안을 수립하고 채권단의 동의로 절차를 종료하는 단기 구조조정 출구전략이다. 회생계획안이라는 꾸러미(packaged)를 미리 짠다고 해서 피플랜이다. 이미 회생절차의 중요부분을 완성한 후 법원에 회생을 신청한다는 점에서 회생 신청 후 법원 안에서 여러 단계의 절차를 밟는 보통의 회생절차와 다르다.

피플랜은 단기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어서 기업가치의 하락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한계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하는 구조조정 절차다.

앞서 수원지방법원에서 회생절차를 진행했던 미주제강은 피플랜으로 회생신청 후 44일 만에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 바 있다. 이번에 피플랜 절차를 적용한 이엠더블류는 피플랜 회생 신청 후 37일 만에 법정관리를 벗어나 상장폐지의 위기를 넘겼다. 보통의 회생절차는 패스트 트랙을 적용하더라도 통상 5개월 이상 기간이 걸린다.

이엠더블류 회생절차는 미주제강 사례와는 기간이외에도 큰 차이가 있다. 파산법조계 한 관계자는 "미주제강 사례는 회생절차를 한 번 거친 후 성공하지 못해 다시 회생을 신청한 사례"라며 "회사가 다시 회생을 신청하면서 이전 회생계획안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반면 이엠더블류 피플랜 절차는 처음부터 회생계획안을 만들고 채권단을 설득해 최단기로 구조조정을 끝냈다는 점에서 피플랜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피플랜 절차도. 자료=서울회생법원

◆ 회사 운명 가른 10일...회사 채무액 산정·기업가치 실사·채권자 설득

이 같은 초단기 피플랜 절차가 가능했던 것은 회사의 재무현황을 채권단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협상과 설득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엠더블류의 피플랜 진행단계를 짚어 보면 이렇다.

우선 이엠더블류는 2018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했다. 전(前) 경영진의 관리 소홀로 법인인감의 사용처가 불분명 했다. 제3자의 채무에 대해 이행보증을 섰을 가능성 등 우발부채 발생 여지가 컸던 것이 의견 거절의 이유였다.

개선기간 만료일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엠더블류와 법률 자문단은 회생절차가 우발부채를 실효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법률 대리인단과 회사는 채권자 리스트 작성에 돌입했다. 은행 등 채권금액이 큰 채권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피플랜은 회사의 채무액 2분의 1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채권자별로 갚아야 할 채무금액을 확정해야 우선적으로 피플랜 협상을 해야할 채권자가 식별된다.

법률 대리인단은 회사 실사를 통해 채권단에 대한 채무를 100% 갚는 회생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안했다. 채권단 협상을 위해 신속하게 실사한 회계결과를 토대로 이뤄진 제안이었다.

채권 규모가 큰 담보권자의 설득은 문제였다. 회생절차에서 담보권자의 채무는 회생절차 종료 이후 바로 상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사와 법률대리인단은 담보채권자를 설득, 상환기간을 유예받는 데 성공했다. 이엠더블류의 장래 사업계획과 그 성공가능성을 적극 부각한 것이 담보권자를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채권단의 피플랜 동의서, 채무금액을 확정한 채권자 목록, 사전실사 보고서, 사전회생계획안을 갖춰 회생을 신청했다. 회생신청을 앞두고 구조조정 전략과 사전 회생계획안을 수립해 채권단의 설득하는 데 걸린 기간은 10일.

이엠더블류의 초단기 회생절차는 서경환 수석부장판사가 있는 서울회생법원 제17부가 회사를 법정관리했고 20년 이상 구조조정 분야를 담당해온 박현욱 변호사(21기)가 이끈 법무법인 태평양의 도산팀(홍성준, 백종현, 진선미, 정민경 변호사)이 회사의 피플랜 회생절차를 대리하고 자문했다.

이엠더블류의 회생절차의 주심을 맡은 회생법원 김영석 판사는 "일반적인 회생절차에서는 회사가 갚아야 할 부채와 채권자들이 받아야 채권을 일치시켜 확정하는 절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엠더블류의 피플랜의 경우 법원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채권금액이 확정된 채권자목록과 회사의 기업가치가 반영된 실사보고서가 갖춰져서 절차를 단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박현욱 변호사는 “이번 사례는 위기의 기업이 사전에 고려할 법적 수단으로 회생절차의 유용성을 확인하는 한편, 2017년 서울회생법원 개원 이래 도입한 제도 중 P플랜 회생절차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매우 중요한 선례적 가치를 가지는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회사는 회생절차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유동성이 좋지 않은 상거래 소액 채권자들도 배려했다. 회사가 회생 신청 전 거래처 납품 대금을 결제한 것. 회생 신청 이후에는 대금 결제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내린 조치였다.

법무법인 태평양 백종현 변호사는 "회생신청 직전에 상거래 채권자들에게만 대금을 결제하는 것은 회생 신청 이후 법원이 이를 취소시킬 수도 있다(부인권)"면서도 "이엠더블유 사안에서는 회사의 채무구조가 채권단에게 100% 상환이 가능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운 소액 상거래 채권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MW는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1차 안테나 공급업체다. 모바일용 안테나, 소재소자, 스마트 그리드 솔루션, 무선보안 시스템 등이 주요 제조품이다. 최근 무선충전기, 중대형 안테나, 공기정화기 사업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은 2018년 802억, 2019년 61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18년 30억원에서 지난해 13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기순손실은 2018년까지 계속 적자를 보다가 2019년 37억원 흑자로 돌아섰다.